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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 (요 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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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 (요 17:20~26)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낀다. 나의 나 된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새를 시작한지 2주가 지났는데 중도하차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기도만 가지고는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날 위해 기도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드린 유명한 기도이다. 17장에서 예수님은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셨을까? 그것을 살펴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통하여 예수님의 주된 관심과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기도
1. 자신을 위한 기도(1-5) :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사명에 관한 기도였다. 그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다.

2. 제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6-19) : 3가지
1)하나되게 하소서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소서.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3)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자들은 앞으로 세워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기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래서 성자 예수님과의 거룩한 연합으로 하나가 되어져야만 하고, 성결함을 유지해야만 하고, 진리로 무장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제자들을 통해서 세워질 교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하셨다. 


3. 교회를 위한 기도(20-26)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앞서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그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중요한 과제는 하나됨이다. 그렇다면 하나됨을 위한 근거는 무엇인가? 

1)하나됨의 근거는 무엇인가?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같이”(11절), 성부와 성자의 하나되심 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됨의 모델이다. 완전한 화합, 일치를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먼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하나되어져야 하고, 그리고 장차 구원받게 될 모든 성도들 곧 교회가 하나되어져야 한다. 근거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 되신 삼위하나님께서 하나되시기 때문이다.

2)하나됨은 어떤 유형의 하나됨인가? 
존 라일, 21절의 말씀을 이렇게 풀었다.
“아버지 당신과 내가 한 마음, 한 뜻이듯이 즉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이 나의 이 제자들과 이후로 내 제자들이 될 사람들도 하나의 생각, 하나의 교리, 하나의 의견, 하나의 마음, 하나의 실천을 이룸으로써 모두 함께 일체를 이루고 결합하여 주시기를 나는 기도드리나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것은 곧 인격적 결합을 말하는 것이다. 강제적인 통합이 아니다. 
예)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그레고리-세례를 받든지 칼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3)하나됨의 이유 -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 3가지 이유
첫째,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하여. 
쉽게 표현하자면 복음 전파를 위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다툼과 분열은 전도의 문을 막고 교인들로 하여금 낙심케 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데려와서 시험들게 하고 다 내쫓는다면 안데려 옴만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반드시 ‘하나됨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불신자들이 한 번 두 번 나와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화평함과 하나됨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교회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책망하였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하나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사단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큰 소리 나서는 안된다. 교회의 하나됨을 막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도 안된다. 그것은 주님의 몸을 상케 하는 죄이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다투고, 반대하고, 갈라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견딜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마지막 교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그 간절한 기도의 목적 - 하나됨을 보고 예수 믿게 하기 위함.

둘째는 사랑을 알도록...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사랑이 없다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셨다(요13:34-35).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보라. 서로 교제를 나누고 물건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불신자들이 감동을 받았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광은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영광이 되는가?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며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고난이 있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값어치가 없다.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크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었기에 그 영광도 크신 것이다. 주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길은 고난이지만 영광의 길이기 때문이다.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에게서는 거룩함을 발견할 수가 없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스러운 미래의 나라를 보게 된다. 성도는 그 나라에 소망을 두기에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을 통하여 들어가서 보게 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소망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오늘날 이 세상에 세워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보게 된다. 

1)하나됨을 통한 신뢰 회복 - 세상으로 믿도록
2)성도간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3)진리로 거룩해져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예)사람 좋은 등대지기 
- 할머니, 동창생, 아내가 찾아왔다. 그날밤 거센 바람과 함께 폭풍우, 다음날 아침 무서운 소식이 들려왔다. 큰 배가 침몰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그전 날 밤, 큰 배가 캄캄한 바다에서 바람에 밀려 바위에 부딪혀 좌초된 것이다. 그날 등대는 꺼져 있었다. 등대는 왜 거기 서 있었는가? 왜 불을 밝히지 못했는가?

예)자동차 공장에서 냉장고를 만들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18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 - 
어리다고 할 수는 없다. 청년의 나이, 세상을 볼 안목이 생길 만도 하다. 청년들은 아직 미숙하지만 꿈이 있고, 순수하고, 열정이 있고 힘이 있다. 

불안한 평화를 누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 교회는 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오늘 살펴본 예수님의 기도 속에 그 대답이 들어 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
1)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다. 
2)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 복음을 믿도록. 
3)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도록 나타내는 것이다.
4)거룩함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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