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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예수님의 최후 일성 (눅 23: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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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최후 일성 (눅 23:44~49)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주일인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고난주간의 시작이라 ‘수난주일’(受難主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종려주일이란 명칭은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왕이신 예수님을 환영한 데서 유래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말씀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마지막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남기신 최후의 일성입니다. 
 

[1] 예수님의 죽음 : 대속의 죽음, 성도의 임종 모델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완전히 죽으셨는데, 그 죽음은 두 가지 방면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속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성도의 임종 모델입니다. 

① 대속의 죽음 :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대속(代贖 Redemption)이란 말은 죄값을 대신 치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수동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체포되어 끌려 다니다가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겁니다.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목숨을 빼앗긴 게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내어주신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롬6:23)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는 가운데 죽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사형집행관이었던 백부장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47절.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은 로마 군인으로 객관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관찰한 장본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과정, 십자가 위에서 취하신 태도와 하신 말씀 등을 지켜보고 예수님이 죄없이 죽었다고 판단합니다. 말하자면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주변에서 일어난 이적(Sign) 몇 가지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44절 보면, 사방에 깔린 어둠이 있습니다.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제6시는 정오입니다. 예수님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가장 환한 시간인 정오에 어둠이 깔렸습니다. 오후3시 운명하실 때까지 그 어둠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어둠은 일식과 같은 자연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둠은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신 이적이었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본문 45절 보면, 또 하나의 이적이 나와 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그때는 마침 유월절로 아마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성전에는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가 있었습니다. 성소는 일반 제사장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 반면, 지성소는 1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휘장(Curtain)이 드리워 있습니다.(출26:33 참조) 만일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고 누구라도 휘장을 들쳐보거나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즉사합니다. 죄인은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바로 그 순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겁니다. 아마 제사장들이 소스라치게 놀랐을 겁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성소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담이 무너졌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② 성도의 임종 모델 :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더 나아가 성도의 임종 모델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도들이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해야 되는지 그 모범을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오죽하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쳤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을 통해 대속하신 후 이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고 평안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운명하셨습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께 가신다는 겁니다. 쉽게 생각하면 “아버지! 저 갑니다!” 이런 말씀이죠.   

그 모습을 마27:50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예수님의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서 천국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이 과연 어떤 현상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겁니다. 전12:7 “흙(dust)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spirit)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갑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불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현상에 관해 정확히 모르니까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죽음 앞에서 다 두려워합니다. 프랑스의 황제 루이 14세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불길한 예언을 함으로 혹세무민하는 거짓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황제는 체포령을 내렸고, 사형에 처하려고 합니다. 사형에 처하기로 작정한 황제가 그를 불러다 놓고 물었습니다. “네가 예언을 얼마나 잘 하는지 봐야겠다. 너 자신에 관해 예언해 봐라. 네가 언제 죽을 것 같은가?” 그러자 그 거짓 예언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폐하! 본래 예언자는 자기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법입니다. 다만 저는 황제 폐하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죽을 것이란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황제는 황당하고 괘씸했지만, 두려운 마음에 그를 사형에 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 있기는 하지만 죽음의 현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평안하게, 그리고 존엄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면서 그 모델을 보여주신 겁니다. 

  
[2] 성도의 임종 자세 : 평안, 존엄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평안하게 존엄하게 임종을 맞이해야 될 텐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무엇보다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하면 됩니다. 죽음을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죽음은 종착지가 아니라, 내세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영혼의 여행’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외국여행을 할 때 공항에 나갑니다. 공항 대합실에 가면 대개 꼭대기에 출발 층이 있습니다. 영어로 Departure인데, 이 단어는 ‘죽음’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롭죠. 죽음은 떠나는 겁니다. 비행기를 타려면 게이트를 찾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데, 그걸 타고 있기만 하면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종착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인생의 죽음(Departure)에는 두 개의 게이트만 존재한다는 겁니다. H1 게이트와 H2 게이트입니다. H1 게이트는 Heaven 즉 천국으로 가는 게이트입니다. H2 게이트는 Hell 즉 지옥으로 가는 게이트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자심으로 믿는 성도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게이트가 되셨고 또 그 게이트로 천국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 위에서 온간 고통을 다 당하시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영혼이 죽음을 통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셨기에 평안한 죽음,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었습니다. 

① 평안 :  

예수님이 하신 “아버지!”라는 말씀 속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얼마나 친밀하신지 그 훈훈한 감정이 물씬 풍겨납니다. 이제 평안하게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버지 품에 편안히 안기는 절차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선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잠14:32 보면, 성도의 죽음에 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죽음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천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타이태닉」을 기억하시죠. 1912년 초화와 유람선의 처녀항해 도중 빙산에 충돌해서 침몰함으로 1,500명 넘게 사망한 해난 사고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본래 로맨스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신앙과 인생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침몰 직전이 배에서 탈출해서 구명보트에 옮겨 타는데 서로 살겠다고 밀치며 아우성을 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더 타면 보트가 전복될까봐 못 타게 하려고 총질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갑판 위에서 악사들이 침착하게 찬송가를 연주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 지휘하던 악장(월레스 하틀리)은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만이 소망입니다!” 그 외침의 소리와 찬송가 연주를 배경으로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입니다. 두 손을 꼭 잡고 임종을 맞이하는 노부부,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아가야! 걱정 마라. 이제 곧 행복의 나라로 가서 아름답게 살 게 될 거야!” 하며 어르는 어머니의 모습, ... 동일한 죽음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리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죽음 너머 천국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② 존엄 :

인간은 아름답게 살아감으로 존엄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죽는 모습을 통해서도 존엄성을 나타냅니다. 성도의 죽음이 그런 겁니다. 시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비참하게 보지만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것입니다.

독일의 본 회퍼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계2차 대전 당시 히틀러 나치 정권에 맞서 항거하다 순교한 분입니다. 그는 유명한 신학자로 미국의 유수한 신학교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척 하고 응하면 난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양합니다. 그리고 독일에 남아 저항합니다. 결국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마지막 처형당하고 맙니다. 1943년 4월 9일 그는 동료 수감자들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끌려갑니다. 그 때 동료들을 돌아보며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개처럼 질질 끌려가면서도 얼마나 의연합니까? 이게 바로 성도의 존엄한 임종입니다.


[3] 성도의 임종 준비 : 믿음, 충성   

이와 같은 평안한 임종, 존엄한 임종을 위해 우리는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닥쳐오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① 믿음 :  

무엇보다 우리는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평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 23편 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시23:1,4,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런 믿음을 위해 우리는 평소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각자 개인적 치원에서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미국의 한 소년이 소아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여러 말로 위로해 보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경 말씀을 읽어주길 했습니다. 어머니가 시편 23편을 읽어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지시니 ... ”(The LORD is my shepherd) 그리고 설명해 줍니다. “얘야! 이 말씀은 다섯 개의 단어로 되어 있지? 그 중에서 네 번째 단어(my)가 가장 중요하단다. 하나님의 너

의 목자란 뜻이야. 명심해라.”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반지를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번째 단어를 꼭 기억해라!” 그 다음 날 새벽 에 일어나 보니 그 소년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그래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년이 오른 손으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잡고 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그 믿음으로 평안한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② 충성 :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떠나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애에 관해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은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정죄의 심판은 면제됩니다. 그러나 믿음 이후 어떤 사람을 살았는지 상급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겁니다. “너 무엇 하다 왔느냐?” 그때 무얼 내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딤후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서 순교를 예감합니다. 지나온 생애를 회고하면서 장차 자기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확신하며 담대히 고백한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박하게 살았든 거창하게 살았든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임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석유 왕으로 불리는 록펠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계 역사 상 최고의 부자입니다. 수자상으로는 빌 게이츠가 1위지만, 화폐 가치를 따지면 록펠러가 단연 1위입니다. 그는 또한 기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점을 하면서 돈을 버는 데 급급해서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겠습니까? 53세가 되던 해 그만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합니다.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기왕에 죽을 바에야 베풀고 죽자!” 그 후 열심히 교회와 자선단체, 학교 등에 기부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마음이 편해지면서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병이 치유됩니다. 곧 죽을지도 몰랐던 그가 놀랍게도 그 후 44년을 더 살았습니다. 멋진 인생을 살다 아름다운 임종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사는 자가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형편 가운데 맡겨 주신 일들을 위해 충성을 다하면 언제 주님이 부르셔도 두려움이 없을 겁니다. 
  
이제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예수님의 마지막 임종의 모습을 마음 속에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나를 대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다지고, 남은 생애 주님 위해 충성하다 평안하고 존엄한 모습으로 천국이 들어가리라 결단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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