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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성 (수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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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성 (수 6:1~11)
 

어떤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그 목사님은 교회학교를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때마침 선생님 한 분이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분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중 한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네가 아는 대로 대답해 보아라.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느냐?" 그러자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저는 정말로 무너뜨리지 않았어요."

뜻밖의 대답에 목사님은 놀랐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반 선생님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 아이는 틀림없는 아이입니다. 절대로 거짓말할 아이가 아닙니다. 그 아이가 자신이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 아이는 무너뜨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장로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계면쩍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되어진 일이라면 결국 교회가 책임을 져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오늘날의 교인들의 성경 지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풍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여리고 성을 볼 수 있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동안 소문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 거대한 괴물 같은 성이 그들의 눈앞에 들어왔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여리고성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1:28절에 보면,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고 말합니다. 신3:5절에도 보면, 모든 성읍에 높은 성벽이 둘러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리고 성은 두 겹으로 쌓여있어서 성벽의 꼭대기에는 두 대의 마차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0여 년 전 정탐꾼들이 말했던 대로 여리고 성안에 사는 백성은 크고 장대해서, 현실적으로도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이 보잘 것 없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말씀합니다. 성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이 막힌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확인할 때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도무지 우리 능력이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정말 ‘산 넘어 산’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에서 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그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전쟁의 승패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첫째는 전투력이고 또 하나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변변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탁월한 용사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단지 성을 돌았을 뿐이었고, 마지막에 외쳤고, 나팔을 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삶의 한 복판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인생의 여리고가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길목에서 여리고 같은 문제를 만날 때면 두려워집니다. 고통스러워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게 됩니다. 이 아침! 여러분의 삶을 가로 막는 인생의 여리고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주저앉아 있다면 우리 다시 일어나야하지 않습니까? 이 난공불락의 여리고가 무너진 것에 대하여 히11:30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그 이유는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앞에, 감당하기 어렵고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도 반드시 나아가야 할 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첫째 생각의 기초를 하나님 주신 약속에 두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에 도전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 주신 약속의 말씀에 자신들의 생각을 맞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6장 2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두 가지입니다.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였다는 것과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여기 2절에 '네 손에 붙였으니'에 ‘붙였으니’ 라는 말은 ‘물건을 받을 사람에게 이미 준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 양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앞에 ‘보라’ 즉, ‘레에’는 ‘주목하다’로 특별히 강조하고 분명하게 말씀 주심을 의미합니다. 이 약속에 생각을 맞출 때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손에 여리고 성이 달렸고, 여리고 성은 반드시 무너지지라는 약속을 믿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 약속을 가진 백성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가나안이 아니라 바로 불신앙이라 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우리 생각의 근거는 현실에 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포기합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이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고 계속해서 초점을 맞춘다면 두려움도 불안도 없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자신들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약속하신 땅을 향해 희망의 전진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여리고를 무너뜨린 믿음은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 순종에 두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순종했던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다같이 3절부터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가만히 들으면 꼭 아이들 장난과 같은 명령입니다. 무슨 칼이나 창이나 화살과 같은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그 성을 한번씩 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다른 날과 달리, 일곱 번 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작전 명령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다면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하여 ‘바보들의 행진’과 같다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봐 두려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순종할 때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절박한 순간에 무모하리만큼 주님께서 이런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히브리서에는 여리고가 무너진 것이 바로 저들의 믿음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것은 영적이고 내면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봐서는 모릅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좋은 믿음인지, 참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 얼른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려면 얼마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보는 것은 실제적이요, 외적이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의 믿음이 진짜다.' 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좋은 과실이 열리는 나무를 보고 좋은 나무라고 하듯이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의 믿음을 보고 좋은 믿음, 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잘못 믿는 사람입니다. 순종합니까?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롬16:26절을 보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는 목적이 분명히 모든 민족으로 믿게 하고 순종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기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도록 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케 하기 위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은 떼 놓으면 안 됩니다.

외국의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참 낯부끄러운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데니스 레인과 같은 사람은 10여 년 동안 우리 한국을 드나들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국 교회의 장점이 두 가지 있다. 뜨거운 기도와 헌신이다. 그것은 내가 인정해준다. 그러나 말씀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면서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비어있다.' 얼마나 낯부끄러운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이 말을 바꾸면 순종이 빠져있는 신앙생활에 열을 올린다는 말입니다. 이게 한국교회라는 것입니다. 순종이 빠져있는 신앙생활에 열을 올린다면 이런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순종 안 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들으실까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헌신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사야서 1장을 돌아가서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안 받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존재로 보시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있어서 순종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무언가를 우리가 믿는다면 그 믿음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습니까? 믿으면 그 믿음이 진짜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는 무엇이 따라가야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전혀 그 믿음의 어떤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의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위대한 신학자 본 회퍼는 "믿는 자는 순종하며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바퀴 돌고 왔을 때에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13번을 다 돌고 나서야 성은 무너졌습니다. 끝까지 온전한 순종이 있을 때 하나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여러분! 성을 7번 돌았다고 무너집니까? 7번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지식이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순종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한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순종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온전한 순종이요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순종하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이성이나 지식과 지혜보다 하나님의 명령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롭고 정확합니다. 때로는 내 이성과 반대되더라도 말씀대로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열심을 내지만 삶의 변화가 없고,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구원의 즐거움이 없다면 순종부분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이들이 여리고를 돌때, 우리에게 아주 톡특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10절 말씀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하고”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을 요구하십니다. 왜 침묵하라고 했을까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현실과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 이해되지 않고 간격이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항상 그 공간을 메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은 불평과 원망의 역사였고, 그들의 말대로 멸망한 역사였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는 정말 난감하고 황당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을 기적으로 이끌어 오시고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다 할지라도, 여리고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제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입장에서 말하기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불평과 원망과 의심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기억하지 못하고 현실의 어려움 앞에 다시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4장 28절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호수아와 지금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불평하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말처럼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불평 불만하는 백성의 특징을 잘 알기에 여호수아는 침묵하도록 하였습니다.

독수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두루미라고 합니다. 독수리가 두루미를 먹이 감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두루미를 사냥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루미는 떠들기를 좋아하는 새입니다. 평소에 땅에 앉아 있을 때에도 재잘거리며 잘 떠들고, 공중을 날 때에는 뭐, 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때문에 독수리는 아주 멀리에서도 두루미가 떠드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떠드는 소리를 내는 두루미를 쉽게 찾아내게 되고 두루미는 독수리의 훌륭한 먹이 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두루미가 떠드는 소리는 마치 ‘나 여기 있으니 나 잡아 잡수시오’하는 말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류학자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두루미들은 모두가 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때에는 입안에 가득할 정도로 돌을 입에 물고 떠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침묵만이 자신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두루미가 경험을 통해서 터득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모습은 두루미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조그만 일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광야 길에서 불평의 언어, 부정적 언어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말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침묵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를 아프게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해 CBS 방송의 유명한 뉴스 진행자 댄 래더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방송국 스튜디오를 찾은 마더 테레사에게 앵커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듣습니다." 예상 밖의 대답을 들은 앵커는 당황해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때 마더 테레사 수녀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대답했습니다. "그분도 듣지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따에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침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먼저 너무 많은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일수록 떠들지 말고 조용히 침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났을 때 모세를 통해서 들려준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출 14:13절에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는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용히 침묵해야 나팔소리를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법입니다.

얼마 전에 한 일간지에 인생의 여리고를 만난 한 분이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李羲大·56·외과) 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0여 년간 암 치료를 하던 암 전문의입니다.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이지만 그에게도 암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2003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대장을 절반 잘라내었고 그 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간과 왼쪽 골반으로 번져 흔히 말하는 말기인 4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암은 집요해서 모두 11번 재발했습니다. 간과 골반 뼈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5번 받았고, 다섯 번의 고강도 방사선 치료도 받았으며 3~4개월씩 계속되는 항암치료도 두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모든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죠. 그 고행을 이기면 예전보다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희망이 나를 이렇게 버티게 해줬지요."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그는 골반 뼈 전이 암 치료 후유증으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 걷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매주 2~4개의 유방암 수술을 집도하고 있습니다. 암을 고치는 의사가 암 환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암 환자들이 그를 찾습니다. 상당수가 암이 재발하고 폐나 뼈에 전이된 환자들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뭘 그런 것 같고 그렇게 시무룩하냐"는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저는 암 환자들에게 치료법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절대 절망해선 안 된다고 말하죠. 두려움이 골수(骨髓)를 녹여서 면역력을 떨어뜨리거든요." 그는 매주 목요일 저녁 병원 외래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예배시간을 가집니다. 매주 40~50명의 환자들이 모이지만 단순한 종교행사로 그치지 않고 암 투병에 대한 요령도 알려주고 질문도 받는 강좌성격의 자리입니다. 여기에 다. 환자들에게 투병 요령을 알려주겠다는 뜻에서 자신의 투병기를 그의 이름을 따 '희대의 소망'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갖는 절망 때문에 죽는 거죠. 저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고, 가족과의 정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죠." "사실 저도 괴로울 때가 있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나아서 행복해지는 꿈을 꾸고 그것을 미리 당겨다 갖다 놓습니다. 미래의 기쁨을 빌려와서 지금 누리는 거죠." "암은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틈을 타서 암 세포는 자랍니다. 항상 즐겁고,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세요. 저를 보세요. 암 4기 상태로 6년 동안 일할 거 다하면서 잘 살지 않습니까. 새로운 암 5기죠. 희망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까?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절망에 처했습니까? 그렇다면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분의 음성 속에 여러분의 살길이 있습니다. 절망을 헤치고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말이나 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분명히 가야할 길이며 해결되어야 할 것인데 나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해결하지 못 할, 그래서 포기해야만 하는 크고 장대한 여리고를 보고 계십니까? 이 자리에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 때문에, 넘어야 하지만 넘지 못하는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여리고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여리고는 분명히, 분명히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내가 무너뜨리지 못하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십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으신 하나님께 순종하되 온전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문제 앞에서 야단법석을 떨기보다 침묵하며 하나님께 일하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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