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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 (대하 32: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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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 (대하 32:1~8, 20~21)


같은 고향 출신으로 전쟁에 나간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같은 소대원이었지만 한 친구는 적진 깊숙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가 속한 소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친구를 적진 깊숙이 버려두고 온 이 친구의 마음은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소대장에게 부탁합니다. “소대장님! 제가 가서 제 친구를 구해서 오겠습니다. 제 친구를 제가 구조해 오겠습니다.” 하지만 안 된다는 대답뿐 이었습니다. 가면 너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소대장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적진 깊숙이 버려두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대원 몰래 그는 한 밤중에 소대를 이탈해서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헤매다가 자기 친구를 드디어 찾게 됩니다. 친구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그를 묻어주고 돌아왔습니다.

소대장은 허락 없이 부대를 이탈한 이 사병을 꾸짖었습니다. “내 허락도 없이 가서 얻은 게 뭐냐? 친구는 죽어있지 않더냐? 구조할 수도 없는데 뭐 하러 너도 위험하게 그렇게 갔느냐?” 하고 꾸짖었습니다. 

그 때 그 사병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소대장님! 아닙니다. 제가 가기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친구를 발견했을 때 그는 막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임종 직전이었는데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네가 반드시 올 줄 알았어.” 그리고 저의 손을 잡고 마지막 눈을 감았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어려움 당할 때 내 친구가 나를 찾아와서 도와주리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그 신뢰를 끝까지 깨뜨리지 아니했습니다.

저는 이 관계를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들도 부모 되신 분도 있고, 자녀 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당할 때 부모가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외면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기력만 있다면 힘을 다해서, 때론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자녀를 도와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들이 곤궁에 처해있다면 언제까지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시리라고 믿습니다. 히스기아는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고, 그는 국난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책을 읽다보니 재밌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비행기에 오르면 기내를 한번 둘러봅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이 있답니다. ‘오늘 이 비행기에 탄 사람들 복 받은 줄 알아라. 당신네들 나 때문에 다 안전할 거야. 이 비행기에 내가 탔으니까. 내가 탄 비행기를 하나님께서 어쩌시겠어.’ 적어도 우리는 이런 자녀의 확신은 있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시저가 한번은 강을 건너가는데 중간에 바람이 불어서 배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배사공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시저가 소리를 지릅니다. “여보게! 두려워 떨지 말게. 이 배는 절대 침몰되지 않을 거야. 여기에는 시저가 타고 있거든.”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러한 권위, 그런 자부심, 긍지,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사람처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있는 한, 기도하는 우리가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결코 쉽게 문 닫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부심입니다. 더더욱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여호와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예수원을 설립한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 되는 ‘R. A. 토레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아주 신령한 분이었습니다.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과 함께 부흥운동을 함께 했던 목사님이셨습니다. 그가 쓴 글에 보면 ‘드와이트 무디’에 대한 재밌는 글이 있습니다. “무디는 정말 권능 있는 사역자다. 무디의 마음속에는 늘 이런 확신이 있었다. ‘여호와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 무디는 그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부흥강사로서, 기도의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믿음이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의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14번째 왕입니다. 그는 요시아와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더더욱 히스기야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라는 왕은 믿음이 별로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 앞에 선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왕은 죽고 나서 왕릉에도 묻히지 못하고 일반 묘에 묻힐 정도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하스왕에게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그의 훌륭한 믿음의 어머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비야’라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이 어머니는 경건한 제사장 ‘스가랴’의 딸입니다. 아버지 제사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히스기야 왕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정말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서 한 업적들이 많이 있는데 제일 첫 번째로 한 일이 종교개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다 타파했습니다. 아세라 목상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예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보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공고히 해 주었습니다. 백성이 가져온 십일조가 그 창고에 쌓일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온 백성이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왕이 바로 히스기야였습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너무너무 어려울 때, 그 왜적의 침입에 대해서 거북선을 가지고 나가서 우리나라가 승리하게 한 장군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히스기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적인 강대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해서 져 본적이 없습니다. 그가 무려 18만 5천명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남유다를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마치 바람 앞에 촛불처럼 온 유대 백성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열왕기하나 이사야서에 보면 오죽했으면 이 히스기야 왕 자신도 오늘은 환란과 책벌의 날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가졌지만 그 임산부가 아기를 날 힘이 없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런 형국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고까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회복한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어려운 위기를 뚫고 나가는 모습을 오늘 성경 본문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그는 최선을 다해서 방비했습니다. 오늘 말씀 3절~4절을 한 번 읽어 봅니다.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그렇습니다. 1절에 보면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부하들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고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왕이 모든 종교개혁을 다 이루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다 행한 후에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남왕국 유다가 당한 환란은 범죄 때문에 당한 환란이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련이라면 이 백성을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았지만, 때로는 내게 시련과 역경이 올 때가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더 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히스기야 시대의 남유다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우상을 물리치고 하나님만을 경외했는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방비하는데 오늘 본문 3절에 보니 “방백과 용사들과 더불어 성 밖의 물 근원을 성 안으로 끌어옵니다. 성 밖에 기혼 샘이라는 아주 유명한 샘이 있었습니다. 아주 물이 콸콸 터졌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그 샘 근원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보통 성은 산 위에 높은 곳에 짓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면 예루살렘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 밑으로 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실로암못입니다. 

이 실로암못은 성 밖의 기혼 샘으로부터 터널을 뚫어서 연결된 샘입니다. 한 곳은 지하 500M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밖에 있는 기혼 샘을 덮어버렸습니다. 수로를 다 막아버렸습니다. 밖에서는 물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성 안에서는 얼마든지 물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가는 분들은 기혼 샘과 터널은 잘 보이지 않는데, 그 기혼 샘을 한번 들어가 보게 됩니다. 2000년도 더 전에 어떻게 그렇게 터널을 뚫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 안에 사람들은 마음대로 물을 먹을 수가 있고, 성 밖의 적군들은 물이 없어 곤란을 당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부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나아가서 그는 성을 보수합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그는 최선을 다해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허물어진 방벽을 세웠습니다. 허물어진 성을 재건축했습니다. 망대를 높이 쌓았습니다. 그리고 무기와 방패도 준비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라의 위기 가운데 백성과 용사들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히스기야를 중심으로 한 마음 되어서 그들은 전쟁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역시 우리가 위기를 당했을 때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했다고 하는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역시 역사에 불변하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되면 살 수 있습니다. 한 민족이 하나로 뭉친다면 어떤 환란이 와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하나가 된다면 어떤 시련이 와도 그 가정은 그 시련을 물리치고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 안에서 온 교인들이 하나가 된다면 우리교회가 감당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히스기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모아서 성벽을 쌓았고, 물 근원을 끌어들이고, 망대를 높이고, 무기와 방패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안 된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따던지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을 다 할 때 그 다음은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어려움과 시련이 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먼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믿음의 말을 선포했습니다. 성경 본문 6절과 7절을 읽어봅니다.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백성들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불안과 염려와 근심을 예방하기 위해서 히스기야는 백성들 앞에 서서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첫 마디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였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저들과 함께 한 자보다 크다.”고 말했습니다. 저들과 함께 한 자는 육신의 팔, 인간들의 모임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그는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서 한 가지 신앙을 더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더 읽겠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아무리 방비를 잘 해도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의 공허하면 그들은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전쟁은 대게 마음에서 패배하거나 승리하게 됩니다. 백성의 마음이 초가 녹듯이 녹아버리면 전쟁은 끝난 것입니다. 그 중에는 배반자도 나올 것이고, 분열을 일으키는 자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스기야는 믿음의 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이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우신다. 그것은 의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백성에게 선포할 때 백성들은 드디어 마음에 안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선포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어떻게 이런 담대한 말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축복의 장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오늘 나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내가 이런 복을 네게 주겠다. 어떤 대적이 너희를 치러 올라 왔다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우리 대적은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과 함께 한 이보다 우리 하나님이 크신 분이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 믿음을 선포하니까 백성들이 마음에 안심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9절에서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심복이 와서 심리전을 씁니다. 휴전선 부근에 가면 서로 상대방을 흔들리게 하기 위해서 대남방송, 대북방송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어느 나라와 싸울 때 피리를 불어서 군사들이 한 밤중에 달을 보면서 피리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고향생각으로 빠져서 전쟁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패배하는 심리전도 등장합니다. 산헤립의 심복이 예루살렘 성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는 지금 너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우리 산헤립왕이 부하를 이끌고 가서 전쟁에서 져 본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찌 너희들이라고 버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의지해봤자 필요 없다. 히스기야가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히스기야와 백성들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전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사탄은 이런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좀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충만할 때, 은혜를 받았을 때, 부흥회 가서 말씀을 듣고 ‘맞아! 이대로만 살면 되지.’하고 생각했는데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주머니에 돈이 없는 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고, 난 돈이 없는데. 집에 가야 뭐 별 볼일도 없는데.’ 자기를 돌아보면서 마음에 의심이 생깁니다. 이 의심은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자꾸 의심하는 말을 심어줍니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넌 실패자야. 넌 낙오자야. 너에게는 능력이 없어. 네가 기도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실 거야.’ 자꾸 불안하게 만듭니다. ‘헌금해서 뭐해. 다 헛것이야.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고 자꾸 의심을 심어줍니다. 

여러분!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귀의 전술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진짜인줄 압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그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의심하는 생각을,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의심은 떠나갈 지어다. 악한 마귀의 생각은 떠나갈 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오. 그리고 더욱 견고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마귀의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이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자꾸 사람들은 감정에 좌우됩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때는 은혜가 충만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우울한 것 같고, 믿음도 없는 것 같고, 의심만 자꾸 생기는 것 같고, 자꾸 감정에 좌우됩니다. 마귀는 교묘하게 감정을 이용합니다. 어떤 때는 예배를 드려도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뭔가 잘 못 되었지. 교회가 이거. 목사가 설교를 이상하게 하니까 내 마음에 기쁨이 없지.’ 마귀가 자꾸 내 마음에 자꾸 우울함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공격당합니다. 불평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이 말씀을 훼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싸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선포할 때 백성은 용기백배하고 믿음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21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20절에 보니까 아주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제 이 위기 가운데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성전으로 들어가서 이 적장 랍사게가 보낸,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앞에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그 새벽에 나가보니까 하나님이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185,000명의 앗수르 대군을 다 멸하셨습니다. 다 쓰러져 죽어버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환란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 외에는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한 민족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 기도하는 한국교회가 있는 한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한 그 교회는 견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한 그 가정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최고의 방책인 것입니다. 핵폭탄보다 더 강한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히스기야 왕은 기도함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공격하고 모욕하던 이 앗수르왕 산헤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얼굴이 뜨끈뜨끈하다는 것은 부끄러워서 뜨거운 얼굴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믿는 우상의 신당에 들어가서 자기 우상에게 왜 우리가 졌느냐고 항의하다가 자기 몸에서 난 자기 두 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들이 왕이 되려고 아버지를 죽여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던 사람은 결국 이런 비참한 말로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함으로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다음 줄에 보면 히스기야가 몸에 병이 들었는데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암 같은 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향해서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는지 너무 번성하고 잘 되어서 히스기야의 마음에도 교만한 마음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진노해서 히스기야를 치셨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가 깨닫고 또 회개하면서 나가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또 그를 용납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위기를 당할 때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기도할 때가 아닐까요? 여러분 마음속에 불안이 있습니까? 믿음이 흔들리십니까? 의심이 있으십니까? 기도의 자리로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영국의 유명한 청교도 정치가 중에 ‘크로멜’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크로멜’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그를 키우지 못하고 유모가 그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유모가 ‘크로멜’의 할아버지 집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당시 아주 희귀한 원숭이를 키웠습니다. 몇 마리 원숭이를 키웠는데, 원숭이를 평소에는 우리에 가둬두지만 어떤 때는 마당에 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가 원숭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유모가 ‘크로멜’을 안고 젖을 먹이니 원숭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더랍니다. 유모가 아기를 젖을 먹이다가 잠깐 내려놓고 방안에 들어간 사이에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원숭이가 와서 아기를 자기가 안아봅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안고 지붕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사다리를 두고 지붕위로 쫓아가도 원숭이가 다른 집으로 뛰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놓쳐버리면 아기는 죽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믿음이 굉장히 좋습니다. 온가족을 불러 모으더니 “이제 ‘크로멜’은 우리 손을 떠났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기도하자.” 그리고 무릎을 꿇고 온가족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원숭이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흉내 내기 좋아하는 이 원숭이가 아기를 안은 채로 내려와서 같이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크로멜을 내려놓고 나가버렸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의 위기들이 왜 없습니까? 내 손으로 도저히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내 손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다 했지만 안 됩니다.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여러 가지 환경과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기도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우리는 더욱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위를 바라보십시오. 오늘 히스기야를 보니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앞이 막혔습니까?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게는 길이 없지만, 하나님께는 길이 있고,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사순절 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이 함께 나오셔서 새벽을 깨우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들,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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