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나라 (마 6:9~13)

  • 잡초 잡초
  • 317
  • 0

첨부 1


하나님 나라 (마 6:9~13) 


오늘은 주기도의 두 번째 부분인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구절을 상고하면서 이 시간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제일성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눅 4:43에서 “내가 다른 동리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진주의 비유’ ‘그물의 비유’ ‘가라지와 알곡 비유’ ‘왕의 혼인 잔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포도원의 품꾼 비유’ ‘달란트 비유’ ‘잃은 양, 잃은 동전의 비유’ ‘탕자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 등등.......주님의 가르치신 교훈의 대부분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헤르만 리델보스는 그의 저서 ‘하나님 나라’에서 말하기를 “신약적 계시의 의미와 특성을 고찰함에 있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만큼 중요한 그 어떤 주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란 사상의 뿌리는, 구약 성경의 계시 가운데 깊이 감추어져 있다. 이 구약적 배경 없이는, 유대인들의 천국에 대한 신앙이나, 신약 성경의 선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본질적 혹은 일반적 왕국, 우주적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목적 하사, 하늘과 땅과 지옥에서 행사하시는,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권세와 주권을 의미합니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고 했습니다. 이 왕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 보존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가장 영광스러운 발광체로부터, 일광 속에 춤추는 가장 작은 미분자에 이르기까지, 땅위의 가장 초라한 곤충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장 까지 포함합니다.

2)특수한 왕국, 은혜의 왕국, 영광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 왕국은 세상과 구별되고 분리된 사회로서, 하나님의 교회와, 그의 백성 중에 행사하시는 정치와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 헬라어는 ‘바실레이아’(βασιλεια)라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kingdom이라고 번역해 왔으나, 사실 헬라어에서 이 말은 왕직(kingship) 또는 왕적 통치(kingly dominion)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가 미치는 곳을 한반도 38도 이남의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란, 첫째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계 2:13에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고 한 말씀이 있는데, ‘사단의 位’란 곧 사단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복음이 부인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사단은 그의 맹렬한 세력을 떨치며 주관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성령과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거침없이 나타나는 영역, 즉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프러시아 제국의 프레드릭 왕이 하루는 공원 산책을 나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경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노인만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프레드릭 왕은 그 노인에게 “나를 모르는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나는 왕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니 어느 나라 왕이란 말이오?” “나는 나 자신의 나라의 왕이요” 하고 노인은 대답을 했습니다. 프레데릭 왕은 “이 노인이 정신병자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아의 왕국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자 훈련을 받는 여집사님 중에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하는 중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신데, 자신이 주인 노릇 할 때가 많아 참으로 고민입니다.” 이 얼마나 진실한 고백입니까?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내가 내 왕국의 주인 노릇을 그만 두고, 내 마음의 왕좌에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이승만 물러가라’ ‘박정희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고 하면서 장기 독재자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독재자보다 장기 집권을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왕국에서 20년 30년 50년씩 장기 집권을 한, 여러분 자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산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다스리는 삶! 내 자아가 나를 주장한 삶의 모양이 얼마나 형편없습니까? 실패와, 좌절, 혼란, 불안, 불만족, 그리고 죄와 허물로 얼룩진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다스려 왔습니다. 내가 내 왕국의 왕이었습니다. 그 결과 밤낮 짜증이 나고, 실망을 하게 되고, 허무와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정권을 교체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왕국의 왕으로 모시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곧 진정한 회개입니다. 내가 나를 지배하던 삶에서 떠나는 것, 부조리하고 연약하며, 죄와 허물로 가득한 내 자아가 나를 다스리는 삶을 포기하고, 십자가 앞에 나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주님의 지배를 받을 때, 그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란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나의 주인,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때부터 주님은 비로소 나를 통치하시고, 나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정권교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정권 교체가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 12: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 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니 귀신은 쫓겨 가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을 때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주인이시고,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을 통치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먼저 예수를 믿고, 며느리는 나중에 교회에 다닌 집에서 생긴 얘기입니다. 시어머니가 성경책 주머니를 들고 예배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느리는 어린애를 업고 우는 큰애를 달래면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다가, 시어머니를 보고 “천당에서 천사님이 내려온다. 그러나 집에만 오면 마귀다.”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손자는 울면서 “할머니 과자 사줘” 라고 졸라댑니다. 할머니는 “너는 그저 눈만 뜨면 과자냐. 과자 사줄 돈이 어디 있니?” 하면서, 며느리를 향하여 “애는 왜 자꾸 울리나” 라고 꾸중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 구석에 있는 사발 조각을 발끝으로 굴려 보면서 “또 사발을 깨쳤나? 너희 어미 손끝에는 박살 귀신이 붙어 다니는 모양이다. 만날 그릇 깨기가 일쑤니, 돈이 샘솟듯 해도 못 당하겠다.”라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 때 교회에 나가는 이웃집 할머니가 오다가 “어린애 어머니도 예배당에 가야지” 라고 하니까, 며느리는 대뜸 “예배당엔 가면 뭘 합니까? 난 천당 안가요” 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이웃집 할머니는 “아니 왜 천당엘 안가, 다 가야지” 며느리-“난 안 갈래요. 내겐 지옥이 좋아요” 이웃집 할머니-“애걔걔, 그걸 말이라고 하나. 왜 천당엘 안가고 지옥엘 가?” 며느리-“살아서도 지옥인데, 죽어서 천당에 가면 또 그 시어머니를 어찌 섬기라고. 내게는 시어머니 없는 지옥이 천당이야”라고 했습니다. 

몇 달 후에 부흥 사경회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죄를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며느리보고 예배당에 가자고 전도를 했습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함께 예배당에 갔습니다. 성경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고부가 다 열심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예배당에서 돌아오다가, 어린애가 우는소리를 듣더니, 빨리 뛰어 들어오면서 “애, 애 어미야, 애 이리 보내라. 애를 업고 어떻게 일을 하누”하더니 손자를 품에 안고 “둥개둥개 둥개야 내 복동아 둥개야” 하면서 어린애를 달랩니다. 며느리-“애구 어머니, 다리 아프시겠는데, 좀 쉬지도 않고 또 애를 어떻게 보셔요” 손자 애-“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찬송을 부릅니다. 이것은 지옥이 변하여 천당이 돼 가는 광경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 의가 이루어지며, 평화가 이루어지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태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또는 하나님 나라의 현림성만을 역설하여,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천국을 부인하면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경기 노회에 있을 때, 어떤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목사의 설교를 문제 삼아, 노회에 질의를 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목사님이 하나님 나라의 상태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고, 천국의 현림성을 강조한데서, 오해가 빚어졌던 것 같습니다. 노회 임사부에서 불러 물어 보기로 하고, 제가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천국이 실재하는 것을 믿습니까?” 라고 질문했더니, 그 목사님이 답변하기를 “목사님! 제가 그 장소적인 천국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면서, 개척을 하고 목회를 하겠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는 것이어서, 제가 두 번 다시 문제를 삼지 말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장차 분명히 여러분이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있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셔서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는데, 그 곳을 지상 낙원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순종이 조화를 이루는 거기에, 낙원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들은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그 결과 불의와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며, 고통과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잘살던 사람이, 실패한 후에 더욱 과거에 대한 연민을 떨쳐 버릴 수 없음 같이,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자신의 힘으로 그 곳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항상 보다 낳은 내일을 사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전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맛보여 주시고, 그것을 회복케 하여 주시기를 원한 것이, 바로 이 장소적인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1)그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공평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 사람이 사람을 압박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올 때는 모든 전제정치가 자취를 감추고, 모든 불의가 사라질 것입니다.

2)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싸움과 상호 불신이 영원히 사라지고, 다시는 전쟁의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창을 두드려 낫으로 만들 것이며,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풀을 먹을 것입니다.

3)하나님의 나라는 희락이 있습니다. 지상의 생활은 눈물과 아픔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처럼 짧게 느껴지는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울고 웃기를 그치고

자고 깨기를 멈추고

사랑과 안식의 영원한 집으로

내가 이제 곧 가리니

주여 오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피었다가 시들기를 그치고

빛과 그림자가 멈추며

소망과 절망을 마치고

사랑과 안식의 영원한 집으로

내가 이제 곧 가리니

주여 오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만남과 헤어짐을 그치고

작별과 애닲음을 멈추며

맥박의 뜨거운 고동을 멈추고 

사랑과 안식의 영원한 집으로

내가 이제 곧 가리니

주여 오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어느 날 두루미가 물가를 걸어 다니면서 고동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백조가 하늘을 유유히 놀고 있었습니다. 고동을 찾던 두루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백조가 놀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루미는 백조에게 물었습니다. “백조야 너 어디서 왔니?” 그러자 “천국에서 왔다”라고 백조가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백조는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천국은 열두 진주문이 있고, 예수님이 계시고, 고통과 아픔이 없으며, 영원한 안식이 있으며, 생명수 강가에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실과나무가 있고.....한참 듣고 있던 두루미가 “아니 거기에는 고동은 없어”고 했더니, 두루미가 실망하는 투로 말하기를 “야 그런 천국 너 혼자나 가라. 나는 안가겠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고동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 우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루미가 되기에 급급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보다는, 당장의 눈앞에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이 세상은 잠깐 있다가도 없어질 안개와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백조와 두루미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입니까?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구절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상태적인 천국과, 장차 우리가 미래에 들어가게 될 장소적인 천국이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심령 안에, 우리의 가정 안에,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가 목사가 마음대로 하는 통치나, 장로가 자기주장대로 하는 통치가 아닌, 주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더욱 널리 확장되도록 충성하며 살다가, 장차 도래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그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 복락을 다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