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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외치는 자와 말하는 자여 외쳐라 (사 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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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와 말하는 자여 외쳐라 
본문 : 사 40:3~11

전쟁에서 승리한 대장군이 입성할 때 수많은 군중들 사이를 헤치며 먼저 다가오는 소식이 있으니 이는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승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따라서 한 국가, 마을, 가정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세상에 살던 그들에게 외치는 소리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수단이며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은 그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광야에는 너무나 적막하고 누구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어둠과 외로움만이 늘 황량한 바람과 같이 널 부러져 있습니다. 

이는 2700년 전의 한 이스라엘 어느 촌의 황량하고 고독한 저녁 어느 날이나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화려함 뒤에 언제나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가리어져 있는 한 여배우의 죽음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의 추악한 삶의 단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저녁의 화려한 간판 아래의 어느 뒷골목에 쓰러져 비싸게 돈을 주며 먹었던 술과 안주를 토악질 하며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흔치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늘 웃고 있지만 가식뿐인 세상 속에 어느 곳에도 진실은 있지 않기 때문에 진실이 없으니 모두들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인데, 어느 가수의 “내가 웃고 있는게 웃는게 아니야”라는 가사가 문득 생각납니다. 

탈출하고픈 삶의 고통 속에서 아무리 술을 퍼 마시고 또 담배를 피워대며 탈출을 시도하지만 마치 견고한 우리 속에 가둬져 있는 한 마리의 실험용 흰 쥐처럼 죽을 날만 기다리는 우울한 눈망울 속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는 시한부의 연속일 뿐입니다. 

외치지 않으면 어떻게 광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이제 개선한 대장군이 돌아와서 큰 승리에 대한 아름다운 소식으로 절망가운데 애타는 소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백성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께서 세상을 이겼노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절망에서 일어나서 소망의 꿈을 같이 꾸자고 말입니다.

어제 네이버의 인터넷 판에 보니 하루 동안 물에서 빠져 죽은 사람이 5명이나 되는데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하지만 대부분 자살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든 삶의 정황 속을 헤매면서 허덕이지 말라고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를 대속해주셨지만 결국 외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은 속절없이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야 하고 있습니다. 
시편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1. 아름다운 소리여 세상보다 좀더 다르게 외쳐야 듣습니다.
여호와의 대로를 평탄케 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대로 외치세요.

얼핏 보면 우리는 대로를 평탄케 하는 작업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 은혜는 우리를 위한 축복의 선언이며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선택이며, 아무나 이 평탄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들의 특권입니다.

한 10여년 전에 제부도에 가족끼리 놀러 갔었던적이 있었는데 그곳엔 촛불바위라는 곳이 있었는데, 정신 없이 굴을 따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가 점점 썰물이 밀려오는 것을 알려주는 종소리를 듣고 가족들과 같이 모두 그곳을 나왔지만 10여명의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며 소리를 질러 외쳤습니다. 

썰물이 오니 돌아오라고…그런데 왠 만큼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은 여기저기의 바닷물 소리와 사람들 떠드는 소리들이 제가 외처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변에 있는 깡통을 두드리면서 그들에게 알렸고 일부는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썰물이 그렇게 빨리 들어오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것을 시도하는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너무나 위험해 보여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 그들은 돌아갔고 119구조대의 보트가 구출해줬는데, 만일 제가 외쳐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적절한 곳에서의 외침은 이렇게 생명도 구원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구원의 종소리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심란하고 시끄러운 잡음 속에선 그냥 외처서는 들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달란트를 통해서 특성 있는 외침을 하여야 합니다.
마 3: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2000년 전에 세례 요한은 그때의 환경에 맞게 외쳤다면 지금은 우리의 환경에 맞게 현대인이 동화될 수 있는 대화의 방법을 찾아서 동일한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직장에서의 효과적인 외침을, 학생들은 학생대로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등을 활용하며, 주부는 주부대로 가정에서 말하는 자로, 사업자는 업자대로 사업장에서, 심지어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라도 항상 우린 외치는 자의 소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2. 어찌되었건 우리는 광야에서의 소리이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좀더 멋진 시스템의 교회의 건물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내 삶이 좀더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서 전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시작되면 등등 우린 많은 부분 이렇게 되면 이라는 환경의 상황이 되면 이란 말을 통해서 우리의 외치지 않음에 대하여서 나름대로 합리화 시키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릴 풍요로운 곳에서의 말하는 자와 외치는 자의 소리가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선언하셨습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 살아감의 환경전체를 우겨 싸서 도저히 미래가 보여지지 않는 상황에 놓여져 있다 하더라도 허울뿐인 이 육신의 질그릇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보석을 주셨으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6~10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2000년전 왜! 갈릴리 호수 근처의 베세다 한 촌의 어부였던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그를 제자로 삼으셨을까? 고전1:27이 정확한 답입니다.
고린도전서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우리교회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광야입니까?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우리 교회처럼 우겨 쌈이 되어 있는 교회도 많지 않을 것 이기 때문에 우린 광야의 소리가 될 수 있고 훗날 이곳에서의 울려 퍼져나갈 간증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작년 말에 백혈병소녀 송은빈양이 경남과학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이 인터넷기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는데 상위 1%의 우수한 성적을 얻은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 학교를 항암치료 때문에 고입검정고시를 보고 목숨 건 노력을 통해 이 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혈액 속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독한 항암제는 은빈양의 멀쩡한 세포까지 파괴하며, 항암제가 투여되기 시작한 뒤부터 식사만 하고 나면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모두 토했습니다.. 속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도 헛구역질을 했으며, 먹는 것이 고통스러워 나중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 했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 화장실에 가다가 병실 바닥에 쓰려져 얼굴과 팔꿈치에 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은빈양은 공부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토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로 돌아와 20~30분 숨을 고르고 난 뒤, "엄마, 책!"이라고 보챘다고 합니다.

부모가 맞벌이 해봐야 월 150만원 수입에 지금 것 총 5000만원의 병원비를 낼 수 없는 딱한 사정에 대해 기사가 나간 후 많은 독지가들이 도움의 손길이 쇄도 했다고 합니다.

이토록 고난을 이기는 것은 세상의 이야기라도 아름다운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의 아름다운 이야기 이겠습니까? 
 
이렇듯 백혈병에 걸려 신음하고 허덕이는 송은빈 양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속한 영태제일교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린 무사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서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아름다운 임무를 모두 마쳐서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차라리 우리의 환경이 척박하니 “광야”라는 성경적인 단어와 너무나 잘 맞아서 좋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마무리하고 이루게 되면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많은 신앙의 후배들에게 귀한 간증으로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되게 될 하나의 신앙인들 사이의 전설이 되어서 마음 깊이 말하는 자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될 것 아닙니까? 또한 말하는 자의 입에서 말할 소리도 많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결어
주께서는 광야의 외치는, 말하는 자의 외치는 몸부림을 너무나 잘 아시고 또한 같이 힘들어 하시며, 나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어떤 때는 이유 없는 고난으로 미치도록 고통스러울 수 있고 또 어는 때는 광풍으로 인해 모래바람이 앞을 가려서 전혀 길이 보여지지 않을 때도 있고 또 먹을 물과 양식이 없어서 소리를 내고 싶어도 소리가 안 나올 때도 있지만 헤피엔딩이라는 결론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린 오늘도 아들로서의 소임을 잘 감당하고 외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파주 영태제일교회 이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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