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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고전 15: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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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고전 15:20~28)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평상시처럼 설교를 준비하다가 갑자가 어떤 한 생각 때문에 설교 원고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부활절이기에 부활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제게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 교인 가운데 부활을 웃기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혹시 우리 교인 가운데 부활은 거짓말이야, 또는 목사가 성도를 위로하는 차원의 유치한 종교적 언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옛날이나 통했던 이야기지, 오늘날 첨단 과학의 시대에 아직도 그런 유치한 설교를 하냐?” “영생이 있긴 뭘 있어? 죽으면 그만이지!” 
우리 교인 가운데 이런 교인은 없겠지요? 혹시 있다면 이 시간 심각하게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맹인이 앞을 못보고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낭떠러지 벼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여러분이 보고 계신다면 그냥 구경만 하실 것입니까? 
아차하면 낭떠러지기에 떨어져 죽게 되는데 “다 사람은 팔자대로 사는 거야” 하면서 지나갈 것입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주 나뿐 사람이지요. 
또, 후진하는 차 뒤에 어린아이가 놀고 있다면 그냥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소리치고 차를 멈추게 하든지 아이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보다 더 심각하고 더 중요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영적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현 세상을 이세상이라 하고 다음 세상을 저 세상이라 합니다. 분명하게 실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늘 부활절을 맞아 머지않아 닥칠 죽음을 준비하고 천국행 차표를 예매하라고 오늘 여러 분들에게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이미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을 받아 천국행 티켓을 준비해 두었으나 아직도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인생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어떤 초등학교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빠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빠가 너무나 좋은데 예수 믿지 않는 아빠가 지옥 갈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아빠에게 예수 믿자고 졸라댔습니다. 그 아빠는 단지 그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래, 그래. 너부터 먼저 믿어, 나는 틈 나는 대로 믿을게, 너무 나를 괴롭히면 오히려 부담스럽잖니?” 이렇게 해서 적당히 달래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 아프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그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슬픔을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 그 아이의 유품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습니다. 옷도 만져 보고 읽던 책도 만져 보고 그러다가 일기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일기장을 펴 본 아빠는 기절할 것 같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죽기 며칠 전에 쓴 일기 내용인데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꼭 예수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 아빠가 예수 믿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아빠를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가 그 글을 읽으며 받은 충격과 후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 “생명을 내어 놓고 내가 믿어야 할 일이었던가?” 
드디어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아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생명과 자기 구원을 바꾼 셈이 되었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던 대학생선교회(CCC)의 김준곤 박사이십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일생에 대학가는 문제도 중요하고 장가 시집가는 문제도 중대사지만 그보다 수 백 배 더 중요한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죄 값이 다 청산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로 선고 될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서 여러분은 천국의 상급으로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은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기에 영원한 심판, 둘째 사망을 당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혼으로 천국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신비스러운 새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 부활의 은총을 누리는 특권이 믿는 자들에게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5:28~29절을 보세요.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씀을 보면 인간은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하는데 부활도 두 종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며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은 무엇이고 심판의 부활은 무엇입니까? 죽음 뒤에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고후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서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재판을 받습니다. 이 재판에서 벌과 상이 결정됩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어 있는데, 죄에 대한 대가는 지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벚꽃도 아름답게 피어난 봄날입니다. 이 좋은 날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다른데 갈데없어서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돌아서도 아닙니다. 
  
오늘 이시간이 몇몇 사람에게는 일생일대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가 해결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진리를 깨달아 인생관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복된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잘 들으시고 부활의 은총을 누리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살고 있으나 그러나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님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으면 죽은 것이 죽은 것이 아니고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자는 때가 되면 깨어나듯 죽은 자는 다시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앞부분에 고린도전서15:12,13절을 보세요.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죽으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니 인생을 허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흙에서 온 우리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이 주신 영혼은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라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명백하고 확실하게 죽음이 끝이 아니고 영생이 있다는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영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27절도 보세요.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어도 살겠다,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거룩한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살아나는 일이 세상에 없다면 예수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다시 살기에 주님은 직접 죽었다가 다시 사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봄이 오면 다 죽은 듯하던 누런 잔디가 파란색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앙상한 가지에 새움이 돋고 잎이 피어납니다. 그뿐인가요? 마른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세요. 이것들이 이렇게 다시 피어오르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란 잔디 속에도 생명이 있고, 앙상한 가지 속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땅속에 묻힌 씨앗 속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죽은듯 하다가도 새롭게 돋아나고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요한복음1:3~5절을 보세요.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즉 죽은 것 같은 앙상한 가지에 봄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 새싹이 나듯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빛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몸은 죽으나 그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인간에겐 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이요, 다른 하나는 영혼의 생명입니다. 이 육신의 생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노쇠하고 죽습니다. 숨을 안셔도 죽습니다. 교통사고 나서 몸이 망가져도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겐 영혼의 생명이 있는데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은 이 생명이 창조되는 과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가 있고,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 받은 영적 생명을 지닌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몸은 죽어서 다시 흙이 되지만 그 영혼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다시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부활하여 사는 하늘나라가 있다고 하십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도 생명의 새로운 부활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번데기가 나방이 됩니다. 굼벵이가 매미가 됩니다.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 온 세상을 날라 다닙니다. 여러분 밥상에도 앉고 여러분 면상에도 앉습니다. 
번데기 속에 있는 나방은 죽음 뒤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야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죽었다가 다시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지만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죽음 뒤에 부활하여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만이 부활하여 사는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을 전해도 사람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개미가 인터넷을 알겠습니까? 개미가 사람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가 사람의 핸드폰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개미가 아닐 것입니다. 
개미가 아니라도 100년 전 사람들이 오늘날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을 살아보라 하면 살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이 살아오신다면 텔레비전이 이해될까요? 전화기, 핸드폰, 인터넷, 증권, 아파트, 비행기……. 이것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정신없어서 미칠 지경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우리의 인간의 한계 때문이지 성경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로 이해가 안 된다고 부정하려고 하고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냥 안 믿어진다고만 한다면 다행입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감추려하고 조작하려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체 도난설’을 주장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라고 하며 ‘기절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정신부활설’, ‘사상 부활설’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이나 가르침을 되살리자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육체 부활을 말씀합니다. 
교묘하게 성경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감추려 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과 사망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은 죽음으로 우리를 얽어매려하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 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사망이 끝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그 부활의 복음을 막고 감추려 합니다. 아닙니다. 하늘나라가 실존합니다. 육체가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갈 공간, 처소가 분명합니다. 
  
요한복음14장1~3절을 보세요.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아멘? 

영어 성경에 보니 거처를 뭐라고 번역했냐면 맨션이라 해 놓았습니다. 세상사시는 여러분! 하늘나라에 여러분 맨션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이라고 합니다. 알게 되면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죽음 뒤의 세상을 아는 자는 죽음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명절 때 차표를 예매해 놓으면 고향 가는 것이 걱정 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되면 고향에 갑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언젠가 죽음 뒤의 세상인 우리의 참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때 안전한 차표를 예매해 놓으신 분들은 죽음이 걱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표가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멘? 
  

3.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습은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 지역에서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의 역사적 사실과 그 중요성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20~24절을 봅시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이 말씀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이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인류를 품고 죽은 대표적 행위였던 것처럼, 부활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부활도 개인적 사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표현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부활의 첫 열매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부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린 사건,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립니다. 심지어는 죽은 지 나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립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예수님의 부활은 차원이 다릅니다. 
숨을 멈춘 사람의 호흡과 생기를 회복시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소생(蘇生)입니다. 그들은 다시 살았으나 다시 늙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완전히 다른 현상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42-44절에 보면 4가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1)노쇠하거나 부패하지 않고 2)영광스러우며 3)강하고 4)신령한 육체로 변화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몸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육체라고 해야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부활이 일어난 사람은 예수님이 최초입니다. 첫 열매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부활이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일어날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인 이유는 바로 그 다음절에 분명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21~22절을 보세요.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서 언약과 대표성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우리의 대표자인데 그가 범죄하여 모두가 죄인이고 두 번째 아담이라고 표현된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시므로 그를 믿는 모든 자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첫 열매인 그리스도 먼저이고 주님 오실 때 주안에서 죽어 있는 자가 그 다음이고 그리고는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을 만나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예고편입니다. 첫 샘플이요 모델입니다. 우리도 장차 그분처럼 신비한 몸으로 다시 살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모르고 사는 자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이 복음을 어찌 전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까? 이 복음을 어찌 듣기 싫어한다고 포기 할 수 있겠습니까? 과학이나 이성을 초월한다고 믿음의 영역을 포기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그때 깨달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전하세요, 소리치세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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