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성전, 은혜의 자리 (대상 21:18~22:1)

  • 잡초 잡초
  • 386
  • 0

첨부 1


하나님의 성전, 은혜의 자리 (대상 21:18~22:1)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 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전건축 그 자체를 싫어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니라 그의 아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를 원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서 다윗을 완전히 배제시키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를 달리 사용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 자체는 솔로몬이 맡게 하시되 그 일을 위한 모든 사전정비작업은 다윗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훗날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이 적국의 침략을 받아 점령을 당하거나 노략질을 당하거나 파괴될 위협을 받지 않도록 나라를 튼튼히 하고 주변 어느 나라도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다윗을 쓰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언제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의향을 나단에게 내비치신 그날 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하시면서 그 대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이 그 곳에 거주하면서 다시는 옮겨가지 아니하게 하며 악한 사람들에게 전과 같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대상17:9-10)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대상18:6, 13,). 다윗은 먼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그들의 손에서 큰 성읍을 빼앗았습니다(대상18:1). 또 모압을 쳐서 모압 사람이 그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대상18:2).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세력을 펴고자 하자 그를 쳐서 이겨 영토를 확장했고(대상18:3) 다메섹 아람 사람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오자 아람 사람들을 굴복시켜 자기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대상18:5-6). 그리고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그의 성읍들로부터 심히 많은 놋을 빼앗았는데 훗날 솔로몬이 그것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놋대야와 기둥과 놋그릇들을 만들었다고 대상18:8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소바 왕 하닷에셀에 맞서 여러 번 전쟁을 했던 하맛 왕 도우는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아들 하도람을 보내서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며 많은 금과 은과 놋으로 된 각종 그릇을 가져왔는데 다윗이 그것도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나님께 드렸다고 대상18:9-11은 계속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후에도 암몬과 아람을 상대로 전쟁을 하여 대승을 거두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와 화친하게 했으며(역대상 19장), 암몬의 수도로서 남북무역의 요로에 위치하고 있던 풍요롭고 견고한 성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고는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금관을 빼앗고 그 성에서 무수한 전리품을 거두었으며 그 백성을 끌어내어 톱과 쇠도끼와 돌써래로 일하게 했습니다(대상20:1-3). 그리고 다시 블레셋과 전쟁하며 옛날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죽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 등 골리앗과 같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렸습니다(대상20:4-8). 이렇게 다윗은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다 평정하고 조공국으로 만들어 이스라엘의 안보를 튼튼히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경제적으로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솔로몬으로 하여금 밖으로부터의 그 어떤 위협의 염려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부족함 없이 아름답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는 정비작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주변의 모든 대적을 다 물리친 다윗이 예기치 못했던 대적을 만나 그에게 어이없이 굴복하고 참담한 재앙을 겪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대적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사탄이었고, 그에게 어이없이 굴복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를 하게 한 일이며, 그 일로 말미암아 겪어야 했던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의 목숨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대상21:1을 먼저 봅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왜 갑자기 인구조사를 벌이게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사의 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다윗이 그 인구조사 일을 군대사령관 요압(대상18:15)에게 명령했고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할 때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대상21:5) 한 사실이 그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하나의 추측은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정확한 세원을 파악하기 위한 인구조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추측은 국가적 대사역에 동원할 노동인력을 파악하기 위한 인구조사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다윗의 의중에 있었던 이유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모든 이유를 다 성전건축에 관련시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군사력을 점검하는 것이나 세원을 파악하는 것이나 노동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성전건축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완수할 수 있기 위한 예비작업들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한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인구조사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인구조사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경에는 아예 라는 책이 들어있습니다. 그 책의 1장 1-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행하게 한 인구조사는 왜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모세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인데 반해 다윗의 인구조사는 사탄의 충동에 따라 행해진 것이었다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대상21:1을 다시 봅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그런데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기만 했지 강제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즉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은 사탄이 충동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충동에 넘어간 다윗이 죄책을 벗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사령관 요압은 왕의 명령과 재촉 때문에 마지못해 인구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다윗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를 명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간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인구조사를 강행하게 한 것입니다. 요압의 말을 들어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대상21:3)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백배나 더 많은 적군과 싸우게 될지라도 얼마든지 이기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신 하나님이 아니시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의 수를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이스라엘인데 왜 인구조사는 하려는 것이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그를 의지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잘못을 바로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신 이 일을 다윗이 하나님께 얻어맞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대상21:7). 다윗의 때늦은 후회를 들어봅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대상21:8) 무엇이 다윗의 큰 죄였고 심히 미련한 행위였습니까? 전쟁을 하는 일이든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든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모든 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기가 주인일 줄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저지른 망각과 착각의 대가는 그런데 너무나 무겁고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백성 칠만 명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견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셔서 당신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대상21:10) 그 세 가지란 삼년 기근과,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기는 것과, 전염병이 사흘 동안 유행하며 하나님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것이었습니다(대상21:12). 그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견디기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택해야 할지 모르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또 다시 인간적 계산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대상21:13) 긍휼이 크신 하나님의 선택에 온전히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기를 택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칠만 명이 죽게 되었습니다(대상21:14).

이 일은 다윗에게 일생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다른 것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님의 진노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 뒤에 숨은 그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를 드러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지만 당신께서 내리신 재앙을 실행하고 있는 천사를 보시고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셨습니다(대상21:15).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고 참회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죽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시고 후회하신 것입니다. 한편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 것을 보고는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대상21:16-17)

이 다윗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으로 하여금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게 했습니다(본문 18절). 다윗은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게 하기 위해(본문 22절) 오르난에게 금 육백 세겔을 주고 그의 타작마당을 사서 거기서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본문 25-26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 제사를 받으시고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으며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뽑아들었던 칼을 칼집에 다시 꽂았습니다(본문 26-27절).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에게 닥친 재앙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심히 미련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고 용서와 긍휼을 구한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시며 은혜를 베푸심을 보고 거기서 다시 제사를 드렸습니다(본문 28절). 그리고 다윗이 한 말이 오늘 본문 마지막 절 22:1에 기록된 말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그 자리가 바로 훗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자리입니다. 대하3:1을 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런데 모리아 산이 무슨 산입니까? 오래 전 아브라함이 나이 백 살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번제로 드리려 했던 그 산입니다. 창22:2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신 사실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실제로 손에 칼을 잡고 아들 이삭을 잡으려 하자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말씀하시고는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숫양 한 마리로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창22:13). 그리고는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까지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준비하여 누가 지을 것인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 순종이 있었고 하나님의 복 주심의 선언이 있었던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교만의 죄를 참회한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의 충동으로 벌어진 불행의 역사가 종식된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탄의 악한 역사를 뒤엎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죄의 은혜가 나타난 자리에 당신의 성전을 세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전건축도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이루실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으로 드린 순종의 제사를 드리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참회의 기도가 올려지고 놀라운 사죄의 은혜가 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온갖 사탄의 충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승리하는 역사의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성전건축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과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선물로 주시는 성전건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