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가 정말 기뻐해야 할 일 (빌 1:12∼18)

  • 잡초 잡초
  • 550
  • 0

첨부 1


성도가 정말 기뻐해야 할 일 (빌 1:12∼18)


WBC(World Baseball Classic)대회가 끝났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결승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5대3으로 석패하고 말았습니다만 어려운 경제로 우울했던 국민들을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하게 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선수들이 돌아왔습니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하고 준우승을 했습니다만 우승 못지않은 영광을 얻었습니다. 정말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중계를 보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잘못한 선수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구리에도 한 선수가 있지요. 

인창동 LG 아파트에 가면 환영과 축하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만 LG아파트에 사는[윤석민]투수입니다. 정말 잘하대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선수이자 구리의 아들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특히 얻은 게 있다면 아마도 세계가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되었고 선수들의 근성을 통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민성을 보여준 대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각종 관심과 아울러 뒷이야기들이 무성합니다만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야구 스타일과 스포츠 수준을 널리 알렸다는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회시작 할 때만해도 세계 여러 나라의 감독들이나 방송에서 우리나라의 야구스타일을<스몰 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홈런도 많이 못치고 깨작깨작 좀스러운 야구를 한다는 비아냥 정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 야구가 그렇고 우리가 일본을 그대로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땠습니까?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홈런치기 어렵다는 그 야구장에서 자그마한 우리 선수들이 펑펑 담장을 넘겨댑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렇다고 그것만 하는 게 아닙니다. 수비는 수비, 도루면 도루, 야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시기적절하게 멋지게 성공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야구에 매료되었습니다. 연구대상이 되었어요. 배워야할 모델이 되었단 말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대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구 잘하고 돈 많다는 미국과 일본을 위한 잔치로 시작한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두 나라의 스폰서가 가장 많이 투자해서 표면상으로는 야구의 세계화를 외치며 열기를 증가시키자 했지만 그 이면에는 욕심도 숨어 있었지요. 그래서 이상한 대진 방식으로 결국에는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해먹자 했습니다만 혜성같이 나타난 대한민국으로 발칵 뒤집어진 것입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야구 본토의 진짜 실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자기들에게 적수가 없음을 보여주자는 생각도 있었고, 일본은 일본대로 아시아 야구의 맹주임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대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세계는 일본 야구에 관심이 많았지 대한민국의 야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년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그것으로 한국야구의 수준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과 우리나라의 야구 역사를 보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프로야구의 역사에서 일본은 76년 우리나라는 28년으로 무려50여년이나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야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현재 고등학교야구팀은 일본이 4,100개 팀인데 비해 한국이 50개 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사람들의 밑바닥에는 다른 스포츠는 몰라도 적어도 야구에서만큼은 한국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지난 2006년 첫 WBC 대회 때 일본의[스즈키 이치로]가 “앞으로 30년간은 한국이 일본을 넘볼 수 없도록 하겠다.”라고 건방을 떤 것도 이 같은 인식을 대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뚜껑을 열었더니 이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스몰 볼도 아니고 어떤 담장이든지 단숨에 넘길 수 있는 파워와 야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기명기는 다 보여주면서 한 차원 높은 야구를 하거든요. 그래서 대한민국만이 가진 독특한 야구 스타일을 인정받았고 연구대상이 된 것입니다. 한국만이 가지는 특색 있는 야구를 선보였고 그것이 세계 2위라는 성적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이 성적을 두고 뭐라고 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우승을 못했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만족하고 있습니다.“우리선수들의 플레이에 만족한다.”는 대부분의 평가입니다. 그래서 선수든 국민들이든 아쉬움이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도 인정하는<우리 플레이에 만족할 만한 한국만의 야구>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겼던 게임들을 보면 선수들이 하나같이 그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즐기니까 자기의 장점이 다 나오는 것이거든요. 대회가 끝나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우리선수들의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감기 걸린 선수, 몸살 걸린 선수에다가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으로 가서 대회를 치렀는데 한 게임 한 게임하면서 점점 더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며 만족하는 게임을 통하여 승리로 바꾸어 간 것이지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처음에는 긴장도 되고 부담도 되었는데 나중에는 게임자체를 즐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운동선수가 어떠한 어려움과 힘든 상황속에서도 경기자체를 즐기는 것에서 자기가 만족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도 겪고 고난도 만나겠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 자기의 세계를 인정하고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가치관을 세워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심리학자[M. 스콧 팩]은 살아가는 가운데 다가오는 많은 문제들 중에 특히 고통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몇 가지 지혜를 제시합니다. 

먼저 삶속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고통 앞에서면 그 고통을 굉장히 크게 봅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당한 고통만 보게 되는데 그때 인생에는 고통만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고통이 있는가하면 그 속에 즐거움도 있는 것이고 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또 다른 고통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즐거움은 공존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언제나 낙관적인 자세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사건에 임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에 대한 가치와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른 목적을 세워야 바른 가치관이 옵니다. 말하자면 이건 질적인 문제입니다. 일을 하면서 얼마를 벌었느냐가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이 일을 해서 얼마나 이익을 남겼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세운 궁극적인 목적에 얼마나 부합한 생을 살았느냐 하는 데에 중점을 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이 있고 일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로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보는 일에 진실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보는 일에 정직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인생에 균형을 잡고 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실패하는 겁니다. 쉬운 말로 포기할 것과 선택할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려고 하는 것들을 냉철히 생각해 보면 다가질 필요도 없는 것들입니다. 몇 가지는 가져야 할 것들이고 몇 가지는 버릴 것들이라는 판단을 빨리 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버리지 않고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걸 다 가지려고 하다가 아무 것도 못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균형을 잡아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되 그 포기하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요? 결국 얻기 위해서 버리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거 하나만 가지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기쁨에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버리지요. 모르긴 해도 아주 헐값에 처분했을 것입니다. 그럴만하지요. 왜요? 자기가 필요로 하고 가지고자 하는 절대 가치가 눈앞에 있으니까 그것을 위하여 다른 것은 버려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생의 목적이 바로 앞에 있는데 이 절대가치만 가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그것을 위해서 나머지는 쉽게 버릴 줄 아는 위대한 용기가 있을 때 결국은 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성경 속에서 그 정도의 사람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당시 바울이 갇혀 있던 감옥이란 지금처럼 인권이 보장되는 감옥이 아닙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건 파리 목숨만도 못한 그런 때입니다. 거기에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사도바울이 지하실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편지를 써서 보낸 글이 오늘 본문입니다. 감옥 안에서 썼다고 하여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말합니다. 

자, 그런데 오늘 바울의 편지를 보면 그 감옥 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 기뻐하고 있습니까? 무슨 일로 인하여 바울이 감옥 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오직하나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으로 인하여 복음을 전하는 다른 사람에게 더욱 전도에 힘이 되었으므로 기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그러니까 바울의 생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전파요 지금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의 다른 모든 것은 버려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전파를 위해서 자기 육체적 고통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라는 고백입니다. 그야말로 고통 속에 공존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요, 자기의 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고 그 진실에 충실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그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가 전파 되는 것, 즉 복음전도였습니다. 

18절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오늘 이 말씀을 주목합시다. 중요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전도는 하는 척 흉내만 내도 그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 하도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억지로 했더라도 그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게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전도하라는 목사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전도지 들고 가서 휙 건넸는데 그것이 결실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전도를 아예 안하는 게 문제요, 더 문제는 전도 잘 하는 사람 못하게 하는 사람이 제일 문제입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은 회개해야할 큰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 전도하는 것을 보면서 된다, 안 된다 할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정해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바울은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당한 현실, 나의 당한 모순, 나의 당한 말도 안 되는 이 엄청난 고생이지만 사도바울은 그것마저도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고 동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불과 200년도 지나지 않아 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됩니다. 바울이 알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현실에도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만이 아는 기쁨과 행복이란 게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충족 되는 기쁨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편안으로는 도무지 깨달아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바로 한 사람이 전도 되어 하나님 앞에 서는 영혼이 될 때 누릴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라면 내가 희생되고 내 명예가 실추 되고, 내게 고통이라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나에게 어떤 손해와 그 무엇을 잃어버린다 해도 복음이 전파 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정말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기쁨을 버리고 오늘 사도 바울의 기쁨을 아는 우리가 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