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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의 증거 (요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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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증거 (요 1:29~34)


요한복음 1장 29절~34절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같이 요한은 사가랴의 아들, 제사장의 아들로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석청이와 메뚜기를 먹으면서 낙타와 털옷을 입고, 회개하라고 복음을 전하며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세례요한이라 하였습니다. 
    
그의 일생은 참으로 비참하게 마쳐치게 됩니다. 그는 정의와 진리를 외치다가 한 여인의 간계에 의해서 그의 목이 소반에 담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메시야도 선지자도 아니면서 그의 본분을 다하였던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종교가들이 저를 찾아와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400년동안 선지자와 예언자의 소리가 그쳐진 그들에게,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세례요한은 새로운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메시야가 아니다.’ ‘그러면 당신은 선지자입니까?’ ‘나는 선지자도 아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고 내 뒤에 오시는 이를 위해 예비하는 자이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그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참으로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왜 우리삶이 복잡하고 피곤하고 힘드는가? 사실 사회가 복잡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또한 모든 일이 단순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인가? 내가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주위에 여러분과 함께 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누구라고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누구로 증거합니까? 
    
대한민국의 씩씩한 군인으로서 입대했을 때에 선임하사가 ‘너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3백번씩 나는 대한민국의 씩씩한 군인이다를 크게 외쳐라 그러면 군대정신이 번쩍 들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세일즈맨에 관한 책을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단장을 하고 거울을 보고 ‘나는 훌륭한 세일즈맨이다’라고 말하고,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대하여 호감을 가질 것이고 내가 말할 때에 흔쾌히 내 물건을 사줄 것이다’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그런 암시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에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고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여러분 자신을 ‘나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크리스챤이다’ 그렇게 자신을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는 열심히 예수 믿지만 교회 밖에서는 세상방법으로 살아야 할 텐데 어차피 그렇게 살지 못할 바에야 공연히 어렵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자기의 정체성이 분명해질수록 삶이 간단해지고 더 쉽습니다. 정체성이 오락가락할수록 이리저리 갈등을 느끼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교회에 와서는 교회생활, 사회에서는 사회생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그것은 잘못된 고백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내게 상급이 되어지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데에 우리 삶의 분명함과 아름다움이 있는 줄 믿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긍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고상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좀 더 문제를 간단하게 볼 것입니다. 
   
‘단순하게 살아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서 우리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인생을 새롭게 살아갑니다. 그토록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그 어느 날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때부터 참으로 바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공연히 많은 것들이 더하여져서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책에서 7단계로 설명하는데 물건을, 돈을, 시간을, 직장을 정리하면 행복해진다고 하였습니다. 행복을 원하면 좀 간단하게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큰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겠습니까만은 가만히 사람을 대해 보면, 우리가 흔히 부자라든지 위인이라든지 큰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뭔가 어리숙합니다. 조금 모자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세상천지 모르는 것 없고, 손 안대는 데 없고, 경제, 교육, 문화등 많이 알면 위대해지고 존경받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직 내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나는 메시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다, 나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여러분을 누구라고 증거합니까? 남이야 나를 뭐라 말하든지 말입니다.
   
바른 자기의식을 갖고 바른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요 위대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오늘 요한이 예수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 간단히 세가지로만 보겠습니다.
   
첫째,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한 죄를 위하여 양과 비둘기등 형편에 따라 잡아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려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세상 모든 죄를 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화목 제물이시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둘째는 32~33절에 ‘요한이 또 증거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성령으로 세례 줄자로 증거 했습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세례요 또 하나는 성령세례 (불세례)입니다. 물세례는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자복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는 성령세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신비하게 생각합니다. 이상한 방언을 하거나 머리가 뜨겁다고 하거나 환상을 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세례란 인을 친다, 구별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그의 자녀들을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34절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였노라’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이 증거가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요 바른 증거라면 이 증거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는 나의 구속자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고난의 종의 노래 5,6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그리스도 그는 나의 구속자이십니다. 세상의 위인, 성인에게서 배우고 본받고 따라가야 할 대상이기 전에 그는 나를 구속하시는 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시간에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마 5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마음과 양심, 육체에 모든 근심과 걱정을 가진 자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지신 자이십니다. 우리를 짐에서 벗기시고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교회에 오십니까?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오늘 연약한 우리가 이 땅위에 범하는 실수와 죄악과 우리마음에 쌓여진 짐을 쉽게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가 맡으시기 위해 나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어떤 마음의 근심, 걱정이든지 다 주께 맡기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란 책임적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의 행한 것에 대한 바른 책임을 지려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격적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진 짐은 내가 지고 갈 것입니다’라며 너무 똑똑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의 죄와 실수와 허물을 맡으시겠다고 하셨으니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인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우리주께 맡기세’, 맡기라고 하면 맡기십시다. 
  
둘째는,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자이십니다. 
그는 영으로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그래서 롬 8장 9절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는 육체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마음착하게 먹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새로운 변화인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면 펄쩍펄쩍 뛰거나 직장버리고 교회안에 와서 살거나, 기도원에 가서 사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인격적인 신이시오, 그가 내안에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온전히 나를 지배하시고 나를 컨트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여러분의 행동을 주장하듯이 예수님이 나를 주장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축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운전실력 믿는다고 하고선 오른 쪽에 앉아서 일일이 간섭합니다. 믿었으면 맡겨놓고 눈을 감고 쉬면됩니다. 그런데 맡겨놓고 간섭하면 하는 사람도 힘들고 간섭받는 사람도 힘듭니다. ‘차라리 자기가 하지’합니다.
    
주님께 맡겼으면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대로 주님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보다 지혜롭고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시고 사랑이 풍성한 분임을 못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부끄러움은, 이 전능하고 위대하신 분을 가두어 두고 보잘 것 없는 내가 늘 앞장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할 것이 있고 안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손을 번쩍들기 전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가 메시야이고 그가 지혜로우며 그가 영으로 내 안에 계시는 자이십니다. 그가 내 생각을 주장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주님과 의논하기 위해서 새벽기도에 조용히 나와서 ‘하나님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으면 좋겠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겠습니까?’ 주님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목표, 그것을 위해서 성경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내 속에서 말씀하소서, 주님 나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그 때 우리에게 쉼이 오고 평강이 주어집니다. 그때에 그의 크고 놀라우심으로 인하여 찬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마음에 기쁨의 샘이 터져나오고 우리 삶에 새로운 용기와 힘이 솟아나며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멀리 물러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 하심은, 그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 5장 15절에 ‘우리가 곧 아들의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후사가 되어지고, 요 1장 12절에 ‘그를 영접하는 자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악한 사람도 사랑하는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줄자가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할 때 전갈을 줄자가 없는데 하물며 하늘의 너희 아버지가 밤낮으로 구하는 자녀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로 믿을 때 여기 평강이 있고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녀가 잘못하면 속이 상하지만 그 자녀를 욕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감싸 안아줍니다. ‘내가 보니 하나님의 아들이더라’ 우리는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당당한 것은 내 행위가 옳거나 내 모든 것이 완전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새로워졌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과 축복의 관계가 이루어져 주와 함께 후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우리가 이 큰 축복과 은총의 사람이 된 것이 또한 우리가 증거해야 할 내용인 줄 믿습니다. 
 ‘나같은 죄인 용서하여 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내 인생을 내가 살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슬픔과 상처뿐인 내 인생을,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안에 있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주셨다’ 이 간증을, 이 놀라운 감동을 이웃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증인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진실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믿도록 전도해야겠다’해서는 전도 못합니다. ‘이 말씀은 내게 주신 말씀, 내가 이 말씀안에서 이렇게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바울이 ‘내가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상처를 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만삭되지 못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이 은혜받고 새사람된 것처럼, 내가 고난받은 것은 제외하고 너희도 이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그것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받은 놀라운 감동을 증거하는 증인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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