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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승리의 확신 (고전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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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확신 (고전 15:55~58) 
 
 
유행어는 시대를 반영하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뜨는 유행어가 있답니다. 개그맨 안상태씨가 KBS[개그 콘서트]에서 외치는 “... 뿐이고”입니다. 

지금 시험차량 한 대가 막 제 앞을 지나갔는데... 난 엄지 발가락 움직여지지 않고, 제 발 완전 눌러서 오리발 됐을 뿐이고, 주차코스 시험이라서 다시 나한테 후진하고 있고, 나 발바닥 땅에 붙어서 안 떨어지고, 엄마 보고 싶을 뿐이고“

자신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시청자들은 이 개그를 보고 웃습니다. 그러나 뒤 끝이 개운치 않습니다. 경제 침체 속에 허덕이는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그는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가는 패배주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 봐도 길이 열리지 않고, 더 이상 버틸 힘은 없고, 그래서 외치는 말이 “... 뿐이고!”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저앉습니다. 이것은 패배 앞에 굴복한 패배주의입니다. 패배를 인정할 뿐 아니라, 자신을 패배자로 규정하고, 나아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패배와 패배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과 맞서서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도전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맞섭니다. 이것은 패배입니다. 그러나 한 번 패배하고 나서는 다시 맞서기를 포기합니다. 나는 상대가 되지 않고, 맞설 힘도 없다고 물러섭니다. 때로는 맞서보지도 않고 포기합니다. 기가 질려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주저 앉아버립니다. 이것이 패배주의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패배할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도전해서 기어코 이기면 됩니다. 4전 5기, 7전 8기하면 됩니다. 마지막 승리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승리하면 그동안의 패배는 다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패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패배주의는 문제입니다. 한 번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맞설 의욕도 용기도 다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 패배주의는 정신적인 전염병과도 같습니다. 일단 감염되면 사람의 정신을 무력화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이 패배주의가 문제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패배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 사이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마치 독감처럼 청년들의 마음속에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연 한국교회가 민족복음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저 서구교회처럼 몰락하지는 않을 것인가? 이렇게 반기독교 정서가 드센데 점차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말지는 않을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패배할 수는 있습니다. 때로는 패배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보면 패배주의에 빠졌던 사람들이 여럿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3년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을 보면서 그는 승리감에 도취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위대한 생애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남다른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고하시자 펄쩍 뛰었습니다. 결코 그렇게 돼서는 안되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기가 목숨을 걸고 막겠다고 장담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은 패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정말 예수님 말씀대로 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습니다. 베드로가 두려웠습니다. 그가 꿈꾸던 위대한 생애가 물거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담한 패배가 찾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 속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도망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는 패배주의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변했습니다.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체포됐습니다. 심문도 받았습니다. 옥에도 갇혔습니다.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맞섰습니다. 마치 승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한 마디로 철저하게 패배주의를 떨쳐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엇이 베드로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정 이를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패배주의를 떨쳐버리게 합니다. 당장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줍니다. 패배가 반복된다고 해도 물러서지 않게 해 줍니다. 결국은 승리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떻게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선포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승리의 선포를 듣게 됩니다. 

본문 55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사망은 더 이상 승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망은 더 이상 권세를 휘두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구약에도 많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 수넴 여인의 아들, 저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들... 신약에도 많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 유두고 등. 성경 외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다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릅니다. 그저 육체적으로 잠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죽지 않았습니다. 죽음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한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승리에 대한 선포입니다.

건양대 의대 이우석 교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 지도 교수는 냉철한 과학자여서 결코 예수를 믿을 수 없는 분이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분이 예수를 믿게 됐고 신실한 교회 봉사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말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답니다. 말기 암 환자들은 대개 극심한 고통으로 추하고 험한 모습을 보인답니다. 그런데 한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잘 참으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더랍니다. 진료하는 자기에게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얼마나 수고하느냐고 격려를 하더랍니다. 문득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는 아무래도 저 환자처럼 할 수는 없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더랍니다. “도대체 무엇이 죽음의 두려움을 저렇게 멋있게 이길 수 있게 해 주는가?” 알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은 패배가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삶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권세보다 더 무서운 권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다가 안되면 죽기 밖에 더 하겠어!”하는 마음에 사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죽음이 다가올 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즉 “사망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선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포해야 합니다. “질병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실패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낙방아 나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퇴직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용기를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능력

다음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승리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본문 5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승리를 주신다는 것일까요? 마 28:20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눅 24장 13-35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두 제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만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제자 공동체에 참여하여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저들의 꿈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자 공동체에 참여했던 사람들 하나 둘씩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라 조금 망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이 되도록 그 공동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가서 빈 무덤에 세마포만 놓여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 두 제자는 부활소식을 믿지 못하고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눅 24:17을 보면 “슬픈 빛을 띠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저들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찼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절망이 가득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들을 찾으셨습니다. 놀랍게도 저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절망이 깊어 예수님의 부활 소식도 믿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기대조차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저들과 함께 하시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식사도 하셨고 축사하시며 저들에게 떡을 떼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저들이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저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33절을 보면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라고 했습니다. 29절을 보면 이미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다고 되어있습니다. 한 밤중이지만 길을 재촉했습니다. 약 10키로가 되는 힘겨운 산 길을 밤 중에 한 숨에 달려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절망 중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낙향하던 제자들을 돌이켜 세운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새 힘을 주셨습니다. 절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승리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어 포기했던 일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 포기하고 절망했던 그 자리를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새로운 능력을 덧입게 되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확신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 5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 속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앞부분 고전 15:20-21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부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북한을 탈북한 사람 가운데 리영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옥같은 북한을 탈북하여 중국에 머무는 동안 북한 선교사역을 하던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막염으로 죽어가던 남편이 회복이 되었고, 남한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를 영접하여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분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기로 결단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 선교사로 자원했던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사역자들의 후원을 받아가며 북한 선교에 헌신하다가 결국 2000년에 무산에서 체포됐습니다. 심문을 하던 보위부 간부들에게 리영희 선교사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2000년 2월 12일 12시 무산시 장마당 한 가운데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형 직전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리영희 선교사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결국 총성과 함께 순교의 피를 저 동토의 땅에 흘리고 말았습니다.

리영희 선교사가 처형을 당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결국 자신도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습니다.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이 점을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는 태도가 다릅니다. 비록 패배할 지는 몰라도 결코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승리의 원동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향한 용기를 주십니다.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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