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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살리는 교회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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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리는 교회 (겔 47:1~12)


지난 주에 호주를 다녀왔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성시화 대회가 열렸는데 그 집회의 설교를 맡아 갔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올림픽이 열렸던 체육관에서 집회를 하였고, 주일에는 오후 3시에 시드니에 있는 한인교인들이 연합하여 시가지 퍼레이드를 하였습니다.

이 퍼레이드는 3월 7일 시드니에서 있었던 ‘마디그라’라고 하는 동성애자들 퍼레이드에 맞불을 놓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3년 전에 시작된 운동입니다. 마디그라는 세계 10대 축제로 꼽힐만큼 유명한 집회입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몰려와 축제를 하고 퍼레이드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동성애를 합리화하고 합법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추세를 막기 위하여 마디그라 축제가 끝난 후 곧 이어 시드니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연합하여 성시화대화를 열고 시가지 퍼레이드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도 퍼레이드의 제 앞에서 서서 약 40분 정도를 걸었습니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의미가 있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교회는 세상을 위한 자동온도조절장치였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저 온도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킹 목사님은 교회가 자동온도조절장치가 되지 못하고 겨우 온도계의 역할만 감당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에 대한 온도계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에 대하여 온도계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고, 실제로 하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시드니 성시화 대회는 그런 면에서 세상에 대한 온도계 역할을 자처하고 또 실제로 담당한 집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뜻이 있는 집회였고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회에서 저들을 격려하면서 이왕이면 온도계 역할이 아닌 자동온도조절장치와 같은 교회가 되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레이드만 가지고는 안 되고 교회 자체에 회개운동과 정화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세상이 거룩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교인들이 거룩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거룩해 지기를 힘 쓴 후, 우리가 먼저 그 동안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한 후 그 거룩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말해야 할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초대교회는 자동온도조절장치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수는 작았지만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한국의 진정한 의미의 개화와 발전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하였고 은근히 존경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바탕이 있어서 한국 교회는 세계선교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부흥과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흥과 성장이라고 하는 열매에만 집중하여 교회의 본래 사명을 잊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을 위한 교회에서 그저 교회를 위한 교회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흥과 성장이 가져다 주는 세상적인 매력 때문에 거기에 빠져 점점 부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엉뚱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받게까지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한 온도계가 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교회에 대한 온도계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흥과 성장으로 엉뚱해지고 교만해진 교회는 세상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향하여 자기 힘을 과시하고 공갈하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적대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 개신교는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은 우리 개신교를 개신교라고 부르지 않고 개독교라고 부릅니다.

중세 때 천주교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권력을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왕과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주교는 타락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개신교는 그 중세 때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너무나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한국 개신교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흥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 개신교는 18% 정도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감소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추락의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이었습니다. 저들의 관심은 빵과 육체적인 건강과 권력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예수님을 따라다닌 궁극적인 목적이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었을 때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까?’였으니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들이 애처러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병든 자들이 불쌍하여 저들을 고쳐 주시었습니다. 그리고는 애써 그것을 감추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주된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자꾸 집중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점점 무관심해 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꾸 그와 같은 이적을 베푸신 후에 아무에게도 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우리 한국 교회는 반대로 가고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예수를 믿으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고 예수를 믿으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형통한다는 것을 표면에 걸고 목회를 하는 교회가 우리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그것을 영적야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적인 소명이 아닌 목회 야망에 의한 영적 호객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교회가 잠시 부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가 지금 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에 취약한 것은 교인들 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를 하는 우리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치 잘못하면 소명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소명을 가장한 개인적인 야망을 위하여 목회를 하기가 쉽습니다.

교회다운 바르고 건강한 교회 보다는 우선 크고 힘 있는 교회에 더 집중하기 쉽습니다. 자신도 수 천 명이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그 안에 형성되어 있는 세상적 권력의 핵심이 되어 그 특권을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타락하게 됩니다. 빵과 치유와 권력에 혹하는 교인들과 개인적인 야망에 눈 어두운 목회자가 만나면 교회는 매우 위험해 지게 됩니다. 교회는 잠시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점점 교회로서의 특성과 자기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깨끗한 부자를 설교하고, 청년들에게 고지를 정복하라는 설교를 하자 사람들은 그것을 청부론과 고지론이라는 이를 붙여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기복주의와 성공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설교의 목적은 부자되고 고지를 정복하여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설교의 목적은 세상을 섬김입니다. 바울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도 로마시민권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로마 선교에 유용한 도구로 이용하였듯이 우리도 물질과 권력을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이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는 것 뿐입니다. 주를 위하여 잘 쓴다면 물질과 권력을 무조건 부정하고 죄악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제게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세상적으로 출세하여 권력을 잡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는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 땅에서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부요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건강하든지 약하든지, 높든지 낮든지 상관없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공과 실패, 부함과 가난, 높음과 낮음과 상관 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부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세상적인 부함과 권력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가난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낮고 천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도구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대신 이것 즉 부함과 권력도 부인하지 말자는 것 뿐입니다.

우리를 정말 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법과 식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성전에서부터 물이 스며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물이 점점 불어나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나중에는 헤엄을 칠만한 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땅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강가의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넘쳐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것은 생명수였습니다. 생명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전 이 세상은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말씀이 떨어지자 공허하던 세상은 온갖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으로 충만하여지게 되고, 혼돈하던 세상은 질서 있게 그리고 어둡던 세상은 밝은 빛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인생을 살리는 것은 세상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해도 그의 삶 속에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이 물 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뜻이 흘러 나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계속 흘러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도 살고 세상도 삽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그것이 끊어졌습니다. 성전에서부터 세상으로 흐르는 물이 없어졌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잊었습니다. 고센 땅에 눈 어두워 가나안을 잊고 살다가 애굽 땅에 노예가 되어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축복으로 주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이 주를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로마시민권을 탐하듯, 세상 사람들이 로마시민권을 휘두르고 그것을 즐기듯 하다가 사명을 잊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잊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는 높은 뜻 교회입니다. 높은 뜻은 높은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high will church가 아니라 God"s Will Church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우리의 뜻과 욕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식입니다. 우리는 높은 뜻 교회에서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교인들에게 그것을 선포하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것을 배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식을 삼고 원칙을 삼고 살면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가난하든 부하든, 세상으로 성공하든 혹 실패하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삶의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높은 산이 거칠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자꾸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을 채워주는 사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점점 무당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폭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독재자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독재자를 닮아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면서부터 크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자체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습을 한다고 당장 그 대형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저들은 세습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고 당위성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기들 때문에 세상에서 우리 한국 교회의 체면과 위상이 얼마나 실추되었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 전체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비탈에서 미끌어지기 시작한 교회입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우리 혼자 그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으나 우리 교회가 그 중에 한 몫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물이 흘러나와야만 합니다. 세상으로 흘러가는 물이 나와야만 합니다. 세상의 물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세상과 교회를 살리는 생명수 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식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개인적인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욕심 즉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과 자신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물 때문에 모든 생명들이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풍성해 지기를 원합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살고, 한국 사회가 건강해지고 건전해지는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 자체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우리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욕심을 부리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식에 있습니다. 높은 뜻에 있습니다. 높은 뜻에 욕심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높은 뜻이 이루어질 때마다 맺어지는 열매의 주인공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되어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과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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