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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과 환희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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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환희 (시 126:1~6)


만약에 우리가 고난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적인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사람의 신앙생활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을 할 것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을 극복하고 신앙의 기쁨을 누리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감사와 기쁨은 성도들의 신앙의 척도인 것이다. 

한편 성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차지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성경은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1. 고난에서 해방

(시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격는 최대의 비극과 수치는 그들이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는 듯이 보였고, 그들은 수치와 천대 속에서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었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들이 풀려 날 것에 대한 희망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포로에서 이끌어내어 마침내 구원을 베푸신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마치 꿈을 꾸는 듯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귀향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만 가능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한 웃음과 찬양이 우러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체험하며 그것을 누리며 즐기는 때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이 어두움과 비참함으로 드리워져 있고 삶이 피폐하고 혀에서 악한 말과 거짓말이 나온다면, 이는 진정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인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예)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믿는다는 말 뿐 인 실제적인 믿음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희망도 없었고 기쁨도 없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 몇 사람이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 번연은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엎드려 열심히 기도했으며 새 사람이 되는 확실한 경험을 하였다. 그 기쁨에서부터 위대한 신앙의 문학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놀라운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로 말미암아 웃음과 찬양이 그 입에 가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목격한 이방인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예) 서점 점원으로 출발,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된 워너 메이커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특히 그는 믿음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며 생활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83세인 그가 사업가로 60주년을 맞았을 때 한 기자가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성공할 수 있게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워너 메이커는 건강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하나님을 믿으며 즐겁게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는 사람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보여 주며 칭찬 받는 일은 어떤 면에서 당연할지 몰라도 이방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더욱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된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예) 교회의 선교와 구제, 사회봉사와 성도의 모범된 삶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실례가 된다. 


2. 회복의 노래

(시 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성도들이 기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성도들은 그 삶이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고 활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화평을 도모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대관식 때에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연주되었다. 메시아의 할렐루야 합창 때에는 모두가 일어서는 것이 관례였지만, 왕은 대관식에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왕실의 규례였다. 드디어 할렐루야 합창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기립하였다. 장엄한 합창을 들으며 여왕은 일어서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받았지만 왕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참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왕의 왕, 만유의 주”가 불려 질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후일 빅토리아 여왕은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지상의 왕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땅의 평화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높일 때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성도들의 기쁨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느냐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삶의 기쁨은 철저히 하나님과 그가 행하신 놀랍고 신비하신 일, 곧 그의 백성 된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는 구속의 은총에 근거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일이었고 그 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이 되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람들은 모든 환경과 사물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신의 능력 한계를 넘어 선 일일 경우에는 단념해 버리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이적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며 그 이상의 것들을 보시며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은 포로 된 자들을 일으켜서 시냇물이 흐르듯 번성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와 참 행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3. 뿌리는 자의 환희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한편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삶에서 눈물과 아픔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행복해 지기를 위해서 땀을 흘려 일하며 애쓰는 것은 큰 기쁨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직 기쁨의 그 날이 오기를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씨를 뿌릴 때에는 근심의 때이나 씨를 뿌리는 자는 추수 때에 풍성한 수확을 올리게 된다. 마찬 가지로 포로가 백성들에게는 많은 시련을 당했지만 그들 앞에는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과 괴로움, 시련과 고난 낙심과 절망감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자는 결코 하늘의 상급을 잃지 않는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행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기 때문에 그저 우연히 얻어지거나 요행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통회하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감수하고 노력하는 수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참된 행복은 눈물을 흘려야 하며, 씨를 뿌려야 하며, 애써 가꾸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노동의 신선함과 부지런함에 대하여 깊이 강조해 주고 있다.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예) 유럽이나 구미를 가보면, 잘 정돈된 집이나 길거리 및 삼림은 모두가 가꾸고 노력한 대가이다. 미국의 도로망, 철도망(앰트릭), 고속도로와 캘리포니아의 평원, 독일의 아우토반 등은 모두가 인간의 노력의 결실이다. 

참된 기쁨과 행복은 요행이나 행운과는 달라서 그냥 평안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려야 하고 그것을 잘 가꾸어야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괴테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인생을 알 수 없다.” 

예)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가를 교훈 해주고 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성경에 ‘부지런’이라는 단어는 37번, ‘열심’은 28번씩이나 있다. 이는 신앙생활이나 삶에서 우리가 얼마나 근면하며 살아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고 있다.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결 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대사를 행하신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이 일을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의 암흑의 고통을 씻어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며, 더 큰 기도의 응답을 얻고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된 응답을 얻기 위하여 힘써 주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눈물을 흐리며 씨를 뿌리는 자의 심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보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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