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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기있는자의 도전 예레미아 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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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의 도전

본문 : 예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선지자가 활동하였던 시기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분열왕국 이었던 이스라엘의 남 유다의 멸망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이시기에 많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은 선지자들이 활동하였던 시기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주시는 하나님의 지시와 음성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인터넷판 기사를 보니 할렐루야교회가 분당에 노아의 방주 모양의 800억짜리 교회를 12년 만에 봉헌 한다고 나와있던데, 12년동안 은행이자만 75억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800억이 아니라 75억 중에 1/10만 있어도 감동스러운 성전을 봉헌하여서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의 구원의 방주로서 그 역할을 많이 할테데 생각하며 교회들의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로 왜곡 되어가는 목회환경 현실에 많은 속상함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수많은 드라마틱한 역사를 더 많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 한국에 많은 소이 잘나가는 도시 교회들이 있지만 시골에서 묵묵히 27년간 어려운 역경 속에서 별로 우리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군 선교 등에 없는 비용을 쪼개 가며 선교활동을 벌이는 그리고 신앙생활을 이뤄가는 교회는 요즘 아예 없을 것이라 봅니다.



더 편하고 안락한 그리고 시스템이 잘되어있는 큰 교회들을 선호하는 작금의 현실에 볼 것 없고 가난한 시골교회에서 오늘도 이렇게 뜨거운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우리야 수많은 교회의 예배 중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과부의 두 랩돈의 칭찬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더 축복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눅21:1~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도전(挑戰) 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흘러가는 정황이나 시간 기타 다양한 삶의 환경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소망을 품고 그 흐름을 막아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많은 도전과 이에 따른 응전들이 있지만 도전이 모두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확실한 결론을 알고 있지 않고는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란 말로 그 결론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보다 안정적인 그리고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 도전이란 까칠스러운 연출하기는 매우 불가능하며 나아가 현재의 환경에 잘 익숙해지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말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늘 어려운 우리교회의 현실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만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그리고 명령하시는 크고 비밀한 세밀한 말씀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고 도전한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의 지시에 편하고 안락한 환경을 과감하게 버린 아브라함의 도전

성경의 인물들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그 많은 도전 멋진 시작은 본토 갈데아의 우르를(메소포타미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라 라는 명령을 따른 아브라함의 도전의 시작은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중 중요한 사건이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입니다.



구약성경의 갈데아는 고 바벨론을 의미 하며 우리가 잘 아는 최고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 정도의 그때 당시 최상의 문화와 문명 그리고 편리하고 유리한 삶의 환경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벌떡” 일어나서 식솔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아브람의 결단의 용기를 통해 하나님은 그를 훌륭한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주셨고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히 창대 하였던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시에 세상의 화려한 연락을 과감히 걷어차 버리고 일어설수 있는 신앙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두렵지만 여호와를 망령되게 멸시한다면 그 누구라도 싸웠던 다윗의 도전

약 290cm의 키의(삼상 17: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 6규빗444.5mm*6+한뼘 23cm=약290cm) 블레셋의 거인 장군인 골리앗이 하나님을 망령되이 소리지를 때 비록 향한 열 일곱, 여덟 살 다윗의 거룩한 도전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시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문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성경이 주는 정보로는 그 때 다윗이 몇 살쯤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단 다윗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삼하5:4,5 뿐입니다. 거기에 보면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5:4,5)

많은 학자들이 다윗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아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20년 조금 넘게 잡고 있습니다.(물론 정확한 근거는 없음)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을 때가 38(37.5)세 쯤 되었으므로 다윗이 이새의 집에서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시기는 그의 나이 15세에서 17세 쯤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로부터 그가 골리앗 앞에 선 그 사이의 시간도 알 길이 없음으로 단지 짐작할 수박에 없는 데 한 1,2년 정도로 보면 무리가 없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골리앗과 싸울 때의 다윗의 나이는 17세에서 18,9세 정도일 것입니다.



3. 단번에 소명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엘리사의 도전

엘리사는 그의 스승인 엘리아를 따라가기 위해서 넉넉하고 부요한 삶을 뒤로하고 (열왕기상 19: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목숨 걸고 따라갔던 용기를 지녔습니다.



열왕기하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열왕기하 2: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열왕기하 2: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열왕기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4. 죽음의 고통을 사랑으로 던지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전

몇 달 전에 딸하고 아들이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기 위해 혈액을 체취 했었는데 아이들이라 혈관이 잘 안 잡혀서 간호사들이 바늘을 이리저리 찔렀는데 그때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14살짜리 딸아이는 여자아이고 약간 엄살이 있는지라 그런지 바늘이 들어간 순간부터 울어댔는데, 9살짜리 아들은 꾹 참아가며 울음을 삼키며 참았다가 대 여섯 번 찔러진 상황이 되어 너무 아파서 그만 작은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는데 내가 대신 피를 뽑아줄 수 없고 아파 줄 수 없으니 그저 바라보며 딱히 해줄 것도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검토하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준 그 서툰 간호사들 인데도 불구하고 나중엔 마음속에 정말 화가 치밀게 되더군요.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고통의 잔을 드실 때 성부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때 그리고 그 고통의 과정 중에 괴롭고 속상했을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위대한 사랑의 도전을 묵묵히 마무리 지심으로 해서 나와 여러분의 구원을 단번에 완료해주셨습니다.





결어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여러 차례 쓰러지지만 용기 있는 자는 평생 한번밖에 쓰러지지 않는다.” 라고 세익스피어는 용기 있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랑하는 영태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용기 있는 도전을 할 시기가 점점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편하고 안주하였던 곳에서 일어나길 하나님이 지시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감히 두렵고 떨려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성령님의 감동조차도 포기하고 주저앉아 환경을 고민하고 또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요구하실지도 모릅니다.



또한 너무 힘들고 지쳐 이젠 주저 않고 싶은데 심지어 주의 종의 입술로 이젠 많이 고생했으니까 좀 쉬라는 육체의 달콤한 유익도 우리의 소명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상황도 연출될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일을 성취해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성경말씀에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여호와의 지시와 소명 그리고 그들의 임무를 목숨으로 사수했던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간증을 기억하며 오늘 우릴 구원키 위해 단번에 그분의 몸을 드리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이 도전의 릴레이를 이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26: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히브리서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5~28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파주영태제일교회 이주형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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