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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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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막 2:1~12)
 

오직 예수님 만이라는 데 대한 인터넷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왜 오직 예수님인가요? 왜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나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명칭만 다를 뿐 천국, 지옥이 다 있습니다. 지옥이란 명칭은 하나지만 천국이란 명칭은 많이 있지요. 극락, 천당, 낙원, 신세계, 초락도, 신천지, 등등등....., 이런 것들은 착하게만 살면 다들 구원 받아 천국에 간다는 교리지요.
  
다만, 개신교 교인들이 믿는 신처럼, 착하게 살았던지 말았던지? 설사, 자신을 몰랐다 해도? 오로지 자신을 안 믿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모두 지옥 불에 던져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한다는? 임산부와 뱃속의 태아까지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신은? 유일하게도 개신교인들이 믿는 야훼(예수)라는 신뿐입니다.”
  
위의 글에 대한 의견 쓰기가운데 하나의 글을 인용해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개신교가 박멸되어야 할 종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교, 개신교 등을 제외하고 다른 종교에는 저런 질문자체가 나오지 않지요. 어떠한 장황한 변명이나 구구한 설정을 늘어놓더라도 사람이 신이라거나 '신의아들'이라 주장하는 종교는 사이비일수 밖에 없습니다. 어리석은 세뇌에 갇혀있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하지만, 진실은 허황된 교리와 공포심을 이용한 선교에 뇌가 마비된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들의 인생과 삶의 문제의 해결자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인간의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답이십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희망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입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시작하여 만남으로 마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양육됩니다. 10대 시절에는 친구와 만남으로 어울림과 사회성을 배우고 경험합니다, 20대에는 이성과의 만남으로 가정을 이루면서 이성적 결합의 행복을 가집니다. 3, 40대 이후부터는 사업의 동업자와 만나 일과 인생 삶의 성취합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기쁨도 만남이고 행복도 만남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만남이 필요합니다. 이런 만남 가운데 꼭 만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 분이 인생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6-7)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만나야 할 주인공을 소개해 줍니다. 곧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만남은 곧 나의 인생이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이 만남은 오묘합니다. 우연처럼, 때는 사건처럼 그리고 축복처럼 다가옵니다. 이 만남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 중풍병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중풍병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이 사람의 중풍병의 원인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죄를 사해주시고 중풍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해물과 같은 것입니다. 
  
󰒑 협소성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들고 예수님이 계신 집을 찾았지만 예수님께서 계신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문 앞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협소한 공간은 예수님을 만나는 어려운 조건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진리에 대한 불신의 고집과 무지함의 편협성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됩니다. 때로는 지식이라는 것이 우리를 가두어 놓고 영적 세계에 대해 눈을 멀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을 만나는 협소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와 문화생활 속에서 바쁘다는 것 때문에 자유롭고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는 좁은 생각과 협소한 마음의 공간 속에 살아가고, 향락과 유흥의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협소한 영적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 부정적인 대중성         
 
 예수님 만나기에 어려운 조건의 또 하나는 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데 집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구경꾼들이고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불신앙의 대중성의 영향력이 예수님 만남의 역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 절망감
  
중풍병자와 친구의 도움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 앞에 이르렀음에도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데서 절망했을 절망감입니다. 아마 이 절망감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 만남의 큰 장애가 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 절망감은 예수님 만나는 것을 포기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는데서 겪는 절망감이 현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절망의 노예로 살아가면서, 그 절망감까지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서운 절망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무서운 장해적인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29)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예수님 그 분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찬양을 들으시겠습니다)
   
중풍병자는 방해적인 요인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용기와 결단력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 만나야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한다는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네 친구는 그 확신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저극적인 믿음은 용기를 내서 지붕을 뚫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확신을 가지고 용기 있게 결단하는 그들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병의 근원인 죄를 사하시고, 그리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돌아가도록 중풍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미국의 대부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Vanderbilt)’ 라는 분이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재물이 신앙이며 존재 이유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흑인 하녀가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그 곡은 찬송가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밴더빌트’는 조용히 찬송가 가사를 음미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예수의 속성이 아주 쉽게 표현돼 있습니다. 
  (찬송 94장을 함께 불러 볼까요?)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 죽을 자의 생명, 추한 자의 정함, 죽은 자의 부활….’ 그때 ‘밴더빌트’의 입술이 조금씩 떨렸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과 지식, 명예를 그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았음을 포기하고 예수를 그의 인생의 주인으로 곧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하고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정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은 사망을 삼켜버립니다. 그 신앙은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향한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실 분이라는 확신, 그 분만이 나의 희망이라는 믿음, 그 분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실 분이라는 그 확신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께 다가가도록 결단 하십시오. 어 떤 방해물이 있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그 방해물을 깨드리십시오. 지금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영상을 보겠습니다)
  
예수님 만남으로 행복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의 병든 삶과 병든 인격과 함께 육체의 질병까지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만남의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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