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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십자가와 부활 (골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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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 (골 2:15)


성경본문 :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부활과 더불어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Ⅰ. 본문해설 

서양 사람들은 고난주간의 금요일을 가리켜 성(聖)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처참하게 죽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죽음 자체는 비참한 형벌이었지만 그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유익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온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어떻게 깊은 관련이 있는지 보여줍니다. 곧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 십자가는 부활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Ⅱ. 원어의 의미 

A. ‘벗어버려’ : 아페크뒤사메노스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벗어버려”라는 동사는 희랍어 ‘아페크뒤사메노스’입니다. 이 단어는 시제상 과거를 뜻하고 부정 과거입니다. 희랍어에서 부정 과거는 돌이킬 수 없도록 과거에 일어난 일회적 사건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우리말 성경은 “벗어버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이 정사와 권세를 짊어지셨다가 이제는 벗어버리신 것처럼 오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원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단어를 정확히 번역하자면 ‘무장해제 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곧 사탄의 존재와 활동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B. 사탄의 존재와 활동 

모두 밝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성경의 기록을 참고하면 사탄은 인간의 창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피조물로서 창조된 천사들 가운데 하나였던 사탄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단의 무리들과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끊임없이 하나님께 대적하며 세상 나라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따라 세상의 역사가 흘러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과 인간과의 놀라운 생명의 관계를 철회시키셨고,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베풀어주셨던 신성의 충만한 영광을 주권적인 의지로써 되돌리셨습니다. 

또한 특별히 영계인 공중의 권세를 사탄에게 넘겨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만물의 상호교통과 하나님의 영광을 거두시고 사탄에게 공중의 권세가 넘어가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원수 맺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를 주인 삼는 것을 보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악의 활동과 인간의 타락이 맞물려 이 세상에 악의 왕국이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즉시로부터 이 악의 왕국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한시적인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또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한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에게는 계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지식을 알고 누리게 하셨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역사를 우리는 ‘구원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드러내 보이실 수 없었던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자비와 은총의 역사는 사단의 어두운 왕국과 죄의 칠흑 같은 밤에 찬란한 불꽃처럼 타오르는 빛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왕국 속에서 그 빛을 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한번에 보여주셨다면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희미한 촛불로, 밝은 등불로, 환한 횃불로 마지막에는 대낮과 같이 찬란한 태양으로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진리의 빛이 나타난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존재와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중의 권세로 만족하지 않고 이 땅을 죄로 지배하였습니다. 그들의 권력과 힘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빛이 사라지자 어두움이 빛을 이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두움 속에서 당신의 사랑과 긍휼, 구원의 길을 보여주기 위하여 찬란한 진리의 빛을 비추셨지만 그것을 전달해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까지 파고들어 그들을 죄로 이끌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려고 끊임없는 시도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실한 주의 종들의 끊임없는 말씀을 듣고, 눈앞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죄를 지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들 안의 부패성은 물론이고 사탄과 그 졸개들의 영향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의 “정사와 권세”가 바로 사탄과 그의 졸개입니다. 타락한 악의 영들에게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기 정사와 권세, 하늘의 주관자 등으로 불린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여서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사탄의 끊임없는 유혹과 도전이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에 모든 목적은 이 세상을 자기가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고 영혼이 없는 피조물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지닌 도덕적 피조물인 인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당신 손으로 창조하셨지만 인간에게 창조목적을 이루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의 영광은 충분히 드러나고, 아름다움들은 인간의 노동과 섬김을 통해 빛났을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아채고 인간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왕국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로 이 왕국을 파멸토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Ⅲ. 십자가와 악의 왕국의 파멸 

십자가 사건은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죄와 불순종의 근원인 사탄의 왕국을 파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와 악의 왕국의 파멸을 세 가지의 지평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A. 우주적 지평 

첫째는 우주적인 지평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짓자, 공중의 권세는 사탄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악한 영들의 역사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지상의 인간을 철저히 지배하였습니다. 그들의 지성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없게 만들었고,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죄악과 자기사랑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지는 굽어서 죄 가운데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충동질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바로 이 공중의 왕국이 무너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 일은 모두 영적이기에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왕권은 산산조각 났고, 사단의 머리는 그리스도 죽음에 의해 박살났습니다. 그의 허리는 부러져 기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숨은 아주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마지막 심판 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진정한 왕 중의 왕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아버지와 동행하시는 가운데,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해가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께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죄인인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일입니다. 그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한량없이 부어졌습니다. 이 성령의 능력으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도 사람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사람을 유혹하듯 하였지만 패배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충만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요, 악의 왕국이 무너질 때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권세의 말씀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회개하고, 병이 낫고, 그들에게 진리의 참다운 의미가 마음속에 아로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그의 왕국이 점차 부서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예수를 십자가에 죽여야겠다는 뜻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로마의 병정이었지만, 죽게 내어준 자는 빌라도요, 그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도구에 불과하였으니 배후에 사탄의 면밀한 계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 예수를 죽였더니 이번에는 죽이자마자 천상에 있는 공중의 왕국이 단번에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의 범죄를 통해 죄가 물밀듯이 들어왔던 것처럼 예수님 한분의 의로운 순종으로 공중의 왕국이 무너지고 진리의 빛, 그리스도의 왕국의 힘이 이 세상에 밀려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우주적인 지평의 증거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무덤이 터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난 것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못 박았던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이 의인이셨다는 것을 고백하며 자신의 한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게 된 것입니다. 이 우주적인 놀라운 지평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교회적 지평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B. 교회적 지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였습니다. 물론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교회의 뿌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이 뿌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약속대로 예루살렘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상에 대한 새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보이셨습니다. 썩은 신자, 회심하지 않는 영혼들 속에서 사탄의 졸개들은 아직도 대단한 듯, 힘을 발휘하지만 그들은 이미 망해버린 나라의 포졸들에 불과합니다. 이제 악의 왕국은 더 이상 그들을 후원하지 못합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약의 교회는 교회적인 지평에서 악의 왕국을 파멸하고 은혜로 통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들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운데 지혜 있는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가 우주적인 지평과 교회적인 지평에서 철저하게 악의 왕국을 파괴했다면 사탄의 공작이 훌륭하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회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한 악의 왕국의 파멸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미’와 ‘아직은’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잔당들이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교회의 신령한 목양의 질서를 따라 한 마음이 되어 은혜와 진리의 빛 아래 있으면 악한 영들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신자들이 죄에 눈이 어둡고 아집에 빠져서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은혜를 하찮게 여기고 욕망대로 살고자 합니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만 위협하며 두드리고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법 놀라운 일들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은혜의 통치가 사라진 그곳에서만 사탄의 지배가 나타납니다. 그 지배는 절대적인 지배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은혜로 돌아오면 허상처럼 날아갑니다. 이런 십자가에 의한 악의 왕국의 파멸은 개인적인 지평에서도 입증됩니다. 

C. 개인적 지평 

이제 드디어 우리는 복음의 매우 중요한 핵심에까지 왔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국을 다스리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임금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임금은 꼭두각시였고 사단을 섬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별명이 진노의 자식, 사탄의 아들이 아니었습니까? 구원받기 전에 그랬습니다. 자력으로 산 줄 알았는데 종노릇을 했고, 그렇게 섬긴 것은 죄였으며, 그 삯은 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중생과 회심을 통해 이 왕국이 무너졌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왕국이 무너진 것은 중생이고, 새 왕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회심의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우주적인 지평과 교회적인 지평에 있어서 악의 왕국이 소멸되었던 것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일어났는데 도대체 왜 회심하기 전에 내 마음은 철저히 어둠에 갇혀있었습니까? 

답하자면 이렇습니다. 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이미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인간들과의 화목이 하나님 안에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뜻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영원 전부터 이루어진 화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 안 믿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지 못하여 대적했지 주님은 이미 우리와 화목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감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화목을 실제적으로 누리게 될 때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죄와 사망의 법은 악의 왕국의 전형적인 통치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이 단번에 부서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성령과 생명의 법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아니라 이제 은혜로 다스리는 왕국이 서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신 이중적인 승리와 부활의 관계를 보게 됩니다. 


Ⅳ. 이중적 승리와 부활 

본문 말씀의 앞 절인 13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사심이 우리의 다시 살아난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A.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 즉 영혼과 육체의 죽음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지만, 육체와 영혼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히 끌어안으심으로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분의 죽으실 때 우리가 함께 죽은 자가 되어 죗값을 해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때 그분께 안겨있던 우리도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주적인 부활의 승리가 한 사람이 예수를 믿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경험은 그리스도 예수의 몸의 부활처럼 우리도 그날에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또한 부활의 소망을 품고 끊임없이 삶에서 영혼이 소생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자라 하여도 죄를 짓고 불순종하면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영혼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매우 유사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죽어있는 것 같을 때는 죄의 힘과 사망의 권세가 매우 큰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단숨에 놀라운 일을 허락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진리와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었던 숨겨둔 카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망의 카드입니다. 사실 사단이 하나님의 주권을 초월해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협박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망의 카드 앞에서 두려워 주저앉으며 죄의 종노릇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근도 있었습니다. 자기의 명령을 따르고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과 성공을 주었습니다. 더 큰 미끼를 던져서 이제 작은 힘으로도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서 하수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과 졸개들은 쉼 없이 이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에게 유혹의 미끼를 던졌더니 덥석 물지 않고, 마음속에 죄 된 것을 잡으려는 마음은 있지만 잠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 유혹의 미끼를 물고 즐거워하려는 이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지고 형벌당하셨는데 그 죄를 다시 지을 수 있겠는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는 특수한 인간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더욱이 신약 시대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자기를 죽일수록 오히려 사탄이 신자를 향하여 딛어야할 발판들이 없어지면서 신자의 마음에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아가 죽고 나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놀라운 경험이 영혼 안에서 현재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제 진짜 죽음의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면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놀랍게 죽음을 향해 팔을 벌리며 죽음은 영광의 부활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오히려 죽음 너머에 부활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승리였습니다. 이 십자가은 또한 사죄를 도입했는데 이 사죄는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승리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B. 이중적 승리 

첫째는 본문 말씀에 따르면 “의문의 증서를 도말하셨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손으로 쓴 율법이자, 율법에 나오는 모든 규례와 규칙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것을 지킬 수가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송사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의문의 증서를 모두 도말해버리셨습니다. 마치 죄인을 잡으라는 체포 영장이 효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복잡한 규례를 통하지 않아도 그리스도 예수가 찢으신 보혈의 휘장을 지나 뿌리신 핏길을 걸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을 여셨으니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영광스러운 승리의 첫 부분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 시키신 일입니다.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많은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매우 심해서 엄청난 힘과 권세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양지에는 양지에 적합한 식물이 살고 음지에는 음지에 적합한 식물이 삽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의 세력들이 여러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스스로 훌륭한 발판과 여지들을 많이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 밝은 진리의 빛,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복종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생활이 있는 곳을 매우 혐오합니다. 그런 곳에서 그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충분히 곪았을 때 더 세게 두드립니다. 안 열어주면 이변이 일어날 것처럼 협박을 하며 두드립니다. 이렇게 신자들을 향해 어떤 영적인 세력들이 위협할 때 두려워 떨고 그것이 엄청난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 두려움이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물리칠 권세를 독점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악의 왕국을 파멸시키신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우리의 자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박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Ⅴ. 결론: 우리의 자랑, 십자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시 살았고 주의 것이 되었으니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큰 십자가의 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을 임마누엘의 샘에서 해결하는 대신 이 세상의 흙탕물 속에서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권세가 두려워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 그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살아나신 영광스러운 부활 앞에서 이미 무장해제 시킨 정사와 권세들을 꺾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매 순간 승리하여야 합니다. 이 십자가를 깊이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이 십자가 때문에 내가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주님은 나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불려주셨지만 나는 용서받은 죄인에 불과합니다. 이 손으로 피를 묻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던 죄인이고 이 팔로 그리스도의 허리를 찔러 물과 피를 흐르게 했던 죄인입니다. 산 것은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고 이제 내 안에 주님의 사랑에 묶여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매일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손해를 보는 것 같을 때 그리스도를 위해 내가 받는 아픔이 크다고 느껴질 때 주님의 사명의 길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얻고 말해야 합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이 그 순결한 몸으로 보좌에 내려오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죄인처럼 나를 사신 그날, 그 사랑을 안 그날 내 인생을 주님께 드렸기 때문에 다른 데 드릴 생명은 없다. “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전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 티끌만한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되겠습니까? 이 일을 위해 깨어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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