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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디옥교회처럼 (행 1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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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처럼 (행 11:19~30)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 부흥을 이어간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한 단계 뛰어넘고 선교의 지평을 온 세계로 열어준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저는 오늘 안디옥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배우고 따라가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위기 가운데 세워진 교회입니다. 
“스테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라는 말씀으로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에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박해와 환란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잃는 고난이 닥쳐온 것입니다. 스테반 집사의 죽음은 많은 성도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피해 살 길을 찾아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하나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정든 고향과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안에 믿음이 있는가?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과연 우리들 안에 이런 믿음이 있을까? 내 안에 이 믿음이 있는가? 
나의 믿음이 내가 가진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참 위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전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이 믿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세어진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초대교회 성도들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주의 손이 여러분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의 손이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타협하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용기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의 손이 붙들어 주시고 함께하시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오직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교회는 하나님을 높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의 손이 초대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교회 가운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하시는 교회가 될 때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사람이 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므로 부흥을 이루게 하시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편견을 넘어선 교회였습니다. 

11장에는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들에게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따지듯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할례자로서 어찌 무할례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함께하였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아직 넘어서지 못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유대인들이 가진 우월의식이며 영적 편견이었습니다. 지역적인 감정의 깊은 골들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렸던 초대교회 위기의 원인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넘지 못하는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골이 깊은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로 편견을 넘어선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전도를 하였는데 대부분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편견에 붙들리지 않은 건강한 믿음의 성도들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였고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인 것이지요.

20절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핼라인에게도 말하여 주예수를 전파하니”

교회는 잘못된 전통보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우리의 편견과 잘못된 감정들이 하나님을 막는 일이 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기에 성도들은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며 행여 하나님 보다 앞서거나 하나님의 일을 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날마다 부흥하였고 그 부흥의 소식은 예루살렘교회에 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의 사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자신의 사역을 돕기 위해 사울을 데려와서 함께 일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순종을 잘한 성도들입니다. 보십시오. 어떤 편견도 없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바나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지도력을 따라 순종했습니다. 또한 아직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 사울을 데려왔을 때 그들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함께 사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는 놀랍게 부흥했고 바나바와 사울은 훌륭한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셨을 때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쁨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며 선교를 위한 적극적인 물질과 기도의 후원자들이 되어 주었습니다.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원석이 순종이라는 덕목을 갖추게 되면 참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순종을 통과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은 바로 순종하는 믿음이 산 믿음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신뢰하지 못하면 결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뢰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안디옥 교회는 좋은 일꾼들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의 일꾼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한 바나바와 사울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같은 안디옥의 좋은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헌신적이고 순종하며 경건과 능력이 많은 일꾼들이었습니다. 

좋은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닙니다. 좋은 일꾼들이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일꾼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는 일꾼은 적고 말꾼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말꾼 되지 말고 일꾼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일꾼이 세워지면 교회는 날마다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 좋은 일꾼입니다. 그런 일꾼들이 많이 있으면 교회에 위기가 와도 오히려 더 좋은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가지고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좋은 일꾼의 예를 바나바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 되어야 합니다. 못된 사람 되면 안 됩니다. 교회에도 못된 사람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한 도구로 쓰십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셔도 악한 도구로 쓰는 것입니다. 쓰임 받는 것은 같지만 그 용도가 다르니 여러분들은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착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좋은 일꾼은 재능과 세상적인 것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이 최고의 조건입니다. 조금 부족해도 됩니다. 조금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받으시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행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좋은 일꾼은 자기의 헌신을 담는 사람입니다. 말꾼은 말만 앞세우지만 일꾼은 자기의 땀을 앞세웁니다. 자기의 헌신을 담지 못하면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진정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세워준 사람입니다. 사울의 전력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서려고 하면 안됩니다. 좋은 일꾼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일꾼의 최고의 조건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좋은 일꾼입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순종한 사람입니다. 사도들이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낼 때 순종하며 기꺼이 섬겼습니다. 
바나바는 성령의 뜻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지로 보낼 때 그동안 정들고 땀 흘렸던 사랑하는 안디옥교회와 성도들을 떠나는 순종을 했습니다. 

며칠 전 집사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 집사님이 아버지 장로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장로님이 돌아가셨을 때 함께 섬기시던 목사님이 장례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장로님의 입에서 ‘아니오’ 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셨다고. 항상 ‘예’ 만하시던 장로님이셨다는 말씀하셨노라고...    지금도 목사님의 그 말씀이 기억난다고 하면서 그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 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감사했습니다. 
목사님에게 부족함이 없었겠습니까? ‘아니오’ 할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장로님은 목사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신 것이지요. 
여러분, 순종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항상 다짐하십시오. 나는 항상 순종하며 살리라.  


다섯째, 안디옥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교회였습니다. 

26절 후반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부른 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곧 세상이 인정해준 성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들이 믿음으로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쉽게 행복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도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행복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목적이 행복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닙니다. 

물론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해집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며 추구해야 할 바가 아닙니다. 
진정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는 거룩입니다. 거룩이 믿음으로 사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성결 된 삶입니다. 성결 된 삶이 이루어지면 그곳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해지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거룩을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성결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거룩에서 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까지 값싼 행복을 위해서 잘못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성도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이 없는 값싼 행복을 구하는 교회들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거룩이 없는 행복을 구하는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은 세상 사람들이 복음으로 올 수 있는 길을 막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요 거룩이라는 것을. 
진정한 가치는 거룩한 삶에 있다는 것을...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도 교회에도 놀라운 부흥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디옥교회는 긍휼한 마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힘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성도에게는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긍휼한 마음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29-30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저에게 있는 비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아 그 복을 누리고 나눈다는 비전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로 부르시고 축복하신 우리들을 통해 계속 하나님의 복이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제가 좋아 하는 그림은 담장 너머로 뻗은 가지가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긍휼한 마음을 가진 교회입니다. 

우물은 계속 물을 퍼 올려야 맑은 생수가 계속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양은 털을 깎아 주어야 계속 좋은 털이 자라는 것입니다. 물은 계속 흘려 보내야 새 물이 들어오고 살아 있는 강이 되는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교회는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찾아 올 수 있는 담장을 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긍휼한 마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섬기는 교회가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고 힘을 다해 나누어주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가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뛰어 넘어 초대교회 놀라운 부흥을 이룩한 교회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안디옥 교회 같은 교회가 꼭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요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바로 안디옥 교회의 성도같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를 안디옥 교회처럼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교회에 심으신 목적을 바르게 깨닫고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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