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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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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대상 4:9~10)


역대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수 천 년간의 히브리인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상1장~9장까지에 무려 500여명의 이름이 지루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4:9절에서 갑자기 한 사람 야베스의 이야기를 짧게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4장에서는 유다 지파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하다가 아주 예외적으로 야베스란 인물을 기록하며 그는 기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소개합니다.
성경 기자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야베스를 이 족보에 소개한 까닭은 이 족보에 기록할 인물이 아닌데 
그가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이 족보에 기록된 인물이 되었고
나아가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뿐만이 아니라  귀중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야베스는 어떤 신앙적 인물입니까?
1. 야베스는 어떤 신앙적 인물입니까?(9절)
야베스에 대해서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본문에서 연대를 계산해 보면 사사기 시대의 사람으로서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서 이스라엘 남부 지방의 사람입니다.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란 말은  한 가문에 눈에 뛸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고 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 수고로이 낳았다 ] 라는 뜻으로 성경은 해석합니다. 히브리 말로 정확히 말한다면 [ 그가 고통을 불러오다 ] 라는 뜻입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는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었을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다 그의 생애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가 야베스라고 지었을 때에는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골치덩어리 아니면 애물단지가 되겠다 싶어서  야베스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야베스라는 자식은 그 어미가 볼 때에 장래에 기대할 만한 인물이 못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돌아보면  성공할 수 없는 악 조건 가운데서도 그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종 종 대하게 됩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공할 폼이 아닌데  그 분야에 앞서가는 사람들을 볼 때 
의아한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야베스도 바로 그런 류의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희망이 없게 보였던지 그 어미가 
이름을 애물단지라고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그러나 야베스는 장래에 대한 침울한 징조에 굴하지 아니하고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신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고 강렬하게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은 야베스인데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귀중한 자`라는 것은 재산이 많고 ,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가 있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해서 존경받는 사회 지도층을 말합니다. 

그런데 야베스에 대해서 추정할 수 있는 한 가지 정보가 있는데
대상2:55절에 보면 [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 ] 여기는 야베스가 지명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유명한 인사들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 중에는 야베스는 겐 족속이라고도 합니다 .
겐 족속이 누구인고 하면 삿1:16절에 보면 
[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
그러니 야베스의 영향력이 지명으로 남을 만큼 귀중한 인물이 됨을 말합니다.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인생은 변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오직 기도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인생을 바꿔놓은 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2. 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 생각이 듭니까?(9-10절)
야베스가 한 일 가운데 가장 확실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10절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
우리 성경에는 그냥 간구한 것 같은 정도로 기록하고 있읍니다만 원문에는 <카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라 - 삼손이 목이 말라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움푹 페인 곳에서 물이 솟아나게 할 때
그곳 이름을 엔학고래 - 부르짖는 자의 샘이 되시는 하나님이라 했듯이
야베스는 엔학고래의 하나님에 눈이 뜨여졌던 것입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부르짖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야베스의 부르짖는 기도의 시작은 [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 이란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에 성경 개역한글판에는 [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 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야베스 기도라고 하면 첫 번째가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몇 시간을 주석과 참고 문헌을 들추어 보니 ‘임’ 이라는 접속사가 있는데 이걸 ‘만일’이란 말로 번역 할 수 있지만 간절한 소원을 담은 원컨대 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문법적으로는 개정개역판 번역이 옳다할지라도 원문에 복이란 말이 두 번 나오는데 
헤시드 주석에는 “나를 축복하고 축복하소서” 라는 뜻으로  주석합니다.
그러니 복에 복을 달라는 말이 더 원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의 복이란 ?
[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 ]를 뜻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떻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능히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바로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라고 찬송합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라고 찬송합니다.
성경도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근원이 뭡니까? 원천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복이 흘러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근원이라는 말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고 활동상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민6:24절 이하 말씀같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복된 말씀에 귀를 막지 마시고 나도 오늘 야베스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 
일평생 하나님께 복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베스가 어떻게 하나님께 복에 복을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습니까?
1) 자기 자신이 누구인 줄 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야베스에게서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성찰을 통해서 그는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야베스가 하나님께 복에 복을 더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왜 야베스가 복을 주십옵소서 하지 아니하고 복에 복을 더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습니까?
2) 이것은 장자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야베스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귀중한 자란 바로 유다 지파의 족장을 말한다고 합니다. 
야베스는 남달리 가문의 장자로서 족장의 직책을 잘 감당할려고 하니  복에 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수17:14절 이하에 보면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각 지파대로 땅을 기업으로 나누는데 요셉의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우리는 여호와께 복을 받아 큰 민족이 되었는데 우리의 기업으로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두 분깃을 달라고 요구하니
여호수아도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저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네가 개척하라고 합니다. 
본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이 열한 째 아들이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 장자권이 요셉지파에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아비 야곱의 임종시에
창49:22절 [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라고 축복의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요셉 자손들이 두 배의 분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장자가 뭡니까?
성경은 야곱의 장자권을 장자의 명분이라고 합니다.
명분이라는 말은 직분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직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네게 두 배의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 직분자 여러분 
나는 오늘 내게 맡겨진 직분 잘 감당하려고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복에 복을 달라고 구할 결단을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주어진 사명 감당하기 위하여 
복에 복을 더해달라고 부르짖는 교우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런 야베스 복에 복을 달라고 기도한 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하는 첫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10절)
야베스의 복의 첫 번째 내용은 
10절에 [ 나의 지역을 넓혀 달라 ] 는 것입니다.
지역이란 말은 [ 경계선 ] 이란 말입니다. 
야베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에게
약속의 땅을 분배해 주던 시기였습니다.
이 경계선은 바로 이스라엘 지파들이 분배를 받았던 기업의 경계선입니다.
이 경계선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에 그 누구도 옳길 수 없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이 경계를 옳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이 지역을 넓혀 달라고 합니다. 

야베스의 축복의 내용 속에는 
단순히 부동산을 구하는 이상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다 족장으로서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더 많은 영향력과 더 많은 책임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고  기도하되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바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땅을 걸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인생만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이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주시고 복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때에 사람은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의 삶 없이 존귀해지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른 기도는 모든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으며  하나님에 의해 복되고 존귀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제가 목회 초창기에 
열심히 부를짖고 외쳤던 성구가 기억이 납니다.
시81:10절 [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 
우리가 가진 재능이 무엇이건, 어떤 교육을 받앗건, 어떤 일에 종사하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역이라 말할 수 있고 사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런 복을 받고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더 많이 하기 원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때                            
사54:2절에 [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라 ]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 하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꿈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 우리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마음에 새겨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우리의 복에 복을 더해 달라는 간구와  지경을 넓혀 달라는 비젼이 실현되는 되는 
꼭 계획 속에 포함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손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 달라] 고 기도합니다.
4. 야베스의 기도 중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란 구절이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이 야베스의 두 번째 복의 내용입니다.  [ 주의 손이 나를 도우사 ]
주의 손이 나를 도와 주셔야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며 지경을 넓혀 달라고 부르짖는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 같고 주위에서 믿음 없는 교인들이 바라볼 때는 떠벌리는 것 같지만 그러나 [ 주의 손이 함께 하면 ] 능히 이뤄질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눈이 뜨여져야 할 것은
[ 우리가 감당할 수 없던 일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기회로 바뀌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위대해지신다는 것입니다. ]

이런 사실들은 구약의 느헤미야를 통해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어 보면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중건한다는 것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어 성문들은 다 불타버렸다는 소문을 듣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 울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방해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읍니다만 
2:8절부터 계속하여 나오는 말이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사 ]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케 하신줄 믿습니다.
주의 손은 
[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묘사하는 
성경적 표현 ]입니다.
수4:24절에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후 길갈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하는 말이
[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합니다.

야베스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하는 말은                  
자기의 계획에 하나님이 거들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놀랄만한 부흥을 가져오게 된 배후에는
행11:21절
[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는         
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더 넓은 지역을 확장해 나가려고 하니  한계를 초월해야 겠기에 
그리고 초자연적인 능력의 필요로 자연스럽게 발전해나갑니다. 
우리도 야베스와 초대교회 성도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임재를 구한다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결과를 보게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손  즉 절박한 실패를 기적으로 바꾸어 주고 
엄청난 과업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와 주실줄 믿습니다.
대하16:9절에 [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합니다. 
하나님은 위인이나 스타를 두루 감찰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의 능력을 바라며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찾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베스의 마지막 간구는 복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야베스가  성공한 자의 뒤에 따르는 위험적인 요소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에서 지켜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5. 우리가 형통할 때 잊기 쉬운 기도가 무엇일까요?(10절)
[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
야베스가 왜 이런 기도를 드리는가?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으로 봐서 하나님의 은혜는 순환주기가 있습니다. 
공동체든 개인이든 하나님의 은혜는 순환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살던 시기는 사사기 시대입니다.사사가 다스리던 300년은 은혜의 순환주기를 가장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삶이 형통해지면 신앙이 안일해 지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들어 징계하시고 그 고통 중에서 부르짖으면 삶을 회복시켜 주시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사사기 시대입니다.
야베스는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소서
즉 이 말은 형통할 때 교만하거나 안일하여 쭐떡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처음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복에 눈이 뜨여지면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셔서 삶이 형통해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안일해지거나 나태해 집니다.                  
그럼 환난을 통해 또 정신을 차리고 신앙의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왜 야베스처럼 복에 복을 더하는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것은 복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눈이 뜨여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소개해 드린 브루스 윌킨즈의 <야베스의 기도> 란 책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존이란 사람이 천국가서 체험한 짤막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존이란 사람이 천국을 갔는데 베드로가 황금길과 아름다운 저택, 그리고 천사들의 황홀한 노래를 들어며
이상한 건물로 들어 갔는데 그 건물 안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들로 빼곡히 들어 차 있는데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기 상자마다 전부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존이 베드로에게 [ 제 것도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 그렇다] 라고 합니다.
존이 열어본 햐얀 상자 안에는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기 원하셨던 많은 복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전혀 그런 것들을 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에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복을 다 예비해 놓았지마는 
약4:2절 말씀같이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했기 ]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 하나님은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엡3:20절 우리 하나님은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하시는 이 ] 라고 합니다.
4월 전혀 기도의 달을 맞이하여  복에 복을 구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고 부르짖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주의 선한 손이 나타나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복에 복을 받은 후에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기도하는 승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
어떻게 하면 나의 기도가 야베스의 기도처럼
나의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습관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려면 먼저 습관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반복되어 습관이 되는 첫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행동으로 바꾸시오.
기도가 습관이 된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나의 삶은 야베스의 기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통하여 내 삶을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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