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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함이 있는 믿음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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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있는 믿음 (눅 17:11~19)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들 동감을 합니다. 왜냐하면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 믿음의 영역에서는 좀 다릅니다. 생각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자세요, 주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 지역과 갈릴리 지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소리를 지릅니다. 문둥병자들은 사람들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를 못하고 멀리서 소리를 친 것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은 알지 못했으나 병자들을 고치신 소문은 듣고 알고 있었던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제사장들에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하십니다. 당시에 문둥병의 발병 여부, 문둥병의 치유 여부 등은 제사장이 관찰하고 조사해서 결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중에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4절을 볼까요/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만일 문둥병자들이 깨끗함을 받고 가겠다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치유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온통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으로 행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 애굽 왕 바로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너라. 요단을 건너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라.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행동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이란 마음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진정한 양심도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 속에 머물러 있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이렇게 행함이 무엇도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수없이 말씀하고 있고 우리들도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제거함으로 행함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첫 번째 요인은 '나의 현재 상황'입니다.
내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행함을 보이기에는 즉 행동하기에는 열악하고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문병병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했을 때, 여전히 그들의 몸은 문둥병으로 뭉글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몸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나갔다가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오해를 받을 뿐만 아니라, 문둥병을 가진 채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여서는 안 되는 규례를 깨기 때문에 돌팔매질을 당하는 형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이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지 않은 현재의 상태로서 제사장에게 나가는 것은 바보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조상들이 살아왔고, 자기도 태어나서 자라온, 그리고 자기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는 것은 그 당시의 아브라람의 상황에서 볼 때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때가 보리와 밀을 거두는 시기입니다. 요단 강물이 엄청 불어나서 강둑에 물이 넘칩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만 자꾸만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행함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제 국민일보 1면에 '박종규 장로'라는 분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1984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 두고 28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5년 동안 하로도 안 쉬고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뉴욕 초대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관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신앙인으로 거듭났습니다. 

1992년 그는 하나님이 원하는 기업을 세우고 싶어서 'JC(Jesus Christ) 매가 월드'라는 제약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술대접, 돈 봉투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세 가지 신앙생활의 행동지침을 정했습니다.

첫째, 십일조를 철저히 드린다. 둘째, 신앙생활을 나의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 셋째, 수입의 일정부분은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그리고 그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았고 사업을 위한 약속은 신앙생활 다음이었다고 합니다.미국에서 이제 막 회사를 세웠고, 밤낮 없이 뛰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는 이 행동지침을 철저히 실행해 나갔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업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미국 13개 주와 멕시코, 홍콩지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새로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그가 이번에 한국에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사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돈을 벌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 말씀을 잊지 않고 들려준다고 합니다.(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리가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두 번째 요인은 '의심'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오지 않았으니, 가뭄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이제 비가 올 것이니 폭우에 고립되지 않도록 빨리 궁으로 돌아가고 권합니다.그리고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비가 오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왕상 18:41-42)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그런데 비가 빨리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환을 보내어 비가 오나 보라고 명합니다. 한 번 갖다 와서 '비가 오지 않습니다' 또 갖다 와서도 '비가 오지 않습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갖다 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 는 대답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것 정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갔다 와서도 사환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의심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어, 비가 안 오는 것은 아니야'우리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것이 바로 이런 '의심'인 것입니다. '새벽에 나가서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안 되네.. '어, 이거 응답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 안 나가..' '십일조 하는데도 내 비지니스가 잘 되는 것 같지가 않아.. 십일조하면 복 받는 다는 것이 맞아.. 이제 나 십일조 안 할거야' '내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는데도.. 모든 게 신통치 않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지 이제는 주일날 집에서 잠이나 실컷 자자..'

 이러한 의심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받는 행동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찬 물을 끼얹습니다. 우리들이 행동이 얼어붙도록 얼음을 끼얹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극복해 내야 합니다.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비의 징조가 있는 지 살펴보라고 계속해서 사환을 보냅니다. 의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행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왕상 18:44-45) 『[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우리로 하여금 생각에만 머물게 하고 더 이상 행동으로 못나게 하는 '의심'을 제거합시다.

 우리가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 번째 요인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둥병에 걸렸으면 고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평생 멸시와 천대 속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에 용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강대국 아람 나라의 실세인 군대장관이 찾아 왔는데, 선지자라는 사람은 낯짝도 보이지 않고 사환을 보내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나을 것이라 하니 자존심이 상해도 이만 저만 상한 것이 아닙니다. 열 받는 것입니다 실은 이것은 교만입니다. 

문둥병을 고치려 왔으면, 뭘 시키든 해야지요. 나아만 장군의 교만을 한 번 볼까요?(왕하 5:11-12)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교만은 문제 해결의 행동으로 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종들을 참 잘 만났습니다. 그 종 때문에 나아만은 살아난 것입니다. (왕하 5:13-14)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치유가 필요하신 분이 있습니까? 회복이 필요하신 분이 있습니까? 부흥이 필요한 분이 있습니까? 성공이 필요한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이 모든 것들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을 막는 요인들을 제거합시다. 그리하여 치유와 회복, 부흥과 성공의 체험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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