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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에 대한 가르침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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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대한 가르침 (마 18:1~10)


사람들의 관심사는 항상 ‘내가 너보다 크다.’라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세상 땅의 법칙은 큰 것 앞에 명예를 주고 큰 것 앞에 상을 주고 큰 것을 놓고 옳은 것으로 여기는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큰 것에 대한 관심이 제자들에게도 있었다. 땅의 가치를 따라서 제자들도 ‘천국에서 누가 크냐?’라는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궁금한 질문을 예수님께 던진다.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천국에 관한 몇 가지 교훈을 덧붙여 대답하신다.

  
1.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이다. (마18:4)

천국의 가치관은 땅의 가치관과 다르다. 마18:4에 보면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다. 주님이 대답하신 큰 자의 개념은 어린 아이를 모델로 설명하셨다. 마18:2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갑자기 제자들 앞에 서 있게 된 어린이, 그 어린이가 무엇을 나타내거나, 뽐내거나 자랑할 수 있겠는가? 어린이는 주님에 의하여 시청각적 모델로 서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욕망도 없고 이권도 없고 높아지고 으스대려는 것조차 없다. 오직 주님이 불러서 세워놓았기에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이 아이는 순종으로 서 있는 것이다. 주님이 모델로 사용하시고 보여주시기가 끝나면 뒷자리로 들어가는 어린이일 뿐이다. 

주님이 천국에서 큰 자를 설명할 때 이 어린 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아이의 텅빈 마음, 주님에 의해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는 겸손함을 뜻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생각하고 특권을 누리려고 하고 대접을 받고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은 천국에서 큰 자가 아니다. 주님이 이끄시기에 순종하고 주님이 세우시기에 따르고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맡겨드리는 삶,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를 겸손하게 맡기는 삶, 그것이 큰 자의 삶이다. 천국에서 성공한 자, 큰 자는 땅에서 인기가 있고 성공한 자가 아니다. 나의 삶을 맡겨드리는 삶이다.

  
2. 천국에 꼭 들어가는 사람이 되라. (마18:3)

주님은 천국에 큰 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주님 자신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기로 예고하신 것이 이미 자기를 낮추사 천국의 큰 자의 삶이었다. 그러나 또 중요한 것은 천국에 제자들이 꼭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신다.

마18: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정말 중요한 이슈는 ‘크냐, 작으냐’의 문제보다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순서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를 먼저 마18:3에 언급하심으로 천국에 큰 자가 누구인지를 대답한 마18:4의 말씀보다 앞서 다루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천국에 초대하신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제자들과 우리들의 최우선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① ‘돌이켜’라고 하셨다.

누가 돌이켜야 하는가? 바로 큰 자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제자들이다. 큰 자가 되어 영광을 누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땅의 법칙과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들이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란 ‘바꾼다, 방향을 전환한다.’는 말이다. 겸손하지 못하고 누리려고만 하는 어른의 행실에서 돌이켜야 천국에 들어간다. 

어른은 어떤 존재인가? 어른들은 복잡하다. 문화와 전통, 관습에 젖어 있다. 체면과 신분, 대우 받는 일에 젖어 있다. 구성원이 누구며 안내자가 누구인지 등등에 계산하고 타협과 조정안을 낸다. 때로는 음모를 꾸미고 정략적 가면을 쓰고 위선과 거짓의 모습으로 양의 탈을 쓴다. 그래서 어른들은 높아지려고 한다.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 어른들은 그래서 자신의 자아 이외엔 신뢰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의 주먹과 소유권들과 재능 이외엔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돌이켜’라고 하셨다.

②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다.

어린 아이란 어떠한가? 단순하다. 세상의 환경과 여건, 이런 복잡한 것에 연관되어 있지 않다. 정치, 경제, 문화, 관습 등으로부터 자유하다. 단순하기에 사람을 신뢰한다. 어린 아이는 100% 부모의 은혜와 도움을 신뢰하며 따르고 순종한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하여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순전하게 의지하며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단순해야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따르라.   

③ ‘손, 발을 자르고 눈을 뽑으라.’고 하셨다.

이는 죄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거룩하라는 것이다. 

마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죄는 무슨 죄인가? 죄 지은 손, 죄 지은 발, 죄 지은 눈으로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 ‘범죄’란 단어는 ‘실족’이란 단어다. 바꾸어 읽으면 실족케 하는 손, 실족케 하는 발과 눈, 이것이 우리를 망하게 한다는 말이다. 실족하게 하는 자는 사망의 불에 던져진다.

마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우리는 이 죄를 떠나보내야 한다. 이 말은 내 삶이 실족하지도 말고 남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천국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않다. 사람을 미끄러지지 않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천국에서 빛나는 이름이 된다. 

영국의 어떤 노인이 임종을 눈 앞에 두고 몹시 괴로워 하였다. 측근이 물어보니 그는 괴로움 속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동무들 하고 놀다가 어떤 날은 십자로에 세워 놓은 도로 표시판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은 일이 있었어요.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헤매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고통스럽다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내 손과 내 발로 인해 지극히 작은 자들이 죄에 달려가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도적질, 간음, 도박, 음주, 방탕, 싸움, 시기, 이 모든 것이 나의 모습에서 기인해서는 안된다. ‘자르라.’는 것은 ‘고치라.’는 것이다. 

나는 사순절기에 주님이 주신 말씀을 묵상하다가 천국의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삶은 아닌지... 깨끗한 삶, 천국의 길을 안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천국에 실족해서는 안된다. 천국은 존재한다. 지금 여기 그분의 다스림으로 시작되었고 장래 하늘의 도성으로 이어진다.

  
3. 천국의 주인공인 소자를 영접하라. (마18:5)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여기서 어린 아이는 그 당시 부모들 세대에서 업신 여김을 당하던 어린이로 볼 수 있다.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되어 매매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했던 어린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의미는 여기서 작은 자, 소자의 의미이다.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소외된 자, 작은 자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 작은 자를 영접해야 한다. 그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의 이유는 ①작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고 ②나는 어린 아이 같은 작은 자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③마18:5의 말씀처럼 그 작은 자의 영접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대접하는 것을 쉽게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서 큰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누가 크냐’라는 문제에 매달리며 경쟁하는 삶을 내려놓고 교회 안에 들어온 작은 자를 영접하면 주님을 대접한 것이다. 마25:40에서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다. 내 형제다. 

누가 나의 형제요, 자매인가? 주님은 마12:50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영접해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이 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내 형제이기에 작은 자일수록 더욱 더 천국의 주인공임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대접하라. 아니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기에 기쁘고 감사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행할 수 있다.
  

4. 천국의 식구들은 다 찾아져야 한다. (마18:14)

천국의 식구들은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 천국의 식구들은 천하보다 귀한 영생을 얻은 이들이다. 그러므로 마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다. 마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한 사람이 이렇게 소중하다. 그 한 사람마다 그들의 천사들을 두시고 지키시려 하신다.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천사들이 그 한 사람의 전령으로 일하는 것이다. 원수, 마귀, 악한 사탄의 미혹으로 영혼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려고 하나님은 뜻을 정하신 것이다. 주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이유도 한 사람을 찾기에 있는 것이다. 

마18:12~13을 보라.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어둔 권세의 미혹, 죄와 세상 욕심의 유혹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빼앗기려 하지 않으신다. 길을 보여주고 실족치 않게 하여 천국의 식구들은 다 찾아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영혼이 아버지에게 중요하다. 한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우리는 너무도 도매급으로 사람을 대하며 주님의 가르침과 떨어져 주님을 따르는 듯 하다. 큰 것에만 관심을 갖고 더 좋은 자리에만 관심을 갖는 우리는 겸손하게 살기로 돌이키는 결단이 있어야 하겠다. 천국은 나의 집이다. 그것에 들어가는 주인공.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쏟자. 그리고 영적으로 어린 아이가 되기를 작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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