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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대받은 사람들 (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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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사람들 (마 22:1~14)
  

기독교 전통에서는, 사순절 기간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난주간에는 결혼을 피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기쁨의 잔치인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주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고난주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고난주간에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결혼이 곧 고생길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ㅎㅎㅎ
글쎄,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궁색한 답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고난주간이 지나고 부활절을 지나고나니 결혼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2절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특히 왕자의 혼인 잔치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천국에 대한 비유를 혼인 잔치에 비유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재미 하나도 없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종교로 봅니다. 
술, 담배도 금하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주일을 성수해야 하기 때문에, 주일에는 놀러 못가는 엄격한 종교로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되려면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하는 
재미없는 우울한 종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혼인잔치 집과 같은 종교입니다.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잔치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의 축제입니다. 모두가 함께 흥겹게 하나님 안에서 잔치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너무 엄숙한, 예수님의 장례식 분위기로만 만들지 마십시오.
오히려 매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통해 
그 잔치에 기쁨이 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잔치가 너무 좋아서 술에 취할 시간도 없고, 세상 재미에 빠지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렇게 기쁨이 넘치는 잔치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비유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1.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사람들

1) 일상적인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3-5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누구의 초청입니까? 누구의 잔치란 말입니까?
한 나라의 왕자의 혼인 잔치요, 임금의 초청을 받았는데 거절하다니요?
더구나 이 잔치는 결코 예고 없이 갑자기 주어진 잔치가 아닙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상 처음에는 알리는 의미에서 초청장을 내고, 두 번째는 잔치가 임박해서 다시 초청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돌아보지도 않고, 각자 자기 일을 위해 가고 있습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여러 번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급기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리고 예수님은 믿지 않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입니다. 
일상적인 삶을 구실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일에 바쁠 수가 있습니다. 자기 밭으로 간 사람이나 자기 사업하러 간 사람들이 한 일, 그 자체가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지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놓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말세 때는 모든 사람들이 바쁜 것이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바쁜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바쁘냐?”가 문제이고,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할 만큼 바쁜 것이 문제입니다. 

임금은 종들 곧 예언자들과 전도자들을 보내서 아들의 혼인잔치에 당연히 올 것으로 예상한 손님들 
곧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 밖으로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세상살이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살이에 너무나 바빠서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거의 모든 시간을 다른 데 사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 주면 됐지,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은혜 받을 수 있는 집회를 열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상한선을 딱 그어놓고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배는 나오지만, 훈련은 못 받겠다고 합니다. 집회에는 참석할 수 있지만, 전도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일군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의 의자만 따뜻하게 덥혀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일꾼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뒤로 미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돈 벌어 놓고, 애기 키워놓고, 집 사놓고, 이사 간 뒤에, 대학 합격시켜 놓고.....
그러나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2) 적극적으로 핍박하고 거절한 사람들(6절)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초청을 거절한 정도가 아니라, 초청하러 간 종들을 죽인 끔찍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을까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속담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리를 거부할 뿐 아니라 말살하려고 달려드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역사 속에서도 교회를 말살하려는 사람들, 예언자와 선지자들을 돌로 치는 사람들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오늘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결국 임금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7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초청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택함을 입은 사람들(8-10절)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거절을 하였으므로 
결국은 전혀 잔치에 초대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잔치를 거절했기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함을 입은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조직에는 자격기준이 있습니다. 
무슨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하고, 어떤 신체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등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 문화, 유 무식을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거리에서 만나는 대로 초청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다, 하나님의 잔치에는 참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형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무런 희망이 없던 우리를, 조건없이 건져주셨으니 그 은혜가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143장 찬송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우리의 과거를 묻거나 문제 삼는다면 아무도 이 잔치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잔치는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오면 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3. 잔치에 참여했다가 쫓겨난 사람들(11-13절)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들은 계획된 초청이 아니고 길을 가다가 초대받았기 때문에 예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말하면 될 텐데, 아무 말도 못했다고 했습니다.성서학자는 말하기를, 당시의 궁중의 결혼풍습에는 예복을 준비하였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입도록 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이 이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잔치에 참석하는 진정한 목적을 망각한 것입니다. 이 잔치는 왕자를 위한 잔치입니다. 
그러면 왕자를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복을 입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내가 귀찮게 예복을 입어야 한단 말인가? 나 좋을 대로 하도록 내 버려둬라.’

여러분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목적으로 드립니까?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드립니까? 혹시 내 스타일만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궁중 문에 도착한 사람들이 궁중의 법칙대로 예복을 받아 입을 때,그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자기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헌 옷을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왕자를 기쁘게 할 목적과 그 의도를 가지고 잔치에 참석했다면,이제 마땅히 새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 나의 철학과 선입관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수정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내 뜻에 맞게, 하나님을 바꾸고, 길들이려고 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연조가 쌓여가도,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철학대로이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당신의 철학대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가? 
내 생각, 철학, 방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있어서 무익하다면, 이제 당신의 철학을 포기할 용의가 있습니까? 내 과거의 삶의 방법과 생각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대로 옷을 입기를 원하는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의 옷을 입기로 원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다 떨어지는 나의 낡은 옷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도전의 말씀입니다. 

헌 옷을 계속 입을 것인가?  헌 옷을 벗고 거룩한 예복을 입을 것인가? 
이제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명령을 내립니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복으로 갈아입는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거룩한 새 예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다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14절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하셨는데, 
교회가 많고 교인들이 많으나, 그 중에서 택함을 입은 자가 얼마나 될까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성도의 귀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잔치에는 놀라운 은총과 축복이 풍성하게 있습니다. 
그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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