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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주 본능 (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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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 본능 (요 8:1~11)


우리 교회의 핵심 평신도훈련프로그램은 ‘제자훈련(弟子訓鍊)’입니다. 제자반 1년, 그리고 사역반에서 다시 1년, 이 기간 중에 반드시 롬8장을 암송해야 합니다. 성경 1,189장의 핵심(核心)인 롬8장에는 오늘 우리가 겪는 삶의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숨어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살면’은 ‘달리면’으로, ‘죽이면’은 ‘멈추면’이라는 뜻과 동일합니다. 또 ‘인도함을 받는’은 재귀동사로 ‘묶이다, 고정시키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육신은 예외 없이 ‘질주본능(疾走本能)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를 향한 질주본능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치 거라사 지방의 이천마리의 돼지떼가 바다로 내달렸던 것처럼(막5:13) 죽음을 향하여 질주하는 본능이 있습니다(사59:7; 롬3:15). 누가 이 거침없는 질주를 멈출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본문에도 거침없이 질주(疾走)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저들은 음행(淫行)을 저지르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성전으로 끌고 와서 성전에 ‘앉으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던(마5:1; 13:1-2)예수님 앞에서 외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 앞에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의 지지를 받고 있노라고 확신했습니다. 이렇듯 이 본문에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潛在)되어 있는 ‘질주본능’이 적나라하게 표출(表出)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주위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땅에 앉아서 글을 쓰셨습니다. 그러다가 무리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시곤 다시 앉아 땅에 글을 쓰십니다. 지금 음행한 여인을 가운데 놓고 거침없는 그들과 말과 행동, 판단을 멈추시는 예수님이 너무나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떻게 발각되었을까요? 또, 다른 한 명의 당사자, 남자(男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저들의 이 거침없는 행동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고, 정말 성경적(聖經的)일까요? ... 저들이 현장을 덮쳤다는 것은 그 현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反證)합니다. 즉 그들도 같은 부류(部類)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일수록 여자의 정조에 더 집착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놔두고 여인을 공개적으로 정죄(定罪)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확신의 근거가로 삼는 신22장의 말씀은 약혼남녀에게 주시는 것으로 고소는 당사자인 남편만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범죄한 사람을 다짜고짜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마18:15). 바울 역시 온유함으로 그를 바로잡고, 두려움으로 자신을 살피라고 말합니다(갈6:1). 요셉 역시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용히 이혼하고자 했을 뿐입니다(마1:18). 그러므로 여인을 공개적인 장소로 끌고 와서 소리 지르는 저들의 행동은(막1:1-4; 눅19:3; 요8:3) 단언(斷言)하건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여인을 돌로 치려는 질주본능을 멈추고 나처럼 잠시 땅에 앉아 자기 자신부터 살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잠7:7-12). 이 질주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면 파멸(破滅)뿐입니다. 모세와 대결했던 바로,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왕, 아버지의 왕권을 찬탈한 압살롬(삼하18:14), 그들의 질주의 끝이 이를 증명(證明)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질주본능이 잠재(潛在)해있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IQ 75인 주인공 포레스트(톰 행크스)는 어느 날 쫓아오는 친구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자신의 달리기 재능을 발견하고는 계속 달립니다. 덕분에 그는 역경과 편견을 딛고 결국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 제니(로빈 라이트)는 매춘과 폭력, 마약 등에 둘러싸여 살다가 그냥 그렇게 인생을 끝내고 맙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까? 이제는 달리는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새벽2시경, 아내와 함께 남쪽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귀경(歸京)하던 중에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구리, 의정부를 거쳐 일산으로 들어오려고 길을 들어서서 거침없이 내달렸습니다. 처음 보는 휴게소, 주변 풍광도 좀 낯설긴 했지만 그래도 틀림없다고 믿었기에 계속 질주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음 톨게이트로 나가 확인해보니 중부고속도로가 아닌 중부내륙고속도로, 새로 개통된 도로로 진입했던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달리던 질주본능을 억제하고 잠시 멈춰서고 좌우(左右)를 살펴야 합니다.

'고난주간(苦難週間)’, 우리는 잠시 멈춰서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십자가(十字架) 위에 멈춰서 피를 쏟으시는 그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질주를 멈췄습니다(눅23:47-49; 마27:3-4). 그러므로 우리 역시 ‘질주본능’을 멈추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 자신을 바라보며 주님처럼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테드 해거드(Ted Haggard)’는 뉴 라이프교회의 담임목사요, 미국복음주의 협의회(NAD)회장이었지만 2006년 11월, 동성애와 마약복용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제 문제가 사탄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만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건 나 때문이야. 나 자신이 문제야’ 이때부터 내 안에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문제가 자기 안에 있음을 직면(直面)하는 것, 그것이 치유(治癒)의 출발점이었습니다(전9:11).

'워낭소리’, 이 영화의 포인트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할아버지는 사료 대신 꼴을 베서 쇠죽을 끓여 먹이는 느림을 소에게 주었고, 소는 그 느림의 보답으로 느리게 오래토록 주인에게 충성하다 죽습니다. 여기에 그렇게 느린 소와 할아버지를 3년 동안 느리게 지켜본 카메라가 있었기에 관객들은 감동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이 고난주간, 나의 말과 판단, 행동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처럼 잠시 앉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서 주님의 자녀로 다시 한 번 발견(發見)되는 감격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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