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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밀하게 기도하라 (마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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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기도하라 (마 6:5~8)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마 기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의 어느 나라 교회보다도 기도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였고, 또한 아직까지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드려지는 새벽기도회나 금요 심야 기도회를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세계에서 우리나라 같이 기도원이 많은 나라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한국 교회에 기복적인 잘못된 기도의 부작용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교회의 기도에 대한 열심과 열정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기독교 2천년 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복음의 확장을 가져온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기도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40일 금식기도로 시작하셨고, 공생애를 사시면서 그 바쁜 사역과 삶 가운데서도 규칙적으로 새벽과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롬 8:34절을 보면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등 기도에 대한 명령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기도에 대한 명령이 얼마나 강력한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말이기는 하지만,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참으로 잘 표현해 주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호흡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5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위선적인 기도를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주님은 큰 거리나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서서 기도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그렇게 꾸며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외식이라고 하는 단어는 본래 연극배우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간혹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고, 불신앙인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진짜 목회자보다도 더 경건하게 보이고 기도도 잘하며 설교도 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와 행동은 연기 이상도 아니요 이하도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기독교인들로 보일 수 있기 위해 연기를 한 것뿐입니다. 

주님이 위선자들로 부른 바리새인들의 기도 행위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정한 시간에 정한 내용과 자세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와 경건성을 꾸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연기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연극배우와 같은 사람의 기도를 외면하십니다. 아니 그 사람 자체를 외면하십니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께 가증한 자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면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진실한 기도 자세를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즉 은밀하게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골방 기도란 어떤 것입니까? 

1. 골방 기도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응답받는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것이지, 남에게 과시한다든지 칭찬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대인들은 기도를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3시, 6시, 9시는 공식적인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유대인들은 어디 있든지 기도를 해야 했는데, 외식하는 자들은 그 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회당이나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기 위함에서였습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신앙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면, 기도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중언부언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서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도들도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한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좀더 집중력 있게 온전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골방 기도는 비밀을 나누는 기도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골방이란 일차적인 뜻은 식료품 등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를 말합니다. 골방을 ‘내실’ 또는 ‘침실’로 번역하더라도 기도의 장소가 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지만, ‘창고’라 번역하면 그러한 의미는 더욱 잘 드러납니다. 당시 피지배국민으로서 궁핍함에 시달리던 유대인은, 가족들을 위하여 아무도 모르는 창고에 식량을 숨겨 두었고, 식량을 가지러 들어갈 때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극도로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에게 있어서 식량 창고는 생명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비밀 장소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문을 볼 때 예수께서 은밀한 기도를 얼마나 강하게 강조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명령이 개인적인 기도만이 중요하고, 공적인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이는 단지 외식하는 자의 기도처럼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골방은 은밀하여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기가 좋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듣는 사람이 없으니 허심탄회하게 비밀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래야 합니다. 숨김없이 자기 죄와 마음을 다 털어놓아야 하나님께 열납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3. 골방 기도는 진실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7-8절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반복 기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세 차례 반복하셨습니다. 또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지 말고 짧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방인들이 왜 중언부언하고 말을 많이 했습니까? 그들은 신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줄 것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알고 중언부언하였습니다. 여기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말을 많이 하다’ ‘생각 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갈멜 산상에서 바알 숭배자들이 하였던 기도나, 에베소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고함을 질렀던 아데미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언부언 하는 기도를 오늘날 신자들의 기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식 기도에서 자신의 기도가 조금 짧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했던 말을 또 하고 여러 번 반복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기도의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기도이니 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시 145:18-19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며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골방 기도는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 진실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미국 위스컨신 주의 밀워키 시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밀워키 시립병원 입구에 생후 6개월 정도로 보이는 유아 하나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소경이었고, 뇌성 소아마비까지 겹친 비참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이 불운한 생명을 버렸던 것입니다. 당황한 병원 당국은 긴 토론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얼마 전에 은퇴한 ‘메이 렘키’ 라는 간호사에게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위탁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장은 즉시 메이 부인에게 전화를 걸고 죽어가는 어린 생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시 52세의 은퇴 간호사로 진실한 신앙인이었던 메이 부인은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내 생명 다할 때까지 그 아이를 돌보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죽어가는 어린 아기를 자기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 생명을 보는 순간 그녀는 너무도 비참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어린 생명의 비극 앞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우유를 주어도 빨아먹을 수 있는 본능마저 없는 이 불쌍한 생명을 두고, 메이 부인은 뺨에 얼굴을 비벼주고, 다리, 발, 손가락을 수없이 만져주는 마사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생명의 소생을 위한 메이 부인의 초인간적인 노력과 헌신은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레슬리’ 라는 이름을 붙인 어린 식물인간은 몇 년 동안 단 한 번의 움직임도, 말 한 마디도, 웃음이나 눈물조차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지치기 시작한 메이 부인은, 드디어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흐르는 자신의 뺨에 레슬리의 손을 가져다 대고 기도 했습니다. “주님! 제가 레슬리를 찾은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도 오랜 기간의 고통의 세월인지라, 기도라기보다는 항의 어린 독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레슬리를 껴안고 걸음마 연습에, 온갖 재활 요법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2년 5년 10년 15년 8년을 계속했습니다. 18년 동안이나 옆에서 거들고 도와주던 남편과 주변의 친구와 친척들 모두가 일제히 “이제는 레슬리를 포기하라”고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매이 부인의 나이는 이미 70세였습니다. 

메이 부인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은 레슬리를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또 다시 이렇게 절규하듯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생명과 사랑의 하나님! 성경은 수많은 기적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어찌하여 이 아이를 이토록 오랫동안 버리십니까? 기적을 주소서. 이 아이가 정신적 감옥을 깨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 주옵소서” 너무나 힘들고, 지칠 대로 지친 가운데 한 이 기도는 사실 그녀가 하나님 앞에 보내는 마지막 통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갑자기 레슬리의 엄지손가락이 침대 옆에 있는 기타 줄을 퉁겼습니다. 18년만의 최초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그 순간 메이 부인의 머리에는 “음악이다 음악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스쳐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과 메이 부인은 레슬리 방에 피아노를 들여놓고 전축과 라디오를 번갈아 큰 소리로 틀어, 온통 음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레슬리의 손을 끌어당겨 피아노 연습을 유도했으나, 그것은 잠시 일뿐! 레슬리는 또 다시 응답 없는 옛 식물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난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정확하게 1971년 추운 겨울 어느 날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기적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새벽 3시 갑자기 들려오는 큰 음악 소리에 메이 부인은 잠을 깨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새벽에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바로 레슬리의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메이 부인과 그녀의 남편은 떨리는 가슴으로 레슬리의 방을 열어 보았습니다. 설마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18년 동안의 식물인간이 벌떡 일어나 피아노를 치고 있는 이 기적! 이 기적을 보는 순간, 메이 부인은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레슬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기적의 순간부터 레슬리는 눈물과 말로 생명의 표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청이 어찌나 큰지, 그의 노래 소리는 그 동네 멀리까지 울려나갔습니다. 마침내 미국 전역에 이 일이 알려지면서, 레슬리는 TV 방송에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정확히 38년 전에 일어났던 감동적인 실화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어렵고 힘든 문제가 있으면, 이 메이 부인처럼 진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 때문에 억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결국 해결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감사와 찬송의 기도를 먼저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기쁨과 감사가 내 속에서 울려날 때 내가 변화되고, 내가 변화될 때 내 문제도 능히 해결될 줄 믿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기도할 때 감사기도를 해야 기도가 응답된다는 설교를 듣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매일 같이 술이 만취가 되어 귀가하는 술고래였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듣는 가운데 나도 내 남편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은 인사불성이 되어서 집에 들어왔기에 겨우 끌어다 방에 눕혔습니다. 이 집사님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려니, 자기 신세가 참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렇게 고생하나?” “믿지 않은 자와는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겨서 내가 저주를 받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감사기도를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설교 말씀이 떠오르는데, 문제는 감사할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감사의 조건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남편은 술고래가 되어서 자고 있는데, 그래도 나는 과부가 아니니 감사합니다!” 자기가 생각해보아도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감사할 조건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요즘 술 먹고 취한 사람들 퍽치기를 당하고 소매치기를 당한다는데, 그래도 우리 남편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집에 잘 들어와 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술 마시다가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서 이혼하고 집이 풍비박산이 나버리던데, 그래도 우리 남편은 딴 생각을 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생가해보니 정말로 만일에 남편이 그리되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고,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저에게 이렇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기도를 계속 하다보니까, 마음속에 진짜 기쁨과 감사와 콧노래 찬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쿨쿨 자다가 갈증 때문에 일어난 남편이 보니까, 아내가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게 너무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당신 약을 잘못 먹었어! 왜 그래?” “여보! 나는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그래요.” 그러면서 방금 전에 남편에 대한 감사의 조건들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평소 같으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고 바가지를 긁고 자기를 비웃고 깔볼 텐데, 이렇게 자기를 인정해 주고 또 자기랑 사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 모습에 남편이 그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아내 때문에, 이 남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보, 내가 예수 믿는 게 당신 소원이라면, 나도 오늘부터 예수 믿어 줄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입술에서 감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제대로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질병이 감기에서 시작되듯이 모든 신앙의 문제는 기도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고장이 나면, 우리의 영혼에 악마의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결국 병들게 마련입니다. 감기가 발전해서 폐렴이 되고 폐렴이 발전해서 폐암까지 되듯이, 우리 기도의 부재에서 영적인 침체가 오고, 결국에는 영적인 패배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자주 범합니다. 기도의 거장 E. M 바운즈는 “기도는 한편 구석으로 밀어 던질 보잘것없는 의무도, 살아가면서 틈틈이 생기는 조각 시간에 간단히 해치우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가장 좋은 시간에, 우리의 황금 시간에, 우리의 힘을 다 들여야 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결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만 드리는 골방 기도, 은밀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입술에서 나오는 말 이상입니다. 기도는 심령의 갈망이 말로 표현된 것입니다. 존 번연은 “기도할 때는 마음 없는 말보다, 말 없는 마음이 낫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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