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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와 보라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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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1: 35~42
제목 : 와 보라


함께 어울어져 관계성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만남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늘 깨닫게 됩니다. 노사연이 부르는 노래에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만 만남이 운명이든 우연이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가져옵니다. 좋은 친구, 좋은 스승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속에서도 나쁜 부모가 없지만 좋은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얼만 소중한 지 모릅니다. 속담에도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자녀를 만난다는 말도 이상하지만 좋은 자녀는 부모에게 영광이지 않겠습니까? 큰 기쁨과 감사가 되는 줄 압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만남의 놀라운 일을 통하여 우리 삶이 변화되어지고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온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메시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다,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다. 나는 다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의 광야의 소리이다’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뒤에 오시는 분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는 순교의 제물로 사라집니다. 

오늘 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그렇게 증거합니다. 얼마나 올바른 증거입니까? ‘내게 말씀해주신 하나님이 내게 세례를 주시고 그 위에 성령이 임하거든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 메시야인줄 알라’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랬더니 제자 안드레와 요한이 세례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랍비여 어디계십니까?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우리의 간절한 요구를 아십니까? 우리가 구하는 바를 주실 수 있는 분입니까? 당신은 메시야입니까? 나중에 발견하고 난 뒤에 안드레는 돌아가서 자기 형을 보고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것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와보라, come and see 이 말씀이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라는 말, έρχομαϲ 이 헬라어는 직설명령형입니다. 바로 여기 지금 오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누군가 이리오라고 하면 그 분이 잘 아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분이 이리 오라하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존경하고 잘 아는 분이 그의 연설장에서 나를 가리키며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여러분이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기독교는 오라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오라, 내게로 오라하십니다.
    
이번 미국 메이저리그에 들어가는데 일등석이 5백만원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저 100불 150불정도인지 알았습니다. 집에 앉아서 편안히 TV를 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면서 복잡한 운동장에 가서 봅니까?  5일제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 홈런도 없고 안타도 없고 선수마다 비실되면 누가 5백만원이나 지불하면서 거기에 가겠습니까? 그것은 대리만족과스포츠광들의 열광 때문입니다. 
   
문제는 부르심에 왜 왔는가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며 오셨습니까?  무엇을 구하려고 왔습니까? 왜 주님이 부르셨습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부르실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첫번째 예수님의 제자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신앙의 공동체, 소위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의 모임을 가르쳐 교회라고 합니다. 그들이 모인 집을 성전이라 합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삶의 스타일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지난 주에 새로 오신 분들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온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요, 은총이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래도록 주님을 섬기는 성도여러분, 교회에 오신 것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부르심의 음성에 응답하는 복된 걸음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좋은 것도 좋은 것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늘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새로운 의미로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는 말씀은 매일 작곡작사를 해서 부르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새롭게 깨달으면, 매일 똑같이 부르던 찬송도 오늘 또 새롭고, 늘 듣던 말씀인데도 오늘 또 새 은혜가 되어지고 새 삶이 되어집니다. 새로운 노래로 여호와께 화답하고 새 마음으로 주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으면 어디를 가셨겠습니가? 우리는 누구나 갈곳이 많고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하나이어서 여기 나오면 다른 곳은 못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게 오너라 하나님의 교회는 이 위대한 초청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라,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 구별하지 않는 예수님의 부르심의 초청입니다. 연말이 되면 무슨 모임이니 동아리니 많은 모임이 있는데 모두 다 그 모임에 맞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자격이 필요없습니다. 누구든지 아무나 나와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에 앉았을 때에 한 여인이 나와서 그는 과거에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안에서 그 인생살이가 얼마나 고달프고 살고자 발버둥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놀라운 변화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축복과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부르면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의 손길에 따라가면 우리는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세상물건 불탈 때 우리도 불탈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축복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집을 나갔던 탕자가 아버지앞에 돌아왔을 때에 그가 잃어버린 모든 재산과 그의 마음의 상처, 천대받고 멸시받은 삶이 새로워졌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앞에 오면 새로워집니다. 예수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주님앞에 나오면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 오라 (όραω) 부르신 주님은 와서 보라, 네 눈으로 확인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게 주시고자 하는 궁극적 확인입니다. 사람은 보는 것에, 마음이 가고 믿음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린이도 사이버세계를 열어놓고 잘못된 것을 많이 봅니다. 그래도 어른은 아이가 컴퓨터를 밤새 많이 공부하는 줄 압니다. 잘못하면 잘못됩니다. 
   
사람이 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십시오. 어느날 하와가 에덴동산에 거닐다가 뱀을 만났더니 ‘하와야 하나님이 여기 있는 과일 다 먹지 말라고 그러더냐’ ‘아니 다 먹는데 이것은 보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언제 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까? 젊은 청년이 묻기를 여자는 보지도 말아야 합니까? 그러면 네가 장님이 되어야 하느냐?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죄냐?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을때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 틈을 타서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혜화가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더라’ 여러분 보는 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구에 있을 때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여러직업을 가졌는데 그 중엔 안마하는 분도 계셨는데 ‘목사님 어떨 때는 앞못보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어요, 세상 더러운 것 안봐서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니 더 더럽습니다. 말하는 것 들어보고 안마해주면 세상이 참 더럽습니다.’합니다. 사람은 눈감고도 보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 다른 것을 보지 마십시오.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곳입니다. 용하게도 구석에 그것을 보고 가셔서 ‘교회 갔더니...’ 그러지 마시고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요즘 ‘성경적인 경영방법’ ‘예수님의 리더쉽’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고, 어떻게 하면 돈 잘 벌고 어떻게 살면 행복한 지 몰랐습니까? 그것은 기독교의 경전이고, 종교는 이상이고 종교의 본질은 불합리성입니까? 그래서 천국이 있다,없다, 그것은 믿는 데에 따라 다릅니까?
   
요즘 예수님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습니다. 여러분 성경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많이 보는데 성경보라고 하면 수면제를 탄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성경1000통독행진을 한 지가 2년이 지났는데 아직1000독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8독 7독하는데 어느 분은 1독도 안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1974년도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때 주제는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대답이시다’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주님의 초청을 받고 주님앞에 나올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의 문제이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르다고 우리는 신앙을 우리 스스로가 제한하고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폭발적 능력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번화된 우리의 삶 때문에 세상이 변화되어져가는 놀라운 일에 동참하는 기쁨과 헌신을 잃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남이란 역동적인 것입니다. 어떤 공식이 아니라 어떤 인격과 인격이 만나면 거기에는 놀라운 폭발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전기와 전기가 만나면 스파크가 일어나듯이 말입니다.
   
반대되는 얘기이지만 상담을 해보면, 잘해주고 싶은데 만나면 싸운답니다. 그래서 자기생각처럼 안된답니다.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내 가치관 내 성격 내 언어 나의 척도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니 서로 맞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릴 때에 배우고 성경 몇장 읽어서 머리의 척도를 가지고 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거기서 어찌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동적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만남은 가슴을 열고 너와 나와의 뜨거운 인격이 만나야 할 줄 믿습니다. 와보라, 주님앞에 나온 자는 가슴을 열고 생각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되게 하라’,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만들어냅니까? 하나님은 크신데 우리는 내 신앙, 내 경건으로 하나님을 잽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아름답기 보다는 추하게 보고, 된다고 보기보다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감보다 저 마음깊은 곳에 패배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있는 모험을 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마음놓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에 나온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신 줄 믿습니다. 창조자이시고 전능자이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하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자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이 냉냉합니다. 그의 이름을 찬송하는데 찬송소리가 낮습니다. 그의 앞에 기도하는데 시간이 길다 짧다, 설교는 한시간안에 마쳐야 한다고 합니다. 두시간이면 어떻고 30분이면 어떻습니까? 살아있는 생명력이 움트고 생명이 부딪히고 삶이 폭발한 예배에 살아있는 역사는 주님을 만난 듯이 일어나실 줄 믿습니다. 내게 오라, 내게 구하라, 주님이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 물을 내게 주셔서 다시는 샘에 물뜨러 오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것을 깨달을 때에 그의 인생은 감격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가 질 때에 함께 우물가에 모였거늘 부끄럽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피하여 정오에 혼자 조용히 왔던 그가 오히려 사람을 찾아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주님앞에 나와 참 주님을 만나고, 내 가난한 영혼이 그로 말미암아 부해지고 말씀 안에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되어졌을 때에 내 마음이 폭발하고 감동됩니다. 오늘 나를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갔을 때에 섬기게 되고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니까 착하게 살아라, 서로 용서해야한다, 사랑해야 한다면 율법의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즐거움이 여러분 앞에 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을 보면 동생들한테 깍쟁이 소리를 듣던 언니도 애인만나고 오면 머리삔부터 옷까지 입으라고 줍니다. 기분이 좋아서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들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그 안에 있는 기쁨 때문에 우리 삶이 오픈되고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오늘도 주님을 만나러 오신 분들  주님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가르침이 있는 선생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그가 우리의 진리이십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입니다. 그가 우리의 소망이고 위로가 되시며,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고 힘과 지혜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안에서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 됩니다’라고 고백할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리라’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책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보느냐 어떻게 선전하느냐에 따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하나 얻거든 세 개를 버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많고 갈 데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얼마나 복잡합니까? 세상의 모든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해결하면 다른 것은 자연히 해결하게 되어있습니다. 별것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찾으시고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내가 주는 평안과 다르다, 와 보라’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안에 여러분을 확인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전도하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분명히 보고 들으면 전하게 되어있습니다.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갇히고 시련을 만나고 죄의 괴수였다 그러나 이런 나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여야 그것이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왔던 자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집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에게, 가정에서부터 전하였습니다. 안드레와 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감동과 위로와 축복이 그들의 것이 된 줄 믿습니다.
   
왜 우리를 가르켜 신부라고 하고 주님을 가르켜 남편이라 하셨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생활이 주님과 친구가 되어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질까? 주님과의 아름다운 대화속에 서로가 잘 maintanence를 하고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까?  오늘도 내게 주신 말씀인 줄 알고 주 앞에 받아들입시다. ‘주님 오늘까지 이끌어주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주앞에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 영광을 위하여 이렇게 살겠습니다.’ 여기 새로운 성숙함이 새로운 사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주일이 그리워지고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주님앞에 늘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만나는 기쁨이, 주의 말씀 듣는 새 힘이 여러분 앞에 솟아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만났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는 내 구주시고 내 지혜, 능력, 치료자가 되신다’라고 나가서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과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와보라’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귀한 말씀으로 우리교회가 왕성하여져가고 우리 신앙이 성장해져가고 그리스도의 사귐에 아름다운 축복이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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