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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와 구원 (요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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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구원 (요 3:16~18)


우리 기독교는 세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열심히하여 출세를 하고 돈을 열심히 벌어 부자가 되고 하는 일을 열심히하여 성공하는 것을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 즉 세상은 기독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즉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구원 받은 삶을 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다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얼마 전 밤에 자리에 누었는데 그냥 갑자기 제 모든 삶이 감사했습니다.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내가 꿈도 꾸지 않은 삶이야.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살겠다고 욕심도 부린 적 없는데....... ’ 저도 사람인데 왜 꿈이 없었겠습니까? 삶에 대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보통은 그 꿈과 욕심은 막상 현실과 다른데, 보통 현실은 꿈과 욕심을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인데 제 경우는 반대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구원의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세상 사람이니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고 하는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을 당하면 그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대부분은 풀립니다. 그런데 제 구원의 삶은 그것이 풀렸을 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합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틀림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니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그 구원의 삶을 축복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영원히 그 삶을 계속하여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은 없어지고 완벽한 하나님 나라만이 있는 그런 삶을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죽음은 불완전한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죄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제가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게 된 것은 일본의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의 양치는 언덕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목사님 딸이 료오이찌라고 하는 바람둥이에 빠져 부모를 버리고 도망가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 료오이찌의 삶이 너무 방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옵니다.

료오이찌가 폐병에 걸려 나오미를 찾아 옵니다. 나오미는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목사인 아버지의 권면 때문에 료오이찌 받아들입니다. 료오이찌는 처가 집 식구들의 믿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난 삶을 삽니다. 그와 같은 삶을 통하여 몸도 마음도 건강해 져가고 있었습니다. 료오이찌는 요양생활을 하면서 다락방에 올라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늘 그림을 하얀 천으로 가려 놓았습니다. 나오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그리는 그림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에 사귀던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 수 없이 나가서 만났습니다. 여자가 술을 권하고 하루 밤 자고 가기를 유혹했지만 거절합니다. 여자가 술에 수면제를 타서 이 술 한 잔만 마시며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 술을 마십니다. 잠이 오지만 그 집에서 잠들지 않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가 길에서 잠이 들어 그만 동사합니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료오이찌를 장례하고 남편의 그림에게서 그 하얀 천을 걷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발아래 청년 하나가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손에 예수님의 피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을 료오이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료오이찌는 깨끗하다. 료오이찌는 아름답다. 료오이찌는 구원 받았다.’ 

저는 그때 누구나 료오이찌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면 진홍 같이 붉은 어떤 죄라도 다 흰 눈 같이 깨끗하여 질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졌습니다. 십자가에 그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는 용서를 통해서만 없어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죄 사함이라고 부릅니다. 용서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얼마큼 사랑하는가가 얼마큼 용서할 수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청량리 중앙교회에서 고등부 전도사를 할 때 남학생 하나가 저에게 설 명절에 카드를 보냈습니다. 손으로 직접 그려서 만든 카드였습니다. 한복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세배를 하는 모양의 카드였습니다. 카드 앞 면에는 ‘전도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이 적혀져 있었고 그 아래 ‘얼마큼?’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카드를 열면 손을 옆으로 쫙 벌리고 있는 모양이 되는데 그 안에 그 아이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만큼 !!!........’ 너무 재미있는 카드였습니다. 저는 그 카드를 열었다 닫았다하다가 십자가가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카드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십자가 카드 앞 면에 하나님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쓰셨습니다. 우리가 ‘얼마큼이요?’이라고 물으시면 ‘이만큼’이라고 답하시며 두 팔을 쫙 벌리십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저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표현이 ‘이처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처럼’이 십자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료오이찌의 죄도 살인마들이었지만 료오지찌 처럼 회개하고 구원을 얻은 지존파, 고재봉, 김대두와 같은 사람들, 성경에 나오는 십자가의 회개한 강도,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료오이찌처럼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져 리그의 투수가 되어 승리투수가 되었을 때 그 녹화 테잎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승리한 게임이었지만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만루 위기에도 빠졌았고, 홈런도 맞았습니다. 녹화 테잎 속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불안해하고 가끔 절망적인 멘트를 하였지만 저는 태평이었습니다.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찬호 선수가 이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9회 말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정말 알고 믿고 있다면 삶이 좀 꼬여서 홈런을 맞게 되고 만루 위기를 맞는다고 해서 불안해 하거나 힘들어하거나 게임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창조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 속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정성과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되실 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가 감사한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왜곡되고 비틀어져 있는 이 세상에서 세상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행함으로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훌륭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행함 없는 믿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평생을 예수를 믿으면서도 정말 구원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고, 입으로만 시인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식을 버리고 세상식과 타협하며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 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에 권세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믿음의 권세로 승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성찬을 받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식을 고집하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믿겠다는 결단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을 얽매고 있는 모든 세상의 무거운 짐과 고통을 다 벗어 버리고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 것을 기대하고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없습니다. 많은 돈으로 구원 얻지 못합니다. 세상 적인 성공으로도 구원 얻지 못합니다.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그 믿음은 십자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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