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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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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막 16:1~8)

 
오늘 부활주일을 맞은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일어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오늘 주님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떻든, 우리의 환경이 어떻든, 우리의 건강이 어떻든, 우리의 여건이 어떻든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부활의 아침에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사렛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너희 속에 역사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여성들의 그 특유의 감성으로 그렇게 사모하고 사랑하던 우리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에 각인된 여인들의 그 애틋한 사랑으로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알아보는 데에 그 감성 어린 여인들이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세 여인이 아무도 몰래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죽음과 두려움과 공포를 벗어나서 말입니다.  저들은 사실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큰 돌문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도 이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저 큰 돌문을 굴려줄까?"  그런데 그들이 무덤 앞에 갔더니 그들 앞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돌문은 굴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기적은 이 시간에도 일어납니다.  기적은 모든 생명 속에 일어납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시간까지 산 것이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제 삶이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만 개입하시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적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의 닻이 내려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이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믿음의 닻이 내려져 있는 우리의 잠자는 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닻을 올리십시오.  믿음의 닻을 드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의 닻을 올리면 여러분의 마음 문을 꽉 막고 있는 돌문이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닻을 올리는 순간 이미 돌문은 열려져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몰라본 사람들은 이들 세 여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몰라본 또 다른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저들이 주님을 어떻게 따랐습니까?  3년 동안을 따라다닌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엠마오 도상으로 가던 주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몰라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엠마오의 길은 인간이 가는 낙심의 길입니다.  무지의 길입니다.  실의의 길입니다.  절망의 길입니다.  낙향의 길입니다.  후회의 길입니다.  혼란의 길입니다.  공허의 길입니다.  방황의 길입니다.  패배의 길입니다.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이 재단에 어떤 심령으로 오셨던 그 심령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길을 걸어가든 그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득 안고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길이란 언제나 현장입니다.  이 길은 선교의 현장이고, 이 길은 주님과 공유했던 영원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바로 그 길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는데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믿음의 길이 어떻든, 그것이 낙심이건, 혼란이건 그 길에 주님께서 나타나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지금 내 신앙의 길이 후회이건, 낭패이건 오늘 이 길에 주님께서 나타나실 것을 사모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절망의 길에서 희망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엠마오 길에서의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찾아오셨건만, 실망과 좌절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찾아오셨음에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 슬픔이 오늘 이 시간 우리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없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전에 주님의 모습과 부활 후의 주님의 모습은 다릅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인간적인 형상을 입었던 주님의 모습을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주님의 또 다른 삶의 한 모습입니다.  새롭게 거듭난 부활의 믿음의 눈을 가지지 않고는 부활의 주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내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인데 삼일만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도무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에는 주님의 부활이 믿어졌습니다.  내가 살아난다고 하는 주님의 말씀의 뜻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로 나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 여인들은 긴장해서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 무덤에 들어갔더니 거기에는 더 놀라운 사실이 일어났습니다.  무덤을 보는 순간에 깜짝 놀랐습니다.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인들은 감격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두려움에 잡혀있는 그들을 향해서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여인들이여! 놀라지 마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나사렛 예수를 찾는 줄을 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이것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죽은 자가 살아났다!  이것은 분명히 빅뉴스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덤이 필요 없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 예수님의 무덤 앞에는 이렇게 써 있다고 합니다.
"He is not here!"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He has been raised!"  "그분은 살아나셨다!"
 
유교의 공자나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 등, 어느 성인의 무덤이나 어느 종교의 창시자의 무덤을 가보면 그들의 이름을 크게 쓰고 그가 언제까지 살았다, 그리고 언제 죽었다 라는 식으로 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묻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내가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게 고난을 당할 것이고, 십자가에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이다는 그의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한 주님을 몰라 봤을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부활의 의미를 깊게 파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주님, 삼 년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신 주님,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의 예수님! 그 죽음이라는 낡은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찾고 있었던 예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종교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생명의 눈으로 보아야 생명의 주님이 보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 속에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의 영체로 우리들 속에 오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오셨습니다.  눌린 자에게 오셨습니다.  고통 당하는 자에게 오셨습니다.  기쁨이 없는 자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살아났느니라!  내가 살아난 것처럼 너희도 살리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그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게 따랐던 주님이 어느 날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덤에 묻혔습니다.  얼마나 허무했겠습니까?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얼마나 한심합니까? 
 
선생님이 죽었으니 그 선생님을 따르던 저들도 곧 잡혀 죽을 것 같습니다.  불안에 전염된 공포의 병, 우수의 독이 감염된 고독의 병, 허무의 독으로 오염된 절망의 병, 원죄의 독이 부패시킨 죽음의 병!  이런 병들을 앓아가면서 예수님 앞에서 만난 구도자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저들이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 끝났다!  다 끝났다!  이제는 다 끝났다!

사랑하는 여러분, 희망이 끊어져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 어떤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 때문에 희망이 끊어져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저도 한 때 육신의 병 때문에 희망이 끊어져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고신측 목사님이 제게 오셨습니다.  이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오 목사님, 어제 주일 오후에 제 집사람이랑 문상을 다녀왔는데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어느 문상에 다녀오셨는데요?"  이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이제 50초반이신 자기 선배 목사님이 폐암에 걸리셔서 소천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모님이랑 어제 오후에 문상을 갔는데, 돌아가신 그 선배 목사님의 사모님이 이 목사님의 사모님 손을 꼭 붙잡고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사모님, 목사님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부럽다."

사랑하는 여러분, 옆에 있을 때 잘 하십시오.  월급 적게 벌어다 주는 부족하고 못난 남편이라도 그 남편이 최고인 줄을 알고 옆에 있을 때 더 많이 위해주십시오.  바가지 긁는 아내라도 그 아내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고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때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 때를 지난다고 할지라도 나사렛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리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역사 하면 기억하십시오.  나는 능히 살아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죽었습니다.  저들의 희망도 끝났습니다.  저들의 삶도 끝났습니다.  저들의 젊음도, 저들의 앞날도 다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을 포기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 자식의 내일이든, 내 자신의 내일이든, 내 기업의 내일이든 내일을 포기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잘 가든 못 가든 실개천 같은 믿음의 길을 가 보려고 애쓰다가 어느 날 혼란과 혼돈 속에 그 믿음의 길 자체를 아주 거부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젠 끝났다!  다 끝났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지상최대의 사건!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옛날 본업으로 복귀하고 말았습니다.  바닷가에서 지난날의 절망과 갈등 속에 고기를 잡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저들도 그 날 절망의 현장에 주님이 나타났지만 부활한 주님을 못 알아 봤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새로운 시각의 눈을 뜨지 못하면 때마다 시간마다 묘한 방법으로 부활한 주님이 나타나지만 부활의 주님을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경우에라도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믿으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삼 년 동안을 먹었습니다.  함께 걸었습니다.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들이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그 무서운 훈련을 통과했습니다.  그분의 분신과 같이 살았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스승의 처참한 십자가형을 목격한 저들은 겁에 질려서 예루살렘 어느 다락방에 숨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꽉 잠가 두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여, 평안하느냐?"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저들에게 "너희여, 평안하느냐?"라고 위로까지 받았던 저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 많은 도마는 내가 만져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는 그 도마에게도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자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디베랴 바닷가! 얼마나 추억이 많이 있는 곳입니까?  디베랴 바닷가! 얼마나 예수님과의 기억이 많이 있는 곳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배하는 이 성전! 얼마나 하나님과의 기억이 많이 있는 곳입니까?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는 곳입니까?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온 인격에 스며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던 제자들의 모습,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 지금의 모습, 오늘 이 시대의 믿는 자들의 모습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 신앙이요, 핵심 진리요, 핵심 사상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낙심과 실패의 시각을 부활의 시각으로 바꾸십시오.  다시 희망을 가지십시오.  다시 꿈을 꾸십시오.  다시 예언하십시오.  다시 환상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책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련하여 선지자의 모든 말한 것을 그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에게 믿음이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미련하여 선지자의 모든 말한 것을 마음에 더디 믿고 의심하는 자들에게 이제 그만 방황하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엠마오 길가에서 마치 인생의 실패자처럼 꿈도 없이, 비전도 없이 걸어가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드디어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꿈과 비전을 품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그곳은 약속의 땅입니다.  동트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희망의 길입니다.  믿음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사명의 길입니다.  성령의 길이요, 능력의 길이요, 증거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일어나서 이 증거의 길을 향한 길에 들어서십시오.  예루살렘을 향하여 내 믿음의 길을 떠나십시오.  실패의 도상에서 드디어 저들의 눈이 새롭게 열렸던 것처럼, 오늘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의 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이 바울이 될 때에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모든 눈에 종교의 비늘이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 눈에서 모든 의심의 비늘이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이 복된 날! 부활의 주님, 능력의 주님을 붙들고 모든 삶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도전을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삶의 지휘자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지휘를 따라서 움직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이 있는 한 아직 이 땅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느 생명도, 어느 나라도, 어느 민족도 부활의 주님을 붙잡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삶이 힘들다고 절대로 비관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원망하고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실패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모든 비관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활의 메시지가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네가 정녕 살리라!  그가 살아났으니 나도 정녕 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죽을병에 걸렸거나 완전히 망했거나 실패했거나 더 이상 절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어둠의 사선을 넘어서 축복 받은 생존자들로 변화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저들은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날이 여러분의 삶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4월 12일 부활절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두 번째, 저들은 이 인생의 전환점에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거룩한 욕망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이 선을 먼저 간 사람, 나보다 이 고민을 먼저 한 사람에 대한 존경과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거룩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자기가 받은 상처나 노여움이나 적개심 같은 이런 감정처리를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혼의 풍요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어떤 상처를 받았든, 노여움을 입었든 간에 어떤 적개심이 있든 그 영혼에 풍요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네 번째, 남을 도우려는 거룩한 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이제는 혼자서만 살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싶은,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적은 도움이라도 쏟고 싶은 그런 거룩한 근심들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이제는 자신들이 닮아가고 싶은 모델들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자에게는 언제나 위대한 스승이 있습니다.  위대한 기적을 일으킨 자의 뒤에는 틀림없이 기적의 주인공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이 사선을 넘은 사람들, 이 축복 받은 생존자들의 공통점을 보니까 그 전환점 이후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관적이고 비겁하고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긍정적인 가치관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잘 웃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운 시기에 제일 중요한 자산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웃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일 어려운 시기에 제일 중요한 자산은 웃음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전환점 이후로 실실 잘 웃더랍니다.  이제부터 실실 웃는 자들은 다 살아납니다.  인생을 즐기더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감사하더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더란 말입니다.  인생을 현명하게 살더란 말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탄력성을 가지고 적응력이 강한 삶을 살더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웃으십시오.  울기만 하면 원망과 비판만 하지 창의력이 없습니다.  주위에서 자꾸 우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비판만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원망과 불평을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신 주님의 이름으로 다 날려버리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의 골짜기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산 모습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은 울지 말고 웃으라고 하십니다.  기쁘게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웃으십시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 바로 이때에 온 국민과 지도자, 그리고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자산은 웃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웃음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그 위트와 해학이 제일 중요한 재산입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웃으며 그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행복이란 불행을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일 뿐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패배자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 뿐입니다.  더 이상 부활의 주님 앞에 선 우리는 불평도 없습니다.  원망도 없습니다.  두려움도 없습니다.  내가 넉넉히 이기리라!  이날 만백성이 소망의 주님을 붙든 날입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을 의지해서 모든 삶이 한탄의 계곡에서 벗어나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나라 모든 백성들과 모든 지도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붙들고 한탄의 계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이상 희생자의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패배자의 이야기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희생자의 이야기, 패배자의 이야기, 한탄의 계곡에서 한 많은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희망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박물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는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도 살리라!  나도 살아 일어나리라!"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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