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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평강하라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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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하라 (요 20:19∼23)


[요한크리스토프 아놀드(Johann Christoph Anold)]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죽음은 결정적 과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죽음이란 결정적인 필연성이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창 잘 살아야 한다는 운동이 유행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라이프스타일에 모두가 열을 올리고 있는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웰빙(Well-being)이라고 해서 몸에 좋은 음식도 먹어보고 온갖 운동도 다 해봅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는 동안 양질의 삶을 살자는 것이지 죽지 않고 살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자,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먹을 만큼 먹고 누릴 만큼 누렸으면 가야됩니다. 죽는 것도 생각해야 된단 말입니다.“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하는 사후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언젠가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제는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이 문제라 그랬습니다. 어느 정도 살아봤으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죽은 다음의 생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도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결국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습의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늘 그것을 말씀하셨고 결정적으로 오늘 부활하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장 바른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잘 들으세요. 죽음이 말하는 뜻을 잘 알고 부활이 말하는 뜻을 잘 알면 그 사람이 바른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살아가는 오늘도 바로 살고 죽은 후에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25-26에서 말씀하십니다.“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이 말씀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몇 일만에 만나는 제자들, 더군다나 도망치고 말았던 제자들 아닙니까? 아마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만나 하신 첫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번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어서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자, 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 만난 제자들에게 평강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마음에 평강이 없는 제자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마음을 자기들이 다스리지 못하는 제자들은 안절부절 합니다. 안정의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지금까지 메시아라고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힘없이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어찌할지 막막합니다. 무섭기만 합니다. 자기들 또한 그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로 언제 잡혀갈지 모릅니다. 이러한 일들이 그들로 하여금 평강을 잃어버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문제요, 현실의 문제였습니다. 삶의 문제들로 인한 불안감 그것은 오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면서 삽니다. 건강 문제로 불안해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불안해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이걸 보면 역시 인간은 불안 속에 사는 존재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때로는 내 잘못으로 인해 평강을 잃어버리고 불안정 속에 나날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내가 원치 아니하지만 겪어야만 하는 불안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무래도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불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이 말은 살아가면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셨지만 인간들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를 스스로 버렸습니다. 그 일차 적인 증상이 바로 불안 아닙니까?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다정다감하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죄를 범한 이후에는 두려움의 소리입니다. 이게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올 부활절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다면 새로운 관계로 부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물어진 믿음이 굳게 세워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피 흘리시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깨어져 버린 채로 살아 온 우리의 인간관계가 부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한 고민 속에 있다면 속히 회개하고 새로운 믿음으로 부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한 내 교만 속에 빠져 있는 모습들이 있다면 이미 십자가에 못 박고 겸손한 모습으로 부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나타나는 이차 적인 증상은 이기심입니다. 온전히 생각해 보면 제자들이 무덤가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해야 할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토록 주님께서 친히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일렀건만 그것마저도 새까맣게 잊은 채 무덤근처에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멀리들 가버렸습니다. 각자 제 먹고 살길을 찾았습니다. “내 문제가 중요하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보세요. 결국 제자 중 아무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와 알려줍니다. 요20:9을 보게 되면 그때까지도 이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시신이 없어진 것만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무덤으로 부지런히 달려 간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다만 시체를 확인하러 갔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깨달음이 없습니다. 믿음도 없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셔서 만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더구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손과 옆구리를 보고야 믿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아직도 마음이 불안하고 불신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듣게 되는 첫 번째 말씀이“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을 조금만 돌려서 생각해 보면 제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평강을 잃은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음이 없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마 우리 믿음보다도 훨씬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보세요. 주님의 못 자국 난 손과 발 그리고 창 자국 난 옆구리를 보여줬는데도 믿지 못했습니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25절에 보게 되면 주님의 그 손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믿겠다니 원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의 우리들이라면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도 참으로 기쁘고 감사해서 이 목숨 다해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해도 부족할 텐데 도대체 멀쩡한 생시에 주님을 만나고도 믿지 못하고 있으니 이 믿음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당시 그 정도로 그들에게는 의지할 믿음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붙들고 있을 기둥이 없는데 평강인들 있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항상 분명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나를 어지럽힌다 해도 믿음만큼은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마침내 부활에 동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기분 나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식하든 무의식중에든 하는 말이 “교회 안 나가겠다”는 말입니다. 아주 습관적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나 생각하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기본적인 믿음의 기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와도 흔들립니다. 어디에 가도 견디지 못합니다. 제자들처럼 빨리 내 이익이 무엇인지나 계산하고 달아나기나 잘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두려움과 불신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심령 속에 참된 평강이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는 오늘 우리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강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부활의 첫인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평강이 있습니까? 마땅히 누려야 할 평강을 누리면서 사십니까? 그리고 아직도 회복되어야 할 평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죄로부터의 평강, 두려움으로부터의 평강, 깨어진 인간관계로부터의 평강, 이 모든 것들이 이 부활주일에 주님의 부활과 함께 온전히 회복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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