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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길을 따라서 (창 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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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을 따라서 (창 6:8~14)


백두산 천지에는 괴물이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진을 직접 촬영을 해서 괴물을 보았다는 학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현장을 가보고 깊이 연구한 결과 ‘괴물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하 40-50도가 오르내리는 곳에서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UFO도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바로 그저께 영국 런던에서 데렉 버든이라고 하는 사람이 휴대폰으로 UFO를 촬영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금 세계가 이 사건으로 인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UFO도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오늘 과학이 발달함으로써 많은 신비로운 것도 사라지고, 개인 국가 특정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비밀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감출 수 없는 시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감추지 아니하시고 계시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에게 그 정보를 공개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두 15명이 나옵니다. 최초의 믿음의 사람은 아벨입니다. 그 뒤에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그리고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이렇게 모두 15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5명을 소개했지만, 15명만 잘 믿은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이 열 다섯 분을 우리에게 소개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이 분들의 삶을 따라 살아갈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들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분들의 삶을 따라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에녹과 동행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노아의 여덟 식구를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요셉을 통하여 온 애굽을 구원하시고 또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기도 하셨습니다. 기생 라합은 멸망받는 여리고 성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이렇게 은혜도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믿음의 사람의 삶을 따라서 걸어가고 순종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차만별이 아닙니다. 온 세계 어디에 살아도 믿음의 사람은 같습니다. 마치 한 혈통이요, 한 유전자요, 한 피부를 가진 한 공동체의 민족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우리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아벨과 우리가 다를 수 없습니다. 무슨 직업을 가졌든 이 지상에 어느 나라에 살든 천 년 전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 15명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가 태백에 갔더니 그곳에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 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시내 한 복판에서 물이 엄청나게 샘이 솟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곳 근처에는 한강의 발원지가 되는 ‘검룡소’ 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 샘에서 물이 하루에도 수 천톤씩 솟아나와 한강으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어느 강이든 발원지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의 발원지는 탄자니아에 있습니다. 그 곳에서도 역시 어마어마한 호수 속 지하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을 제가 보고 왔습니다. 거기에서 시작해 나일강 지중해까지 6,000km나 되는 수 만리 길을 따라 물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강도 검룡소에서 시작해서 한강 600리를, 황지못에서 낙동강 1,300리를 쭉 흘러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의 발원지와 같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은 우리의 발원지 황지못과 같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하나님 인도하시는대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제각각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풍속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변의 환경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이미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간 그 길을 따라서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갑니까? 
  
첫 번째로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땀을 흘리며 일했습니다. 노력했습니다.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이 땅을 떠나는 그 날까지 저들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해서 그들이 물 위를 걸어간다거나 날개를 가지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삶을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 그리고 아벨 모두 한 평생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모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요셉은 남의 집에서 종으로 지냈습니다. 모세도 처갓집에서 40년 동안 처가살이 하며 양을 치고 살았습니다. 양의 배설물을 치우고, 양 거름을 치고, 양을 안고, 양을 치료하며, 돌보며, 양과 함께 살았습니다. ‘노아도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데려다가 방주를 하루 또는 한 시간 만에도 뚝딱 지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이 기적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여겨질 때 기적을 주시고, 가장 불행하고 위기에 있을 때에만 특별한 기적을 주시지 그 이외에는 사람이 성실하게 사람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십니다. 

사람이 귀신이 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천사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우리의 모든 삶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부지런함으로 땀 흘리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나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그렇다고 성령받은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같이 능력 많은 사람도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도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석수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목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석수 일을 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는 전부 돌로 만든 집들입니다. 석수일은 먼지도 많이 나는 중노동입니다. 나무보다 더 힘듭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손이 다 부르트는 것이 석수일입니다. 

우리교회 전면에 있는 돌은 공장에서 기계로 만든 돌이 아닙니다. 전부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로 올릴 때도 기계로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전부 짐을 짊어지고 무거운 걸 양쪽으로 이렇게 네 명 또는 여섯 명이 가지고 올라갈 때 저는 무서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조금씩 올리다 말고 쉬었다 할때에 저는 저 돌이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혹시라도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릅니다. 그 옆에 있는 계단 돌도 전부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볼 때에 석수일이 제일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하다 손을 찍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이 짤려져 나갑니다. 석수는 지문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힘든 일을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은혜 받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산에서 산신령같이 흰옷 입고 앉아 있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 나와서 기도한다며 집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주여 주여만 찾는 사람은 옳지 않습니다. 농사짓는 분은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 하고, 사업하는 분은 열심히 사업해야 합니다. 기도를 한 뒤에는 사업하러 가고, 가정일도 하러 빨리 가야 합니다. 부지런히 가야됩니다. 기도하느라 시간을 많이 버렸기 때문에 갈 때는 빨리 가야 됩니다. 교인들은 움직임이 둔하면 안됩니다.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일하러 나가서 빨리빨리 돈벌고 빨리빨리 살아야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습니다. 빨리빨리라고 해서 무리하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지런히 하라는 말입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들어주시지만 우리가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은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내가 땀 흘리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했는데도 내 힘으로 안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주여, 주여’ 하면 안 됩니다. 운동 선수는 열심히 훈련하며, 게임에 임해야지 연습 한번 안하고 기도만 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공만 올리면 천사가 들어다 갖다 줄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축구공 넣을 때면 상대팀 눈 감게 만들어 그냥 그대로 밀어넣을 수 있도록 주님은 그렇게 안하십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한 만큼 우리를 살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검소하게 살아야 됩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됩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됩니다. 한 순간에 잘 살려고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탕주의로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적은 것도 귀하게 여기고 저축하고 주신 것은 아껴쓰면서 살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아껴야 합니다. 로마 멸망의 원인은 도덕이 무너졌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가정이 무너졌다 그러지 않습니까? 사치하고 연락하면서 정신적인 면이 다 무너지면서 로마가 멸망한 것입니다. 그들은 미신을 숭배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해서 잘 살 나라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예는 없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흥청망청 사치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례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아왔습니까?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그의 아내 이멜다 여사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웠습니다. 고급 신발만 2,200켤레, 팬티만 3,500장. 매일 갈아입어도 10년 갈아입고도 남습니다. 무엇 때문에 팬티를 그렇게 많이 가져다 놓습니까? 그녀가 가진 옷 수 백벌 중에서 조금이라도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살면 안됩니까? 검소하게 살아서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리하게 흥청거리는데서 기쁨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아닙니다. 이멜다 여사의 셋째 딸 결혼식에는 진주알이 8,000개나 박힌 드레스를 입혔는데 그 옷이 너무 무거워서 끌고 가지 못하니까 도우미 다섯 명이 들어다 옮겨줬다고 합니다. 그 드레스 값만 180억이라고 합니다. 한 번 입을 옷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낭비하느냐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결혼식에 참여하는 손님들을 위해 꽃을 공항에서부터 예식장까지 장식했습니다. 몇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꽃길로 만들었는데 그건 이해한다고 해도 그 꽃을 호주에서 수입해서 장식을 했다고 합니다. 필리핀도 꽃이 많은 나라인데, 수입한 꽃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더운 나라에서 혼자만 밍크 코트 입고 에어콘 틀어 실내온도를 18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특별히 여자 분들과 관련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치가 여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자들이 사회와 가정에서 사치하지 말고 경건한 믿음의 어머니가 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약 4:4) 

특별히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는 이유는 그런 면에 있어서 여자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백화점에도 가면 전부 여성코너입니다. 1층 부터 전부 여성코너입니다. 남성코너는 7층에 있습니다. 7층은 사무용품등과 같이 섞여 있는 경우도 보았는데, 그것을 보면서 남자들은 소외되는 있다고 제가 느꼈습니다. 믿음의 나라들은 검소한 것이 특징입니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열심히 살고 정직하게 삽니다. 
  

세번째는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아무 어려운 일 없이 방안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아무 문제없이 만사가 형통하게 산 것이 아니라 다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흉년을 만나 애굽까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노아도 방주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모세나 야곱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요셉은 감옥까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어렵지 않은 성경의 인물들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교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믿음의 인물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보고, 어려울 때 낙심하지 않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오히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항상 쉽지만은 않고, 어려운 것은 정상입니다. 
  
요즘처럼 어렵다고 못 산다며 자살하고, 가정을 뛰쳐나오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생들 중   1년에 5만 명이 공부가 어렵다고 뛰쳐나옵니다. 여러분! 공부가 쉽습니다. 나와서 살아보십시오. 나중에 공부 안하고 살아보십시오. 평생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데 공부해도 어렵지요. 아무래도 공부 안한 사람보다는 젊어서 공부를 하면 그래도 나중에 안한 사람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어려운 세상을 하나씩 하나씩 어려워도 감당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가정이 어렵다면서 뛰쳐나와 자녀와 남편을 버리고 한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도 아무 어려움이 없는 사업만 하려고 하니 세상에 그런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농사도 저절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뿌린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것도 어렵습니다. 고기도 그냥 나가서 그물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부도 어렵고, 농부도 어렵습니다. 정치도 어렵고, 다 어렵습니다. 이것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힘들다고 해서 방주 안 지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1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참고, 기다리면서 결국 그 가정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해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시 126:5, 6) 할렐루야!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쉬운 것만 찾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쉽게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행복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근면 부지런하며 어려움을 잘 참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말을 안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남에게 왜 말합니까? 다 어려운데 왜 부모님에게 이야기합니까? 부모님도 어려운데, 왜 친구에게 이야기합니까? 친구도 어려운데, 어렵지 않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가지고 ‘주여! 이길 힘을 주옵소서. 감당할 힘을 주옵소서. 이 어려움을 지나 좋은 아침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고 나가야합니다. 
  
제가 그저께 영화를 하나 보았습니다.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는 내용인데, 온 가족이 어려움 가운데 탈출하는 과정을 엮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고, 총에 맞기도 하고, 언덕을 기어 올라가다 물에 떨어지고, 다시 배타고 내려가는 등 계속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승리합니다. 온 가족이 살아납니다. 악의 소굴에서 빠져 나옵니다. 마침내 가정을 찾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화들도 그런 것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보면 영화라는 영화가 다 싸움판에 온갖 퇴폐한 것만 자꾸 보여주고 철학이 없잖습니까? 영화 속에, 연속극 속에 청소년으로 부터 모든 사람들이 의롭게 살며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날이 온다는 기대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도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에 대해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보고 참고 나가면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훨씬 더 좋은 날이 오고 잘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에게서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퇴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보십시오. 바울은 그렇게도 능력이 많았지만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까? 오늘 한국교회에 많은 주의 종들이 농사짓는 원리를 모릅니다. 농사를 지으면 그 짐을 짊어지고 계절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그 고생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겪지 않고 목회에 금방 뛰어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쉽게 목회하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만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특별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별한 교인도 많고, 특별한 목사도 많고, 특별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땀 흘려서 일하고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일에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내 할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잡아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시 126: 5, 6)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뿌리며 흘리는 눈물을 주십니다. 눈물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씨를 뿌릴 때는 100%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우리 신앙도 회개의 눈물, 믿음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는 봉사의 눈물이 있으면 주님께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 노아와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경건이란 말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질서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믿음의 삶을 말합니다. 

오늘날 땅이 패괴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패괴라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와 우주를 질서있게 만드셨습니다. 계절의 질서, 산과 바다에 모든 조화와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 정신도 우리 인격과 양심과 도덕과 이게 다 질서있게 몸과 마음이 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어야 되고, 사회와 국가도 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도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무너지면서 모든 사회가 퇴폐해졌습니다. 온갖 음란하고 방탕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시대가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도덕적으로도 성적으로도 무너졌습니다. 이 무너진 집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질서있게 살았습니다. 그는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정을 잘 지키고, 믿음을 잘 지켜서 죄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죄는 멸망의 길이며, 심판의 길입니다. 죄는 영육이 망하고, 병드는 길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길입니다. 죄를 지으면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삶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흔들립니다. 하지만 노아는 죄의 길을 떠나서 하나님의 길을 좇아 의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찬송가에서도 부르지 않았습니까?
  
♪죄악 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가는 나의 마음 성전삼고 주께서 계시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예수 믿으면 우리 마음이 정결해집니다. 깨끗해집니다.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서있게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삶입니다. 

우리 나라 19살 이상의 성인 인구 가운데 356만 명이 도박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성인 인구 중 73%가 음주인구라고 합니다. 그 중 셋 중 하나는 고도로 위험하고, 또 그 가운데 반은 중독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술 안먹는 사람이 27%입니다. 거기에 20%가 교인입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대체로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건강한 것입니다. 우리가 산소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저희가 그들을 건져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문화일보의 지난 해 10월 2일자를  보면 우리나라에 동성애자 숫자가 100만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남자끼리 성생활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나가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 위기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안으로부터 노아 시대와 같이 퇴폐한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어려운 때에 우리는 유일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 신앙의 사람, 경건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가정을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가정 안에 있습니다. 교회 외에 또 하나 계신 곳이 있는데 ‘가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를 오고 가신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주님을 모신 가정이 되십시다. 나그네의 길, 잠깐 왔다 가는 이 세상, 피곤하고 힘든 세상에서 가정이야말로 우리의 오아시스 아닙니까? 우리의 쉴 곳이 아니겠습니까? 친구가 있는 곳, 사랑이 있는 곳, 기쁨이 있는 곳, 마음껏 먹고 잠잘 수 있는 곳,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노아의 여덟 식구는 모두 구원받은 가정이 되었고,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온 가정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74명 온 식구가 애굽의 고센 땅에 가서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경건한 믿음의 가정이 되고 믿음의 자녀가 되어서 멸망 받을 이 땅에서 멸망받지 않고, 죄악된 세상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 우리는 세상 사람과 함께 살지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르게 살아야 됩니다. 특별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같이 살고, 같이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장가가고, 시집가서 살고, 자녀를 기르며 삽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삶에 성실함과 진실함, 인내와 경건함, 그리고 근신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어디에서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이렇게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직과 근면함으로 살면 정치를 못하겠습니까? 사업을 못하겠습니까? 무엇을 맡겨도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번에 가뭄으로 고통받는 태백에 다녀왔습니다. 그 곳은 몇 달째 비가 오지 않아서 그 지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태백시뿐만 아니라 고한이라든지 삼척 그 쪽 전체가 다 어렵습니다. 태백 산맥, 경상북도에 있는 지역까지 산 위로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산 밑에 있는 지역만 하루 세 시간씩 급수하니 빨래는 생각도 못하고, 목욕도 못하고, 겨우 식수로만 사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점점 비가 오지 않습니다. 

2011년이 되면 물이 모자라 물을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물이 남는 나라는 119개국인데, 우리나라는 물이 적은 나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강수량을 측정해보면 우기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물을 아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이 적은데도 물을 너무 펑펑 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하루에 물을 1인당 395리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비해 3배나 많이 쓰고, 프랑스에 비해서도 2배나 많이 쓰고 있습니다. 물을 펑펑 물 쓰듯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교인의 물사랑 수칙’ 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태백에 다녀와서 거기서 주신 것을 보고, 우리 교인에게 맞는 것만 15가지를 추려내어 적었습니다. 꼭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물사랑 수칙. 오른 손을 드시기 바랍니다. 

물사랑 수칙 1번 여러분이 읽어 주세요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물을 사랑하고 아껴 쓰자.’  그래도 이만큼 물을 많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요 

그 다음 두번 째 *‘정수기 사용을 자제하자.’ 

세번 째요 *‘물은 반드시 받아서 쓰고 깨끗이 사용하자. 받아서 쓰자는 겁니다. 그릇 씻을 때도 받아서 쓰고 계속 물을 흘려 보내면서 쓰지 말라는 겁니다. 채소를 씻을 때도 상추 하나 갖다놓고 계속 틀어놓고 쓰지 말라는 겁니다. 숟가락 하나 씻는데 왜 물 틀어놓고 씁니까? 받아놓고 쓰자는 겁니다. 

그 다음 네번 째 *‘사용한 물은 화단 주방 변기용으로 다시 사용하자.’ 다섯번 째요 *‘화단에 주는 물과 청소용 물은 허드렛물을 이용하자.’ 

여섯번 째요 *‘변기에 벽돌이나 물병을 넣어 물을 절약하자.’ 별거 아닌것 같지만 변기 물도 아끼자는 겁니다. 독일에 가보면 얼마나 물을 아끼는지 모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얼마나 아껴 쓰는데 지금 세계에서 제일 낭비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물만이 아닙니다. 모든 걸 너무 낭비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물을 언제나 화장실 변기에 벽돌 넣고 썼습니다. 박대통령 이승만대통령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대체로 절제를 많이 하신 어른들입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끝까지 연탄불을 사용했고, 그 부인되시는 분은 늘 손으로 세탁을 했습니다. 박대통령은 에어콘을 안틀고 늘 부채를 부치고 지냈습니다. 그분은 늘 오리엔트 시계를 차고 계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오리엔트 시계를 차고 있었습니다. 오리엔트는 국산입니다. 일곱번 째 *‘변기세척제 표백제 등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말자.’ 여덟번 째 *‘소변 대변으로 구분된 변기나 절수용 샤워기를 사용하자.’ 

미국 사람은 목욕탕을 가지 않습니다. 집에도 목욕탕이 없습니다. 다들 그냥 샤워로 잠깐 씻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씻고 거기 또 누워있어요. 집에서 뭐하러 목욕을 그렇게 오래합니까? 받아서 쓰십시오. 샤워기 가지고 쓰시란 말입니다. 아홉번 째요 *‘가급적 손빨래를 하고 세탁 시 빨래를 모아서 하자.’ 모아 가지고 하세요. 우리 조상들은 전부 물을 머리에 이고 와서 사용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물을 계속 여기서 쓰고 그 다음 옮겨쓰고 마지막 다 쓰고 나면 소 죽을 끓이는데 또 썼습니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세계에서 예수 믿는 나라는 우리보다 아무리 잘 살아도 아끼면서 삽니다. 그 다음 열한번 째 *‘세탁 샤워 머리감기 횟수를 줄이자.’ 한 주일에 한 번만 머리 감으세요. 정 그러면 5일에 한 번 하든지 4일에 한 번 하시든지 줄이세요. 아직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렇게 한 지역이 고통을 당하는데도 뭐 태백만 그러겠지 우리야 그러겠냐? 2011년 부터 전국이 다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먹을 만큼 차리고 음식 찌꺼기를 줄이자.’ *‘빗물을 받아서 사용하자.’ *‘쓰레기와 오물을 하천 바다에 버리지 말자.’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이웃을 생각하고 후원하자.’ 15가지입니다. 

2009 명성교회 물사랑 수칙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을 번성케 하라.”(창1:20)

    물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OECD국가에서 미국 다음으로 물을 많이 쓰는 나라
   입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가뭄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아래의 수칙 
   을 생활화 하도록 합시다.


                 <물사랑 수칙>
      1.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물을 사랑하고 아껴 쓰자.
       2. 정수기 사용을 자제하자.
       3. 물은 반드시 받아서 쓰고 깨끗이 사용하자. 
            (설거지 , 세수 , 양치질 등)
       4. 사용한 물은 화단, 주방, 변기용으로 다시 사용하자.
       5. 화단(화분)에 주는 물과 청소용 물은 허드렛물을 
          이용하자.
       6. 변기에 벽돌이나 물병을 넣어 물을 절약하자.
       7. 변기세척제, 표백제 등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말자. 
       8. 소변, 대변으로 구분된 변기나 절수용 샤워기를 사용하자. 
       9. 가급적 손빨래를 하고, 세탁 시 빨래를 모아서 하자.
      10. 합성세제 대신 친환경 천연세제를 사용하자. 
      11. 세탁, 샤워, 머리감기 횟수를 줄이자.
      12. 먹을 만큼 차리고 음식찌꺼기를 줄이자. 
      13. 빗물을 받아서 사용하자.
      14. 쓰레기와 오물을 하천, 바다에 버리지 말자.  
      15.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이웃을 생각하고 후원하자.


 이것을 꼭 집에 가져가서 붙여놓으십시오. 부엌에 다 갖다 붙이십시오. 특별히 여자분들이 이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핸드백에 다 넣으십시오. 오늘부터 물을 아끼고, 우리의 모든 삶에 근신과 근면으로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도록 합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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