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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먼저 (마 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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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마 6:31~33)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리더십의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박사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First Things First)' 는 저서에서 출가한 딸과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세 번째 아이를 낳아 기르던 딸이 아버지인 코비 박사에게 말합니다. "아빠, 너무 속상해요. 제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지요? 그렇지만 아이는 저의 모든 시간을 빼앗고 있어요.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답니다." 이때 코비 박사가 말합니다. "딸아, 그냥 마음을 편히 가지려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즐겨라. 아무도 너만큼 아이를 사랑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겠지." 그러면서 충고합니다. "딸아, 시간 관리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려라. 달력도 보지 마라. 다만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에 얽매이지 말아라."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고,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켜 주는 도구입니다. 코비 박사는 딸에게 시간 관리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쁘게 서둘러 하는 일들이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의미 있는 인생은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인생은 우선 순위에 따르는 인생입니다.

본문은 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의식주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삶이 왜곡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시며 저들은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길쌈의 수고도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있으며,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염려나 걱정대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마땅히 우리가 해야할 일임을 교훈 하십니다. 

본문 33절에 보니 '너희는 먼저'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즉 살아가는데 먼저 할 일이 있다는 의미이며 삶의 순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순서는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혹 빨리 가려고 순서를 무시하면 도리어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가라' 하시니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출애굽을 '행하라' 하실 때 적극적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선적 가치의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먼저 해야 하는 우선적 가치의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과연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버리라

미국의 교육학자인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박사는 어렸을 때 염려와 근심에 싸여 자주 울곤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가 살던 미조리 농촌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었는데 어린 카네기가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무래도 내가 산채로 땅에 묻힐 것 같아서 울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도 계속해서 염려와 근심에 빠지곤 했습니다. 비가 오면 천둥과 벼락에 맞아 죽을까 염려했고, 나이든 친구 화이트가 자기의 코나 귀를 자를까봐 염려했습니다. 청년 때는 결혼 할 여자가 생기지 않을 까 염려했고, 결혼한다면 아내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는 내가 걱정했던 걱정거리의 99%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여기의 '염려하지 말라' 는 단어는 지금 당장 염려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단호한 명령형입니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네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기에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부자들은 세금을 포탈하고 가난한자들은 억울하게 과다한 세금을 내었습니다. 극심한 빈부의 차이는 생존 문제까지 위협했으며, 한 시도 염려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염려와 근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염려와 근심, 걱정하며 사는 것이 마치 생활의 일부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염려 역시 습관적이며 반복적인 염려를 가리킵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림나테' 로 '메리스' 에서 나온 말이며 '분열' 이라는 뜻입니다. 염려는 마음을 분열시킵니다.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몇 갈래로 나뉘어지고,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염려입니다. 따라서 아무 일도 결정하지 못하게 하며, 점점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본문 27절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로부터 벗어나라는 강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염려의 관문을 통과하지 아니하고는 믿음을 성숙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의 사슬에 묶이거나, 정복당하지 말고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믿으라

헛쉘 포드(W. Hershel Ford)목사의 '물새와 참새의 대화' 라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말합니다. "참새야, 저 아래 땅위에서 허덕거리며 걸어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아라.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참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신뢰한다면 들에 핀 한 포기의 풀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시는 나의 존재를 깨닫고 허우적거리거나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믿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심을 믿습니까? 부디 하나님을 신뢰하고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2절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주님을 신뢰하라는 의미입니다. 30절에서 주님은 염려하는 사람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통탄하셨습니다. 염려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은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키우면 염려가 반비례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라는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방치하시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물며'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더하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믿는 신앙입니다. 나의 연약함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더해지면 강한 자가 됩니다. 나의 죄에 십자가의 피가 더해지면 의인으로 인정받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하물며' 의 신앙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영생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슨 옷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도록 필요한 대로 채워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무엇이 유익한 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고 계십니다. 나아가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지 아니하고는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구하라

중동지역에서 40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 은퇴하신 선교사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교사님, 40년간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그동안 후원한 선교단체가 있었습니까?" 기자들은 후원 단체의 이름을 기사에 올리려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예, 저를 후원해준 단체는 마 6:33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중동으로 갔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만 구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약속대로 저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굶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헐벗어 본 적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의 '구하라' 는 말은 '제테오' 인데 '애써 노력하다, 부단히 노력한다' 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구하는 존재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는 필요의 차원인 Need 의 사람이 있습니다. 또 돈, 명예, 권력을 구하는 소원의 차원인 Want 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소망의 차원 즉 Hope 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먼저' 라는 단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없으니 순서를 정하라는 뜻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보람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다 인생을 마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구하며 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며 외치신 말씀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홀로 되신 할머니가 있었는데 언제나 밝은 얼굴로 살아가십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날마다 찾아오시니 외롭지 않으시죠?"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합니다. "틀린 말이에요." 목사님은 할머니가 귀가 어두워 잘못 들으신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말합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날마다 찾아와 주시니 외롭지 않으시지요?" 할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다시 대답합니다. "틀린 말이라니까. 예수님은 날마다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여기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시네."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은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선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모든 염려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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