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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주가 쓰시리라 (막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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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쓰시리라 (막 11:1~10)


'샘플만 써 봐도 알아요' 의 광고로 유명한 참존(Charmzone)화장품 설립자는 김광석 장로입니다. 그의 저서 '주가 쓰시겠다 하라'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서울에 올라가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약대를 졸업한 후 을지로에 4평짜리 약국을 개업했습니다. 밤마다 좁은 약국에서 피부병약 연구에 매달리던 그는 피부병 특효약을 개발하고 피부병 전문 피보약국을 열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무허가 제약혐의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 검거대상이 되어 범법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5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마지막으로 찾은 양산 통도사에서 인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우연히 보면서 억울함과 답답함의 눈물을 흘리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자수를 한 그는 56일간 구치소 생활을 마친 후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 그는 1984년 직원 10명과 함께 기초전문화장품 회사 '참존' 을 설립하였습니다. 청개구리 경영방식으로 스킨과 로션 등 기초화장품만 생산하던 참존은 드디어 국내브랜드 파워 1위 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김장로는 부채가 많은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꼭 드렸습니다. 기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중국 연변의 과기대, 미국 플러스 신학대에 장학금을 보내는 일들을 통해 끊임없이 주님이 주신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는 말씀은 플러스 신학대에 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한 그의 입에서 나온 성경구절입니다. 그의 물질관은 "주가 쓰시겠다 하라"입니다. 김장로는 말합니다.“주님은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는 데 무어라 하겠습니까? 그저 순종할 따름입니다" 주가 사용하시겠다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아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로드쉽(Lordship) 즉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이 삶의 주되심을 인정하느냐 여부에 따라 인생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대부분 고난주간을 맞이하면 예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 나를 위해 얼마나 큰 고통과 희생을 당하셨는가를 생각하면서 예수의 고난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감격만 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 놓은 구원의 복음을 실어 나르는 나귀가 되기 원하십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자랑할 것이 없는 나귀처럼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만 위해 살아온 것을, 나만 위해 주님의 것을 허비했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귀 주인처럼 주께서 쓰시겠다면 기꺼이 드리겠노라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쓰시는 존재가 되려면,  

첫째로 풀어져야

필라델피아지 편집인 프레드 셰드(Fred Shead)가 필라델피아 대학 졸업식에 연설자로 초청을 받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통나무를 톱으로 켜 본 사람은 손을 들어 보십시요."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톱밥을 켜 본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톱밥을 켤 수 없지요.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이지요.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일과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한번은 야구계의 원로인 코니 매크에게 진 게임 때문에 걱정한 일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예, 나도 전에는 종종 그랬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흘러간 개울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매고 있는 과거의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풀어져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의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주님이 사용하시는 나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매임에서 풀림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쓰시기 전에 세상에 매였던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여 살았다는 뜻입니다. 욕심과 이기주의와 물질에 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이러한 매임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세상 것에 매임으로 인하여 주님께 쓰임 받지 못하고 사탄에게 쓰임 받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매임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혈통에 매였고, 전통에 매였고, 세상 학문에 매였고, 자기 자랑에 매였고, 명예와 세상 권세에 매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매임이 풀렸을 때 삶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매임에서 풀린 바울은 자유함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쓰임 받는 나귀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바울을 타시고 세계를 다니셨습니다. 바울을 타시고 만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해도 쓰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매인 것이 풀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쓰기 원하십니다. 어디에 결박되어 있습니까? 풀어져야 합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 전도를 못하게 하는 것들에게서 풀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쓰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순종해야 

삼성 휴대폰의 '애니콜 신화' 를 만들어 낸 사람은 이기태(李基泰) 사장입니다. 그는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사장입니다. 그가 남모르게 해 오던 일들이 최근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TV를 보면서 병원비가 없어 애타하는 사람, 시골교회, 해외선교, 가난한 사람 등에게 아낌없이 물질선교를 해온 것입니다. 대기업 사장인데도 불구하고 재산은 대구에 1억 8천만원짜리 집 한 채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조건 선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은 한 술 더 떠서 도움이 필요하면 카드 빚을 내서라도 선교하였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주님께 쓰임 받도록 만든 순종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마가는 나귀새끼를 끌고 가도록 허락한 사람들에 대해서 주인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와 나귀새끼 주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나귀새끼 주인과 예수께서 아는 사이라면 제자들도 알았을 것입니다. 허나 제자들이 모르는 것을 보면 예수와 나귀새끼 주인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나귀의 주인은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라는 말에 끌고 가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즉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나귀 주인에게는 나귀가 생계 수단입니다. 그런데도 선뜻 나귀새끼를 내어주는 순종은 귀한 일입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에 대하여 알았을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시고 문둥병 환자를 고치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안나오는 이 주인은 나귀를 내어 줌으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이제나 순종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축복은 순종으로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쓰시겠다면 나의 이성과 경험에 맞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소유를 주님께 드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풍성한 삶이 펼쳐지게 됩니다. 나귀새끼를 내어주는 순종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할 순종의 참된 모습입니다. 

셋째로 모시어야

요단강(Jordon River)계곡에 아름드리 나무 세 그루가 있었습니다. 세 나무는 서로의 꿈을 나누었습니다. 한 나무가 말합니다. "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러 오는 것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어야지". 두 번 째 나무가 말합니다. "나는 지중해의 유람선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즐기는 것을 보리라". 또 한 나무는 말합니다. "나는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뻗어 사람들이 산에 오를 때 그늘 아래 쉬면서 나를 쳐다볼 때마다 하늘을 보게 해야지." 어느 날 목수가 와서 나무들을 잘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고자 했던 나무는 베들레헴 말구유에 가서 짐승의 밥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가 태어나 그 위에 누웠습니다. 

유람선이 되려고 했던 나무는 작은 돛단배가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의 배가 되었는데 예수께서 타시고 설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그늘이 되고 하늘을 쳐다보게 한다던 나무는 십자가가 되어 골고다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비록 저들의 꿈은 다 깨어졌지만 깨어진 꿈속에서 주님의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질지라도 예수님을 모신 구유처럼, 예수님이 타신 배처럼,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처럼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다면 영원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큰 인물이 되리라, 큰 기업가가 되리라, 큰 명성을 날리는 학자가 되리라 했던 꿈이 깨졌을지라도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아기 예수를 누인 구유처럼, 타시고 설교하신 배처럼, 주께서 달리신 십자가처럼 역사의 종말이 올 때까지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크게 쓰임 받지 못했다고 탄식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을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나귀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비록 보잘 것 없는 나귀였지만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제자들이 겉옷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나귀가 걸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옷을 펴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호산나' 를 외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이 받으시지만 나귀도 덤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쓸모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허물 많은 존재라도 주님을 모시면 기적적인 영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허물까지도 주님께서 쓰시도록 그 위에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 허물도 들어 쓰심으로 영광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나귀가 되려면 주님이 타실 때 불편함을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님이 불편하시면 안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님이 걱정스러워도 안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님이 위험해도 안됩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나를 통하여 기뻐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면 여기 있나이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내놓으며 나를 쓰시옵소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부디 끝까지 주님의 쓰임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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