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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을 믿는 사람들 (히 13: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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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사람들 (히 13:13~16)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 머리말

부활은 기독교적인 용어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기독교적인 삶은 곧 부활의 삶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되었고, 그 부활을 전하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확장되어졌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 기독교적인 부활의 문화를 생산하여 선물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적인 문화의 핵심입니다. 

이 시간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선포하면서, 우리들에게 과연 부활의 삶이 있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 부활을 믿는 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전사(戰士)”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가족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도 죽여라~~’ 하고 대적을 향하여 뛰어들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 정말 겁 없이 일어나 대적을 향해 나갈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도 그랬습니다. 십자가에 목밖혀 돌아가셨을 때 모두 숨을 죽이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제자들은 숨어 달아났었지만, 주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면서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후 그들은 십자가의 전사로 출정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락방에 숨어 지내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새 술에 취한듯 그들은 입을 열고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이런 전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에 대한 교리는 인정해도 우리 삶에 부활의 능력을 잃어버린 무기력한 상태는 아닐까요? 

오늘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의 고난과 수고가 다 있습니다. 즉 삶의 십자가가 저마다 다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우리는 부활신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 난관을 뚫고 일어서는 능력을 말입니다. 요즘 무척 가뭄 때입니다. 물기가 없는 공기로 인하여 도처에 산불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땅인데 나무들은 푸른 잎을 내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우리들도 그래야 합니다. 때때로 힘든 일을 겪을 때에 그 고난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고난이 끝이 아니라 부활을 향한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신다면 십자가의 전사로 일어섭시다. 그래서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갑시다. 

둘째로 본문은 부활신앙인들에게 지금 여기의 삶이 영구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장차 올 영원한 것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4절)

어느 부목사님이 장년 사랑방 예배에 가서 ‘오래 장수하셔서 백수하세요 하니까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백수를 누리든 천수를 누리든 이 땅의 삶은 영구하지 않다는 것을! 떠날 이 세상에 좀 더 오래 살려고 집착하는 마음대신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아버지 집을 향하여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생뿐이 아님을 증거해 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확신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집을 확신했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3)

이런 믿음의 전통을 가진 서구 교회는 죽은 자의 묘지를 교회 곁에 만들었습니다. 우리처럼 북망산을 넘어가서 묻지 않았습니다. 부활 신앙은 곧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의 순간이란 것을 믿게 했고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며 무상(無常)한 이 세상살이에 집착하지 않도록 인도했습니다.
   
셋째는 부활신앙은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5절)

영구한 도성을 소망하는 자는 이 세상을 포기한 체 장차 올 내세만을 기다리는 현실 도피성의 염세주의자는 아닙니다. 도리어 부활 신앙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찬송을 부르면서 부활의 확신을 표현하며 죽음을 이긴 자의 승리를 누리도록 인도합니다. 부활신앙은 지금여기보다는 영구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케 하지만,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목적을 위하여 헌신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기도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만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파란만장한 인생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로써 행동하셨습니다. 시간을 촌음처럼 아끼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할 일을 위해 찾아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순간순간 하나님을 높이며 찬미하는 삶의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부활신앙자의 생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입가에 노래가 있도록 합시다. 노래가 있는 사람은 자기뿐 아니라 남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조롱하는 말, 시비를 거는 말,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한 입술이 되지 맙시다. 우리 기독교는 음악의 종교입니다. 세상의 음악은 어쩌면 기독교의 영향 속에서 발달한 것입니다. 찬송을 부릅시다. 그러면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찬송가운데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으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그 이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5b-16절)

본문은 찬송하는 입술은 곧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간혹 이웃 목사님들을 만날 때면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우리교인들을 만난다’고 전해줍니다. 저는 그 말처럼 듣기 좋아하는 말이 없습니다. 전도는 그 개인의 심령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여주는 것이며, 전도는 그 교회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전도 잘하시는 성도들을 보면 전도는 은사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이며 순종의 문제임을 느낍니다. 그 분들은 주변의 전도할 대상을 수첩에 기록해두고 다니며 중보기도를 끊임없이 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 대상을 가까이 찾아가서 친분을 쌓아둡니다. 이런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주의 명령이요 사명이란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의 전략에 있어서 분문은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말만의 전도가 아니라 생활의 매력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곧 선행을 행함과 나눔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선행과 나눔은 곧 부활신앙의 정수입니다. 부활은 대신 죽은 희생의 결과이기에 남을 섬기고 자기의 것을 나누는 것은 이런 부활신앙이 없으면 힘든 일들입니다. 

3. 마무리하면서

지금 사회가 매우 칙칙하고 우울한 패배적인 사고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우리부터 다시 희망을 말하고 노래하며 지금 여기에 머물지 말고 장차 나타날 미래를 바라보면서 힘차게 행진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희망의 근거요 그 동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 ‘죽어도 살 것’이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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