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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십자가와 부활 (빌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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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 (빌 3:10~14) 
 
 
❚사탄의 전략

지난 3월 말에 저희 포항남노회 서시찰에서 목사 장로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경남 통영 일대를 다녀왔는데 통영이라고 하면 이순신장군으로 유명합니다.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이곳을 중심으로 왜군을 무찌르면서 23전 23승 전승, 불패의 신화를 이룬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장군의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서양 각국이 지금도 연구할 정도로 신출귀몰한 것이었는데 특히 상황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바꾸어가며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뛰어난 전략가였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지형이나 날씨, 파도와 물길 등을 면밀히 이용해 그때그때 전략과 전술을 바꾸어가며 대처했기 때문에 왜군에 비해 형편없이 약한 전력과 무기를 가지고도 23전 23승이라는 인류역사상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이룬 것입니다.

이렇게 현명하고 뛰어난 장수는 상황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바꿀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이야기지만, 우리의 영원한 원수 마귀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활하고 똑똑합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전략을 바꾸어가며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과거에 사탄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믿음을 못 갖게 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때리고 순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에도 그러했고 모든 선교역사를 살펴봐도 선교 초기에 이런 핍박과 순교의 역사가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얼마나 교활하고 똑똑한지 점차 이런 전략으로는 안 되겠다고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날 악마들의 대장인 사탄의 주재로 모든 악마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장이들이 예수를 못 믿게 할까? 어떻게 하면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까 대책을 논의하는데 좀 늙은 악마들이 “그저 예수장이들은 두들겨 패고 가두고 죽이고 핍박하는 게 최고”라고 주장하자 어떤 똑똑한 젊은 악마가 이런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그런 구닥다리, 임진왜란 시절에나 쓰던 방법은 이제 안 통합니다. 그러니까 요즘 우리 전략이 안 먹히는 거예요. 예수장이들은 때리고 가둘수록 더 맹렬하게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못하게 하고 핍박하지 말고 오히려 믿으라고 권장합시다.” 다른 악마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러자 그 젊은 악마는 말합니다. “믿으라고 권장하지만 잘못된 신앙을 심어주면 된다는 말입니다. 믿지 말라고 핍박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믿는 예수장이들이 믿으라고, 더 잘 믿으라고 하면 오히려 믿음이 게을러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슬쩍 그 사이에 잘못된 믿음을 끼워 넣는 겁니다.” 회의의 의장인 사탄이 묻습니다. “그럼 그 잘못된 신앙이 뭐라는 말이냐?” “그건 바로 잘못된 십자가 신앙, 잘못된 부활신앙을 심어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은 바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입니다. 어느 하나만 넘어가거나 기울면 우리 기독교 신앙이 통째로 흔들리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 사탄은 교활하게도 이 너무도 중요한 두 개의 신앙을 흔들고 잘못된 신앙을 심어줌으로 우리 신앙을 방해하는 전략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잘못된 신앙이란 무엇이냐? 어떤 것이 사탄이 심어준 잘못된 십자가 신앙이며 잘못된 부활신앙이냐?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바로 “십자가 없는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부활 없는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우리 신앙은 흔들리고 무너지게 되고 맙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먼저 첫 번째 유혹은 십자가 없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란 무슨 뜻일까요? 십자가 지는 고생은 하기 싫고 오직 부활의 영광만 받겠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고난 없는 영광”을 뜻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십자가 없는 부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고통을 안 받으셨다면 어떻게 부활의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는 싫고 오직 부활만 누리겠다고, 고난은 싫고 오직 영광만 받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십자가는 없고 부활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십자가는 설교하지 않고 오직 복과 은혜만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는 것은 싫어하고 오직 복과 은혜만 받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신앙이 아니라 아예 잘못된 신앙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사탄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심어준 그릇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잘못된 신앙, 고난 없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값싼 은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물론 그가 말한 것과 의미는 좀 다르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값싼 은혜, 싸구려 은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왜 값싼 은혜입니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처럼 십자가라는 값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값을 치루지 않고 부활의 영광만 누리겠다고, 오직 교회 다니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일념으로 복과 은혜만 추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값싼 은혜요 값싼 영광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 없는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그렇게 싸구려 영광이 아닙니다.

오늘을 부활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참 좋아합니다. 부활의 능력, 부활의 영광, 부활로 인한 영생을 누리는 것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부활절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듯이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감수할 때 부활의 영광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권능에 함께 동참하려면 반드시 십자가 지고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고난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금 비록 바울의 삶은 고난과 시련이 가득하지만, 복음 전하고 선교하느라 매도 맞고 갇히기도 하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그는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영광, 인생의 마지막 골인 지점(푯대)에 이르러 위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상급을 받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간다고, 열심히 주님 위해 산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값진 영광의 상’을 사모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활의 기초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십자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십자가를 제거한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 위에 세워진 것인데 십자가가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물론 멋진 예배,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예배당, 그 안에 좋은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많은 무리들이 남겠지요. 혹 십자가가 남아있다 해도 십자가의 정신이 빠진 십자가라면 그것은 한낱 장식품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도 안 믿는 사람이 금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도 안 다니는데 왜 십자가 목걸이를 했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쁘잖아요?” 십자가가 한낱 멋진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과연 십자가가 살아 있습니까? 정말 주님의 고난을 함께 지고 이 세상에서 손해 보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진정한 신앙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해서 남을 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생각이 살아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없이 그냥 취미처럼 교회 다니고 내 유익만을 위해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 없는 부활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처음에는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에게서 탈환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탐욕스러운 전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2백년 간 8차례나 계속되면서 결국 나중에는 십자가를 앞에 내세우고 행진은 했지만 가는 곳마다 약탈과 살인을 자행하며 자기 탐욕을 채우는 추악한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때 내세운 십자가는 무슨 의미일까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언약궤를 앞세워 부적처럼 전쟁에 이기겠다고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앞세운 십자군전쟁도, 언약궤를 앞세운 블레셋과의 전쟁도 다 패배하고 맙니다. 십자가는 앞세웠지만 진짜 십자가의 정신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앞세웠지만 진짜 하나님과의 언약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세우고 언약궤를 내세웠지만 하나님은 동행하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사라진 교회, 십자가의 정신이 실종된 성도, 장식품처럼 십자가의 모양은 남아있지만 주님과 함께 기꺼이 십자가 지겠다는 고난의 신앙, 주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희생의 신앙이 사라진 우리의 모습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와 동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부활의 영광도, 그토록 우리가 바라는 복과 은혜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 없는 부활의 결과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

반대로 부활 없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 역시 사탄의 교활한 계략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가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라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사망과 끝일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영광도 기쁨도 없는 신앙생활이 되고 맙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한국 어느 교회에 미국 목사님이 와서 설교하는데 성도들이 너무 안 웃고 인상 쓰고 근엄하게 앉아 있으니까 설교 후 담임목사에게 물었답니다. “이 교회 성도님들은 교회에 와서 왜 저렇게 인상을 쓰고 앉아 있나요?” 무슨 까닭인지 그 교회 성도들은 교회 오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교회가 은혜가 없었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담임목사는 할 말이 없어 난감해 하다가 문득 재치 있는 대답이 생각나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만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느라 저렇게 슬퍼서 인상을 쓴답니다.” 그러자 미국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 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나보지요?”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오늘 우리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은 잊어버리고 십자가만 지고 사는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힘들고 어려우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 다니고 예수 믿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지도 못하고 감사와 찬양을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부활 없는 십자가의 특징적인 현상은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를 와도 기쁨이 없고 감사함이 없다면, 부활절을 맞았는데도 내 맘 속에 전혀 감격이나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부활 없는 십자가라는 잘못된 신앙에 빠져있지 않은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복된 부활절을 맞으며 우리 성도들은 참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 올라가신 골고다 언덕도 기꺼이 오르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비록 주님 위해 헌신하며 충성하며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주님 주시는 부활의 영광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부활의 기쁨과 영광 없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교회 다녀도 무덤덤하고 아무 능력이나 기쁨이 없다는 분들은 십자가만 아니라 부활의 영광과 능력도 함께 체험해야 합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 두 가지를 함께 체험하며 사는 모든 성도만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기쁘고 복된 부활절,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영광이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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