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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라 (마 26: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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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라 (마 26:69~75)
  

우리 인생은 크로스컨트리 트랙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나요? 크로스컨트리라는 경기 말입니다. 
근대 5종 경기 중의 하나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이나 산을 넘어 돌아오는 경기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고랑과 깊이 팬 도랑, 수많은 장애물과 언덕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통과하다보면, 급커브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점프를 해야만 넘어갈 수 있는 길도 만납니다.
과정 중에는 진흙탕 길도 있고, 돌작밭 길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처박히기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평탄한 길만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를 좌충우돌하게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때론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질병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무기력함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원망해 보기도 합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엄청난 시련을 주십니까?”
마치 나만 이런 어려운 곤경에 처한 것처럼 좌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분들도 알고 보면,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승리한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실패한다는 것 자체보다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사도 베드로는 좋은 예가 됩니다. 

1. 실패로부터 배우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놀라운 칭찬을 들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러면서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바위를 뜻하는 베드로로 바꿔주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도 해 주셨습니다. 
또한 천국 열쇠를 주어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얼마나 의기양양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주님께서는 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26:31)
그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
다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34)
베드로는 호언장담을 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5)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그렇게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되었죠? 

예수님은 붙잡혔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갔습니다.(57)
큰소리치던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 갑니다.(58)
예수님은 안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깥뜰에 앉아 있습니다.(69)
한 여종이 와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자
70절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하며

얼마 후에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71)
72절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73)
74절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그렇게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실패하는 장면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베드로의 통곡에 희망의 싹이 있습니다. 
그는 실패의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바로 이 회개에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다음에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회개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 물러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모두가 다 이제 끝장났다고 할 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겸손히 실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실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잠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내가 스스로 실수를 인정할 때 다시 기회를 얻게 됩니다. 
베드로가 교만할 때는 하나님이 그를 쓰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음에 통회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그를 쓰십니다. 
예수님은 마5:4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통이 복이 되는 것은 죄를 뉘우치고 새롭게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죄책감을 버려야 합니다. 

혹시 실수하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과거의 죄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에 머물러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해갈 수 없다면 그게 문제입니다.
미국 모자이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어윈 맥머너스 목사님이 쓴 책 중에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운동력](Unstoppable Force)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그의 딸이 어릴 때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차에 치어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사고였습니다. 
큰 사고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죽지 않고 살게 되었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가 건널목에서 파란 신호가 되었는데도 
건너지를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고를 당할까봐 겁이 나서.
지금은 충분히 안전한데도 겁을 내고 못 건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전에 사고를 당했더라도 이제 다시 건널목을 건널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에 겪었던 사고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책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통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통회했다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미래가 안 보인다고 생각하시나요?
과거에 매여 있으면 과거를 넘어서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었으면 이제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앞을 향해 전진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에 시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천사가 베드로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막16:7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베드로는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시고 이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일단 자신의 실패로부터 배웠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눅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날 ‘스스로 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서적들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기 원한다면 스스로에게서 삶의 목적을 찾으라 합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라고 말하며, 자신의 욕망대로 살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라고 조언해 줍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결코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왜 만드셨는지 목적을 바로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을 따라갈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가 삶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부인하는 법을 배웠을 때, 그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매일같이 이기적인 자아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생을 살려는 노력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매일매일 “나는 할 수 없다”라고 깨닫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어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될 수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제 노력으로 하려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대답해 주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이제 내가 너의 삶에 관여하여 내 능력을 부어줄 수 있겠구나. 
보거라, 이제 매일매일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아에 대해 죽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여기 제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제 꿈을 드립니다. 
십자가에 제 꿈을 못 박습니다. 
제 꿈을 가져가셔서, 그 꿈 안에 담긴 제 자아를 제거해 주시고, 
제 이기심을 제거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다시금 제게 주시되 ‘당신의 꿈’으로 돌려주십시오. 
주님이 제게 필요한 최상의 것을 아시니, 그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께 저의 시간을 드립니다. 시간은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제 시간을 주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내길 원합니다. 
저는 제 시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하루 어떤 벽에 부딪힌다면 

저는 그것들이 주님께로부터 왔다고 믿겠습니다. 
그런 후 저는 저의 시간과 재정을 바로잡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도, 계획도, 관계도, 재정도 십자가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때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으로 살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계획하셨고, 디자인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여러분에게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신뢰는 그분을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여러분이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야 그분을 신뢰하게 되고,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고, 
하루에 3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능력 있게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훨씬 더 큰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가 교만하면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시고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할 때에 
그 무거운 오토바이를 자신의 힘으로 끌고 간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시동을 걸고 엔진의 힘을 이용한다면 
얼마나 능력 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주가 되겠습니까? 
자신의 힘과 재능, 노력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자신의 힘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엎드리는 사람은
엔진의 힘을 빌어 경주를 하는 자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능력 있고, 박진감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실패했더라도, 좌절하지 마시고
이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덧입고
힘 있게 다시 일어서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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