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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눅 24: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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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눅 24:30~35) 


부활절 아침입니다. 사망 권세 이기신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한국인으로 누리는 축복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사계절이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약동의 계절, 부활의 계절입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겨우내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던 나무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만발하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가르쳐 주려고 대자연 가운데 허락하신 시청각 자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철이 되어 새롭게 움트는 새싹마다 피어나는 꽃잎마다 주님께서 부활의 약속을 새겨 놓으셨다.” 아무쪼록 이 봄에 말씀을 통해 자연을 통해 부활의 은총을 만끽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황혼 무렵! 그러나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처연한 분위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기는 들었지만 확인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으로 모든 게 끝난 줄로 생각하고 낙심천만한 모습으로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체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그들의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성찬을 베푸십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집니다. 영안이 열린 겁니다. 

31절~32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마자 갑자기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부활체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금세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던 체험을 서로 말합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해졌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33절.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 ” 그들에게 다시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겼다는 반증입니다. 돌아가니까 11명 사도들이 모여 있습니다. 서로 서로 부활의 주님에 관해 증거합니다. 34절~35절.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어떻게 됩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죠. 부활이 그 증표입니다. 롬1:4 “ ...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말하자면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생명의 주님, 능력의 주님을 만난 겁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반드시 변화를 경험합니다. 어떻게 변화될까요? 


[1] 생명 :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말하자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영생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운명입니다. 육체적으로 죽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죽음의 공포가 있고, 그럴수록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합니다. 모든 인간이 불로장생을 희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죽습니다. 천년만년 살겠다고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도 49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기껏해야 100여년 살다 갑니다. 오래 살아봤자 휙 하고 지나가버립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생은 장수와 전혀 다릅니다. 장수는 늙고 병들면서 연명하는 것이지만, 영생은 복락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요11:25~26 “25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TV에서 드라마를 한참 재미있게 보다가 끝날 때가 있죠. “다음에 계속!” 이런 자막이 뜨면 약이 오릅니다. 그래도 다음이 있으니까 참고 기다립니다. 성도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 닥쳐도 아쉽지만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계속됩니다. 어느 성도의 묘비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계속”(To Be Continued in Heaven)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이사 가는 겁니다. 슬픔도 고통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복락을 누리는 겁니다. 

더 나아가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도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예수님처럼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무덤에서 일어날 겁니다. 아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부활체로 변화시켜 주실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수상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평소 유머가 넘치는 괴짜였는데,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장례식을 할 때 처음에는 취침나팔을 불고, 마지막에는 기상나팔을 불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엄숙한 장례식에 기상나팔을 부는 게 이상하지만, 거기에는 그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죽으면 우리 영혼이 천국에 가고 육체는 잠시 쉬다가 주님이 재림하는 그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할 것입니다. 

부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영생과 부활을 확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희망 :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화됩니다. 절망은 인생을 망치는 독소입니다. 키에르케고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망!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반대로 희망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은 희망이 없는 인생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절망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듭니까? 세상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수시로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죽어도 천국이니까! 

부활의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벧전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열한 사도들은 절망 가운데 슬퍼했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기쁨이 넘쳤습니다.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가 가던 길에서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달음질쳤던 겁니다. 

여러분, 작가 이철환 씨를 아시죠. 「연탄길」「곰보빵」등으로 유명합니다. 「연탄길」은 무려 360만 명이 읽었고, 중국 대만 일본 등으로 수출되었습니다. 그 책이 실린 글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대다한 성공을 거둔 겁니다. 그런데 그가 청년 시절에는 3년간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독히 가난해서 리어카를 끌면서 사과 장수도 하고, 산동네 다니며 양말도 팔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는데 아무도 사 주지 않아 포기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출판사마다 거절했지만 야학교에서 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계속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출판 기회가 생겼고, 수입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돕기에 기부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명작가가 됩니다. 

그의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엡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가 성공할 수있었던 것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주님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부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갖고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사명 : 허무의 인생에서 사명의 인생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허무한 인생에서 사명의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유가 행복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줄 압니다. 착각이죠.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금세 없어집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입니다. 그러므로 소유에 목숨 걸면 반드시 허무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를 얻되 무엇을 위해서(For What) 얻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사명이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사명이 생긴 겁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복음을 전합니다. 순교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입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겁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사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두 목사 되고 선교사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원히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웰치(Welch) 음료회사를 아시죠.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 창업자는 웰치입니다. 그는 본래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 결과 아내가 아프리카 기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체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락한 후 그는 실망한 채 고향에 돌아갑니다. 방황하다 깨닫고 결심합니다. 선교사로 가지 못하면 좋은 일로 돈을 벌어서 선교사들을 후원하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웰치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는데, 부업으로 알코올이 없는 성찬용 포도즙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사업을 물려받아 주님만 위해 돈을 쓰리라 결심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수입의 절반을 선교를 위해 드렸습니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세상의 소유에만 집착하다 다 사라지게 되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아는 우리는 일시적인 세상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이 아침! 말씀 가운데 성찬 가운데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사망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허무에서 사명으로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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