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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예수님 만남의 사순절이 되게 하라 (요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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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만남의 사순절이 되게 하라 (요 4:7~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 4:10)

사람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만남에 따라 관계를 만들게 되며 그 관계에 따라 인생 삶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생에 네 번의 중요한 만남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만남은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부모와의 만남으로 인생의 기초적인 삶의 형태가 형성됩니다. 두 번째의 만남은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좌우할 가르침을 받을 스승을 만나야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지식의 축적과 함께 삶의 지혜로움을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만남은 인생의 삶을 함께 걸어갈 친구와 동반자와의 만남입니다. 진실 된 친구와 동반자를 가진다는 것은 살아가는 삶을 즐겁게 하고, 행복한 삶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 문호 ‘토스토예프스키’는 “인생에서 단 한사람의 진실한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은 죽은 삶과 같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만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의 다른 표현은 인간의 구원과 죽음과 영생을 책임지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꼭 있어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       
  
성서는 불행한 만남의 삶은 산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부모를 잘못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비천한 사마리아인을 부모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불운한 출생과 성장을 바로 잡아줄 참된 스승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가정에서 자랐기에 훌륭한 랍비에게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만남의 삶이 출발부터 잘 못되어지는데서 이 여인은 필요한 만큼 배우지 못했고 배운것이 부족하여 먹고살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해야 했습니다. 
  
결국 여인은 먹고살기 위해 다섯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불륜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어는 누구도 친구와 반려자가 되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기에 여인은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여 아무도 찾지 않는 뜨거운 자정시간에 우물가를 찾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인은 만남의 축복을 가지지 못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세상을 향하여 원망과 증오와 적개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가장 귀한 만남의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남으로 불행한 만남의 과정을 축복의 삶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절기를 맞이했습니다. 사순절은 문자 그대로 40일간의 절기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순절기간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참회와 금식과 절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이 기간 우리는 말씀과 기도와 함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의 만남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만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만남의 사건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은 어떤 것입니까? 수가성 여인의 예수님 만남은 곧 우리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어떤 만남입니까?     

  대화의 만남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여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일상성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여 신앙의 대화까지 하셨습니다. ‘물을 달라’는 대화에서부터 인간의 내면을 시원하게 하는 생수에 대하여 대화하셨습니다. 여인의 직접적인 문제에 대하여 대화하셨고 예배의 문제에 대하여 대화하셨고 메시야에 대하여 대화하셨습니다. 
  
경영학의 대가인 ‘P. F. 드리커’는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원인은 60%는 사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데 있다”라고 했고, 부부 상담자 ‘퀴베인’ 은 “이혼하는 원인의 50%는 부부사이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데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떤 범죄 심리학자는 “범죄자의 90%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제 등 교통하는 관계가 원활하지 못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화의 결핍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끼리의 대화의 결핍이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 대화를 상실한 인간들의 역사는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과 대화의 만남을 상실한 인간들은 무서운 범죄와 파괴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의 역사 속에 계셨던 예수님만이 아니십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와 대화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확신 있는 믿음 안에서 대화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확신을 가질 때에 그 믿음 안에서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우리 안에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 안에서도 대화하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읽고 명상할 때에 그 속에서 대화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으로 대화하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영을 보내셔서 우리의 영과 대화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특이한 경우에 예수님은 직접우리와 대화하시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부르실 때에 직접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가 듣도록 하시는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대화는 내가 모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가 감추고 숨기었던 것들을 드러나게 합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함으로 그녀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었던 증오와 적개심이 드러났습니다. 목마른 그녀의 삶이 노출됐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불륜이 밝혀졌습니다. 오래 동안 풀지 못했던 신앙적 질문과 메시야, 곧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해야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과 대화해야 죄와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고 용서받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해야 바른 삶을 걸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대화해야 용기를 얻고, 즐겁고 기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함으로 평화와 함께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부재나 결핍은 우리로 불행 속에 갇혀있게 합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수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함으로 영혼의 만족함과 시원함을 가지십시오. 혹 실패의 삶과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 지라도 그곳에서 예수님과 대화하시는 만남의 세계를 가지십시오. 그러므로 성공과 축복의 삶을 사십시오. 주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지고 사십시오.

  예수님을 구세주로 만나는 만남입니다
  
만남에 있어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여인은 ‘물을 좀 달라’ 하시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으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유대인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주여는 RSV 영어성경에서는 Lord가 아닌 Sir로 표기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만남이 지속되면서 여인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에서 훌륭한 선생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한 평범한 인간에서 존경할 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절)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숨기고 있는 불륜의 생활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예언자)로소이다”(19절)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이라고 불렀고 다음에는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했고 다음에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의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신앙적인 문제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와 파괴된 성전을 재건할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순수혈통을 지키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성전재건과 성전예배에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모리아산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곳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를 보고 유대인들은 그 성전을 강제로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 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더욱 서로반목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예배의 장소를 거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이처럼 인종갈등과 신앙의 문제가 얽힌 민감한 사항을 거론하자 예배장소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때가 이르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4절)고 하시면서 예배의 장소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더욱 중요함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압니다. 그 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26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구원의 주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인의 만남은 유대인에서 선생님, 선생님에서 예언자, 예언자에서 그리스도로 변한 것입니다. 여인의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된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리스도와 만남이 될 때에 전율하는 감격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감격과 충격이 너무 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감동과 충격으로 물을 길으러온 목적과 물동이도 잊고 동네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을 기피하던 모습을 뒤에 두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자기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만나는 만남은 가장 큰 감격이고 충격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만나고 있습니까? 한 인간으로 입니까? 아니면 훌륭한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예언자와 같은 위대한 사람으로 만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로 만나시길 바랍니다. 이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여인과 같은 감격과 충격적인 생의 경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순절기간,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시는 만남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그가 핍박하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뒤에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했고 그 은혜를 찬양했고 그 은혜로 문안하고 그 은혜를 전하고 그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감격과 기쁨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남으로 그 은혜 속에 사는 기쁨과 감격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누가 우리를 죄악의 삶에서 구원합니까? 누가 우리를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질병에서 구원합니까? 누가 우리를 실패와 절망의 웅덩이에서 구원합니까? 누가 우리를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구원합니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여인과의 대화에서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시는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승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변화를 찾는 만남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변화를 찾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감격을 잃어버리고 생에 대해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는 기쁨과 감격적인 변화를 찾았습니다. 인생은 무의미하고 불행한 것이며 절망적인 것으로 알고 살았던 이 여인이 이제는 생은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이라며 감격하며 살아가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와 불행에 자신을 은폐하는 생활에서 대중 속에 자신의 가치를 자랑하며 공개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생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는 삶에서 ‘생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고 말할 것이 많은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서 말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적극적인 믿음의 여인으로 변한 것입니다.
  
여인의 변화는 총체적 변화입니다. 성격과 감정과 인격과 행동이 변화되었습니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변화되고 삶의 방식과 태도가 변화된 것입니다. 
  
스펄젼은 기독교인은 석 장의 책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책의 첫 번째 장은 검은색이고, 두 번째 장은 붉은 색이고, 세 번째 장은 흰색이다라고 했습니다. 죄로 검은 인생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아 눈과 같이 흰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이 기독교인임을 말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신의 삶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 놀라운 변화입니다. 참으로 가치 있고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는데서입니다.
  
복음성가 가수인 ‘쉐어(George. B. Shea)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쉐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키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만남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변화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했고 변해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예수님과의 만남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인생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축복자가 되기를 원하기 전에 축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공하기를 원하기 전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늙고 지혜로운 동양신비가가 자기의 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에 나는  혁명가였지. ‘주님 제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그러다가 중년이 되었을 때에, 나는 단 한사람의 영혼도 바꾸어 놓지 못한 채 생애의 절반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래서 나는 기도를 이렇게 바꾸었네. ‘주님 제게 저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제 가족과 친구들과 제자신도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늙었고, 살날이 얼마 남지를 않았어. 그런데 난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네. 이제 내가 드리는 단 하나의 기도는 이것이네. ‘주님 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만일 내가 처음부터 이 같은 바른 기도를 드렸더라면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주님과의 만남이 나를 변화시키는 만남이 될 때에, 우리의 인생은 기적과 같은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가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 기간 말씀과 기도 속에서 주님과의 만남이 나를 변화시키는 만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가성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의 주님과의 변화의 만남이 우리 모두의 만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남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순절기간 기도와 말씀과 함께 하심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가지십시오. 주님과의 만남이 대화의 만남이 되십시오. 구세주로 만나십시오. 변화의 만남이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 만남의 삶으로 인생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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