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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하나님의 사랑 (롬 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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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롬 5:6~11)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요 3:16).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실 때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의 설명형적 내용입니다. 
여기에 '확증'이란 말은 마지막 증명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최후의 증거를 결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자기 사랑의 확증'은 

Ⅰ.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 여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 5장 6절에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연약할 때 』라는 말은 구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력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3절에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소망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 소망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얻을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연인은 스스로 구원 얻는 길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지난날은 연약한 때였습니다. 이때 기약대로 강한 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 기약대로 』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시기에 적당한 때에'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정해 놓은 적당한 시점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4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때는 무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은 만세 전에 계획한 그 계획에 따라 기약대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 경건치 않은 자 』란 말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불신자 곧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죄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2절에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Ⅱ.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 5장 8-9절에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그 원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 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본문 5장 7절에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본문 5장 7절은 8절의 서론격입니다.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죽는 자는 혹 있을 수 있으나 죄인을 위해 죽는 자는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유일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인간은 아무 쓸데없는 무가치한 죄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의 표현은 다양합니다. 

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②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③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에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④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우리 앞에 세우시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막 2:17).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은 영원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불변하신 사랑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사랑은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은 예전에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그것은 배운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 확증했다 』(슈니스테신, )는 말은 '추천하다', '드러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를 번역할 때 나타내 보여준다(demonstrate), 또는 보여주다 (show)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하면 『 나타내 보여주고 계시느니라 』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은 단회적으로 끝이 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5장 9절에 사도 바울이 『 그 피를 인하여 』라고 할 때 (엔 토 하이마티 아우투, )' 헬라어 전치사 디아( ) 즉 '…통하여'(through)를 사용하지 않고 엔( ) '안에'를 사용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 그 피로 인하여 』는 그 피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일차적으로 대속적 능력으로 죄인을 의롭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롭게 된 자들을 다스리시고 역사하시는 권세와 능력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자들이 여기서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 더욱 』이라는 말은 '훨씬 더', 곧 '더욱 더'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흘림이 칭의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Ⅲ.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 5장 10절에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라는 말은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여기의 원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수동적 견해와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능동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원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원수에게 독생자를 선물로 보내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철저히 원수 관계에 있었습니다. 원수 관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 죄 때문입니다. 그 죄가 없어지면 원수 관계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자기 아들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무시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1-22절에 『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화목은 깨어지지 아니하는 화목입니다. 이 화목은 변할 수 없는 화목입니다. 궁극적인 화목이요 큰 화목입니다. 그러나 방종하거나 타락해도 좋은 화목은 아닙니다. 

성령의 감화 아래 생활하는 우리는 성령님을 거슬러서 행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슬리면 뼈에 사무치는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화목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화목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인 된 인간의 구원과 화목에 있어서 더욱 확실한 보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을 통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을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했습니다. 칭의와 화목과 구원은 철저히 인간의 공로를 배제시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28절에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고 했습니다. 

Ⅳ.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에 『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1) 영적 부활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죽은 자 』는 불신앙의 상태를 뜻합니다. 『 듣는 자가 살아난다 』는 말은 영적부활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5절에는 첫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부활은 이 세상에서 그 영혼이 거듭남이고 죽을 때 영혼이 이 육체를 벗어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영적부활입니다.

2) 육체적 부활입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에 『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구절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육체적인 부활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영과 육이 갈라져 있는 상태입니다. 재림의 날의 육체적 부활은 갈라진 영과 육의 재결합니다. 

3) 마지막 날에 부활체는 영과 육이 결합되는 전인체입니다. 
죽은 자의 육체가 부활할 때는 영과 육이 재결합을 하게 됩니다. 화란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제 37조는 말하기를 '모든 죽은 자들은 땅속에서부터 일으킴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영혼은 전에 살았을 때 입고 있었던 그 본래의 몸과 연합하여 하나로 결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완전한 인격체가 될 것입니다.

4) 재림의 때에 살아남은 자(신자, 불신자)는 홀연히 변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불경건한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결국 죄인인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먼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성자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수적인 사랑에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결과는 불가항력적이요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이제는 연약한데서 강한 자로 본질적인 변화를 입었습니다. 경건하지 못했던 자가 경건한 자로 인격적 위치가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천정의 법칙입니다. 그 다음에 부활하는 진리도 천정의 법칙입니다. 부활은 기독신자들의 최후의 소망입니다. 사후에 다시 받는 부활체는 결코 소멸되지 아니하는 불멸의 영생체요 영벌체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계속되는 성화 생활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갖 좋은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확증한 장소는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그 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오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구원 받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자신의 심판을 이미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된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교회는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산제물로 드리면서 그 은혜에 보은하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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