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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나를 위하여 (사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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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나를 위하여 (사 53:1~6)


‘카니발(Carnival)’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각 나라에서 거행되는 축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축제는 브라질의 ‘리우카니발’입니다.  일명 ‘삼바축제’라고 부르기도 합니
다.  해마다 2월과 3월에 열립니다.  금년은 이미 축제가 끝났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삼바축제를 
위해 일 년을 기다립니다.  심지어 삼바춤을 위한 학교까지 있습니다.  삼바축제가 열리면 각국에
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리우카니발은 화려한 의상의 무희들과 휘황찬란한 퍼레이드, 흥
겨운 삼바의 리듬과 정열의 삼바춤으로 진행되면서 볼거리, 먹거리를 보여주는 축제입니다.  그래
서 사람들은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렇게 4일 동안 리우카니발, 삼
바축제는 진행됩니다.

이런 카니발의 유래가 교회역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보통 카니발은 사순절이 시
작되는 전날에 끝납니다.  처음 사순절은 순수하게 시작되었지만 점점 형식화, 관습화, 세속화 되
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 사순절이 되면 먹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니까 그 전에 실컷 
먹고 즐기자는 의도에서 카니발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카니발’이란 말에서 ‘카니(Cani)’는 
‘육, 고기’를 뜻하고, ‘발(Vale)’은 ‘잔뜩 배불린다, 혹은 안녕’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고기여 안
녕,’ 이것이 카니발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카니발을 유럽에서는 다른 말로 ‘사육제(謝肉祭)’라고 부
릅니다.

그러나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한 뒤에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순절 의미의 회복입니다.  사순절은 지키는 기간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과 이후가 더욱 중요합니
다.  사순절의 이후는 부활절이요, 이전은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사
순절을 종교적 관습이나 세속적 행사로 형식화 시키지 말고 이젠 성경으로 돌아가 진정한 의미의 
사순절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四旬節, The Lent)’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경건하게 보내는 절기입니다.  금년은 2월 25일부터 4월 11
일까지입니다.  사순절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주님을 묵상하며 보내는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면 그분이 나를 위하여 하신 일을 
발견합니다.  과연 예수 나를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사야서는 성경을 축소한 말씀입니다.  성경이 
66권인 것처럼 이사야도 66장입니다.  66권의 성경을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나누듯이, 이사
야도 전반부 39장과 후반부 27장으로 나눕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듯이, 이사야의 전반부도 공의가 중심이고, 후반부는 사랑과 위로가 중심
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중심이듯이, 이사
야도 전반부는 하나님이 중심이고, 후반부는 메시야를 강조합니다.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부르기에 이사야서를 읽으면 성경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
사야의 후반부에 해당되는 말씀으로서 이사야의 후반부에서 가장 분명하게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런 가운데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  무엇을 말합니까?  아직 메시야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호
와의 팔이 나타납니다.  메시야가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오셨습니
다.  이사야의 예언한 뒤 약 700년, 지금으로부터는 2000년 전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을 본문 2절에서 잘 설명합니다.  예
수님은 모든 사람처럼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물론 죄는 없어야 하실 분이기에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습니다.  그것만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분도 어머니 배속에서 열 
달을 계셨습니다.  태어나실 때 여느 아이와 같이 우셨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분도 우리와 같이 일하셨고, 활동하셨습니다.  그분도 힘들어 하셨고, 
땀도 흘렸고, 눈물을 흘리셨고, 주무시기도 했습니다.  불의한 것을 보면 거룩한 분노를 발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사람이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
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4-15)

예수님이 사람으로 나를 위해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사
람을 알고, 사람을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오신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이것보다 더 귀
한 사랑이 없습니다.  시편 139편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
시오니”  이것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요,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나를 아십니다.  나
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십니다.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고,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모릅니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때가 있습
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아십니다.  나의 사정, 형편, 고민, 나의 아픔, 눈물, 고통, 소원을 아십
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나를 위해 사람으로 오신 주님,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위로
를 받으며 날마다 힘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을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풀어서 말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
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6-8)  주님이 오셔서 하신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은 십자가를 지신 일입
니다.  당시 십자가는 고통과 수치의 상징이었지만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자랑이 되었
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십자가를 자랑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수치의 십자가가 자랑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
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죗값으로 우리는 
모두 지옥으로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천
국으로 이끄시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웬 은혜이며 웬 사랑입니까?  찬송가의 가사처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습니다.  사순절은 바로 이것을 깊이 새기며 보내는 절기입니
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
지 못할 은혜를 받았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지옥에 갈 우리를 천
국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께 감사가 넘치기 원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해 주신 것은 곧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은 하신다는 말입니
다.  구원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노력이나 수고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을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아니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은 하십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피조물이고,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에게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믿고 의지하
며 전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분명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에 이런 주님을 더욱 붙잡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매듭이 풀어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장벽
이 무너지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의 기간 동안 이런 역사가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
과 일터에 큰 은혜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메시야이신 주님을 예언하면서 가장 큰 초점을 둔 것은 바로 ‘고난’입니다.  메시야가 
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
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
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멸시, 간고, 질고, 슬픔, 징벌, 
고난, 찔림, 상함, 징계, 채찍 등 이 모든 말은 바로 주님이 당하신 수난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주
님은 여기 예언처럼 말할 수 없는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고난이 
수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가장 처절한 고난입니다.  세상에 이런 고난이 없습니다.  이런 아픔이 또
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고난이 주는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고난당하신 주님을 
통해 2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이기에 우리도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
처럼 십자가를 질수는 없습니다.  주님처럼 고난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고난이 얼
마나 힘들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순절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그저 
묵상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말로만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조금이나마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을 제대로 지킨 성도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사순절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행한 것이 바로 ‘금식’입니다.  금식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도 금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몸에 맞는 적절한 금식
을 해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금식을 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먹을 것을 금한다는 차원에서 머물러
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하면서 말씀과 예배에 치중해야 합
니다.  기도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는 것이 함께 뒤따라가야 
합니다. 

금식의 중요한 의미는 ‘절제’입니다.  그래서 앞서간 성도들은 많은 것을 절제하며 살았지만, 특히 
사순절에는 더욱 절제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즐기는 것이 있습니다.  구체
적인 것은 각자의 따라 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좀 절
제해 보는 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것이 행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으로 우리도 얼마든지 고난을 이긴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여전히 고난이 그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오늘도 눈물과 염려 속에 예배
에 참여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혹 지금은 아니더라도 고난은 나에게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우리 삶에는 형통한 날도 있지만 분명 곤고한 날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
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기셨
기에 우리도 이깁니다.  주님이 극복하셨기에 우리도 극복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위로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내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낙심하지 말고, 아픔 속에서도 절망하
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약한 모습, 불신앙의 모습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은 지나
갑니다.  반드시 지나가고,  금방 지나갑니다.  고난이 끝나면 부활입니다.  우리에게도 영광이 곧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009년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의 교훈을 주셨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한주
간도, 사순절 기간 동안도, 믿음 안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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