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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기도로 (막 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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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도로 (막 9:25~29)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그들에게 변화된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광경을 보여주신 후 내려오셨을 때 있었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더불어 산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나머지 제자들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귀신 때문에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막9:18, 20, 25, 마17:15).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만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구경꾼들 가운데 끼어있던 서기관들이 이때다 하고 시비를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본문보다 앞서는 14절에 보면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평소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겨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그들을 헐뜯고 정죄할 기회를 엿보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아홉 명이나 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린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고는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했기 때문에 제자들과 크게 말다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아홉 제자들은 매우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있었을 것인데 마침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아이를 살려주심으로써 겨우 그 힘든 처지에서 헤어나오게 되었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예수님 덕분에 진땀나고 망신스러운 자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쉽게 내쫓으신 귀신을 자기들은 왜 쫓아내지 못하고 그 망신을 당해야했는지 이해가 안 되고 참을 수 없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물러가고 예수님하고만 따로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예수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본문 28절)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주신 대답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본문 29절)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실패의 원인이 기도하지 않고 귀신을 내쫓겠다고 달려들었음에 있었다는 예수님의 질책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실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실패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어째서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처음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의 일을 돌이켜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선 마10:1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는 증언을 봅니다. 그리고 마10:9-10에 내려와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명하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명령하셨겠습니까?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예산이 확보되었는지, 여비는 넉넉한지, 비상금도 갖고 있는지, 장비나 그 밖의 준비물도 충분한지 등 꼼꼼히 살피라고 하시지는 않고 왜 오히려 그 반대로 명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수단과 물질적인 준비에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함을 가르치시고 또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며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만 할 것이라는 믿음을 새롭게 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간구, 그것이 무엇입니까? 곧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없이 자기들끼리만, 그것도 단 두 명씩 짝지어 처음으로 전도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분명 두렵고 떨림 가운데 오로지 하나님만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일에 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에 의해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자가 낳는 놀라운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막6:12-13은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자들은 이미 수많은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도 고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실패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필경 그렇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귀신 쫓고 병 고치는 능력이 자기들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교만해졌던 것 같습니다. 두렵고 떨림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만 간절히 매어달려 기도해야할 절박감이 점차로 희미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도하기를 게을리 했고 심지어는 기도하기를 아예 잊어버리게까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교만이라는 시험에 들었었고 그 교만이 그들에게 뼈아픈 실패를 맛보게 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귀신을 내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제자들의 교만을 꾸짖으신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상기시켜줍니다. 첫째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 들린 자기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데리고 왔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온갖 귀신이 들린 것처럼 경련하며 파리해져 가는 이 세상을 치유해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안 계신 사이에 아홉 제자들이 한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치유할 아무런 영적 능력도 발휘할 수 없음을 또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교만에 빠져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해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비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오셨을 때였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시빗거리가 되고 손가락질 당하는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진정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 사회의 질병을 치유하는 권능이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전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가르침에 충실한 제자들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이름 내기를 좋아하고 막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는 일에는 무관심했거나 실패했다면 그것을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실패와 수치와 당혹함 가운데 처해있던 제자들이 그 원인을 예수님께 여쭈었을 때 예수님의 간단명료한 대답이 “기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아니, 이 세상에서 한국교회만큼 기도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교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여기서 더 얼마나 기도하라는 거야?”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교회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기적적 성장의 힘은 새벽기도에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기도 그 자체가 무슨 마술적 힘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교회성장의 근원은 기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새벽기도를 그친 적이 있습니까? 개신교에 속한 모든 교회들이 가면 갈수록 더 하면 더 하지 덜 하지 않는 것이 기도인데 왜 개신교는 성장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눈에 띄게 감소세를 보이며 오히려 우리같이 새벽기도나 대규모 기도회 요란스럽게 안 하는 로마천주교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교회성장의 힘이 기도에 있다는 그동안의 확신은 너무나 단순하고 성급한 생각이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참된 교회성장의 힘이겠습니까?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기도를 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무엇이 바른 기도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무력한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만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기도 많이 한다는 자만심에만 가득 차있으며, 기도를 무조건 교회성장의 요술방망이로 여기는 한 한국교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로 주의 일에 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참된 기도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오직 우리의 참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의 일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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