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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마 27: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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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마 27:45~50)
 
 
우리는 그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을 함께 나누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7번째 시간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크게 소리질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질문을 함께 살펴보면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있습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질문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으로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계실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여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그를 희롱하여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했으며,  심지어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마져도 그를 "욕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이럴 때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그리고 여러분들이 예수님이었다면 "그래 내려왔다. 어쩔래, 너희들 맛 좀 봐라"하면서 피범벅을 만들어 버리고서는 "까불지마라, 입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하고서는 다시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멋드러지게 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존심도 살고 본때도 보여주고 사명도 감당하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권세도 가지고도 크게 써먹으려고 얼마나 발광을 합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있는 권세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누구나 자존심이란게 있습니다. 박수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격려받고 위로 받고 싶어합니다. 권세를 부리고 싶고, 힘을 써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지고 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박수가 없어도 가는 길. 칭찬이 없고 격려도 없고 위로가 없어도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있는 힘마져도 사용하지 않고 권세를 부리지도 않고 당하며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시편 22:1에 나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시편에 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표현하셨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독자적인 표현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누군가는 이 질문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와 같은 질문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신 예수님의 이 질문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라마"라는 말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라마"는 "위하다"는 뜻을 가진 "라"와 "무엇"이라는 뜻을 가진 "마"가 합성되어서 "무엇 때문에" 혹은 "무엇을 위해서"라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어떤 목적을 두시고'가 됩니다.   결국,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은 "무엇 때문에 나를 버리셨습니까?" 혹은,"무엇을 위해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목적에 대해서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분명한 하나님의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버림받아야 마땅할 우리 대신 버림받으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 버리셔서 저를 믿는 모든 자를 영생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아야 할 우리 대신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했고,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미국 개척 초기에 유럽 에서 온 각국 사람이 저 나름대로 끼리끼리 모여 촌락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가을철이 되어 키를 넘는 풀들이 화약같이 말라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인디언들이 한 동네 주변에 불을 질렀습니다. 한밤중에 밖이 아침같이 밝아오니 그 동민들이 놀라 깨어 나왔습니다. 하늘이 녹을듯 불길이 몰려옵니다. 가족들은 서로 붙잡고 공포에 질려 통곡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노인이 앞 장서서 "자, 젊은이들아 저쪽, 저쪽 동네 밖에 불을 질러라"고 외쳤습니다. 젊은이들은 노인을 미쳤다고 원망합니다. 노인은 황급히 젊은이들을 호통칩니다. 그리하여 젊은 이들이 불을 질렀습니다. 바람길을 타고 그 새 불은 다른 방향으로 확 타고 지나같니다. 그때 노인이 다시 엄숙히 하는 말, "불 탄자리에 옮겨서라." 불이라는 것은 한번 태운 것을 두번 태우지 못합니다. 동네사람들은 다 살아났습니다.
  "불 탄 자리에 다 옳겨서라" 불이라는 것은 한번 태운 것을 두번 태우지 못합니다. 버림받아버린 예수님 안에 옮겨 서면 다시 버림받음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많아도 돈이 많아도 건강해도 존경받는 삶을 살아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죄의 값을 치르는 속죄의 희생제물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버리심을 당하심으로써만 우리가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죽으심에 올라타면 됩니다. 그곳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때때로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질문하셨던 이 질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게신 것 것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심음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시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그의 책 <기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캄캄한 어둠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주먹으로 천국 문을 두드리는데 응답이 없을 때.  신학적으론 분명히 계신 하나님임을 알지만, 현실에서 도무지 느껴지지 않을 때. '숨어계신 하나님'을 찾는 일은 사막에 홀로 버림받은 자의 처절한 심정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 길은 성공한 믿음의 선조들이 이미 걸어갔던 길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레미야 뿐아니라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걸어가셨던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이와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럴 때, 왜 나만 이럴까 라고 자포자기를 하지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있는 꼭두각시나 요술냄프속에 들어 있는 요정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나에게 침묵하기도 하시며, 나에게 침묵하라고 요구하기도 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때에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아무리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을 때, 아무리 기도해도 빚이 없어지지 않을 때, 아무리 기도해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때, 그리고 아무리 기도해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이러십니까?"라고 질문이 우리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버리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면 이런 어려움을 격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가 정한 나의 때에 응답은 받지 못하였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 그 전능하신 분은 그분의 때에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것조차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인 것을 깨달게 될 날이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는 분이 아니시란 것을,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우리보다 우리 사정을 더 잘 아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그래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주시는 사랑스런 아버지이신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사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다 영광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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