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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힘의 회복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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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힘의 회복 (사 40:27~31)

 
‘요한웨슬레’ 목사님이 한번은 실패한 젊은 실업가의 방문을 받고, 대화한 일이 있습니다. 대화하면서 농장이 있는 시골길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목장이 있는데 그 목장은 높은 돌담으로 쌓여있었습니다. 소들이 앞이 막혀 있으니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요한웨슬레’ 목사님이 이 젊은 실패한 실업가에게 말합니다. “여보게! 저 소들이 왜 하늘로 머리를 쳐들고 있는지 알겠는가?” 젊은 실업가가 말합니다. “아, 그거야 앞이 막혀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그게 바로 진리일세. 우리 인간들도 앞이 막혀 있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된다네.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지.”라면서 그의 문제의 답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 보니까 “너희는 위의 것을 찾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앞에 장애가 놓일 때, 앞에 암초가 놓일 때, 눈을 들어 위를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릴 때 보면 집에 뜰 앞에 병아리를 많이 키웁니다. 봄이 되면 병아리들이 ‘삐악삐악’합니다. 그 병아리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병아리들이 물 한 모금 마시고 어떻게 합니까? 고개를 쳐듭니다. 쳐들어서 하늘을 한 번 보고, 또 물을 한 모금 먹고, 또 하늘을 쳐다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인생의 진리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누구나 하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정작 소망이 주께 있음을 알고 위를 바라보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금융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즘 여러분의 삶은 참 힘드실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우들의 삶을 가만히 봐도 참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환율이 한계가 없이 자꾸 오르기 때문에 원자재들을 비싸게 사가지고 와서 물건을 파니까 남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헛장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환율이 자꾸 올라서 걱정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반대로 주가가 떨어집니다. 그러니 이게 또 경기가 침체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졸업한 젊은이들은 취업의 문이 좁아서 정말 취직하기가 너무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몇 십번 응시를 해도 자꾸 떨어지니까 낙심이 되고, 절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또 한편으로 실업률이 높아져서 실업자가 많아집니다. 직장에 나가다가 직장에 못 나가고 집에 있으니까 답답한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 당했을 때 우리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 있습니다. 누군가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절망하지 아니하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정부를 원망하고, 나아가서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 있느냐?’ ‘하나님이 좀 도와주시면 될 텐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모른 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27절에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이스라엘아! 왜 불평하느냐? 왜 불만을 토로하느냐? ‘우리 사정은 하나님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우리의 억울함을 하나님이 풀어주지 않는다고’ 너희가 왜 그렇게 말하느냐?”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꾸짖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지가 5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 끌려올 때는 ‘곧 돌아가겠지. 하나님이 언젠가는 우리를 우리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겠지.’ 했는데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이제 지쳐버렸습니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불평을 털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금융위기라는 이 풍랑을 만나서 우리 모두가 힘들어하고 앞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두움 속에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이 이 난관을 극복하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여호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누구나 다 압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이지.” 그러나 그 정도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호세아 6장 3절에 보니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지 그분을 신뢰하던지, 그분에 대한 미련을 버리던지 할 것 아닙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본문 28절~29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란 뜻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 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분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반듯이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바로 오늘 우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루하루 우주를 창조하실 때 뭐라고 그랬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리를 만들어 놓고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그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들어 놓고 방치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야! 이제 끝장이다. 이제 되는 방법이 없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무궁무진한 길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보니까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라고 사도바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우리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더더욱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피곤하십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지치십니까? 오늘 하나님을 통해서 새 힘을 공급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12편에 보니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 1절에 보니까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왜 오늘 우리에게 이런 풍랑을 주셨을까?’ 그런 불만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때로 징계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독수리 이야기가 오늘 후반부에 많이 나옵니다만 독수리는 그 특징이 자기 새끼들을 훈련시키는데, 새끼가 이제 부화가 되어서 나오면 높은 절벽 위로 그 새끼를 물고 올라가서 밀어 떨어뜨립니다. 이 새끼는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어미가 밀어내니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날지 못하고 퍼덕거립니다. 그러면 그 큰 날개로 쏜살같이 날아와서 자기 날개에 엎고 다시 올라가서 또 떨어뜨리고, 또 떨어뜨리고 그 새끼 독수리가 날 때까지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징계하고자 바벨론을 통해서 그들을 포로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지구촌에 풍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인간의 범죄 때문에, 인간의 교만 때문에 이런 풍랑이 온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온 지구상에 이런 엄청난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축복을 부어주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했습니다. 인간의 악을 채우고, 욕망을 채우고, 남을 정죄하고,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이런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게 하시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야! 네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너희가 이제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는 가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니느웨는 이스라엘과 철천지원수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심판 안 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빨리 심판받고 죽기를 바랐기 때문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 요나는 피곤해서 배의 밑창에서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대풍을 보내셨습니다. 풍랑을 보내셔서 배가 바다위에 종잇조각처럼 흔들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배에 있는 짐을 던져 버려봤습니다. 버려도 안 되었습니다.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요나가 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바로 내 죄 때문에 이 풍랑이 온 것이니까 나를 바다에 들어 던지시오.” 바다에 요나를 던졌더니 풍랑이 멎었습니다.

여러분! 바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지나온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인류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참 괴롭고 힘들지만, 또 영적으로 보면 축복의 기회입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구원받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잘 되고 잘 살고 번영하면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갈 인생들이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회개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축복의 징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단잠도 주시지만, 고난도 주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 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 지치고 피곤한 인생을 극복하려면 여호와를 앙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 핵심 되는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면 우리는 독수리같이,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을 치솟듯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달려가도, 뜀박질해도 피곤치 않습니다. 걸어가도 지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독수리는 참 신비로운 새입니다. 새 중에 왕이 독수리 아닙니까? 독수리는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이 오면 두려워 다 숨어버리는데 독수리는 폭풍이 오면 그것을 이용해서 더 높이 날아오릅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오를 때 약 4000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곤 고요하게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개를 쫙 펴고 하늘을 난다고 합니다. 참 놀라운 새입니다. 독수리에게 참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이 독수리가 한 20년 이상 살면 이 부리가 구부러져 자기를 찌른답니다. 그리고 이 부리가 무뎌져서 사용하기가 나쁩니다. 그러면 독수리가 그 부리를 바위에 쪼아버립니다. 떨어지면서 바위에 일부러 부리를 부딪칩니다. 그러면 새로운 부리가 자라납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자기 발톱을 다 쪼아서 발톱을 벗겨버립니다. 그러면 무뎌진 발톱이 다시 날카로운 발톱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큼 또 살 수 있다고 합니다. 20년을 살아왔으면 2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동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을 치솟는 것처럼 그렇게 능력 있는 삶, 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믿고 신뢰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반듯이 내 인생에 도움을 줄 줄로 믿고 기대하는 삶, 그게 바로 앙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푸라기 잡는다는 것은 말은 맞지만 지푸라기를 잡으면 물에 빠진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지푸라기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푸라기는 역시 잡아도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갈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움이 간절하다는 의미이지 지푸라기를 잡으면 살 수 없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어려운 일 당하면 무당 쫓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점쟁이 따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 무슨 해법을 찾으려고. 하지만 거기에는 해법이 없습니다. 지푸라기 잡은 것처럼 같이 빠져 죽는 것입니다. 무당이 그것을 알면 왜 무당 짓을 하고 있겠습니까? 점쟁이가 그것을 알면 왜 점을 치고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자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랬습니다. 남왕국 유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대군의 공격을 받고 도저히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밤을 새며 기도합니다. 그 어두움이 지나고 하나님이 새벽에 승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새벽에 나가보니 18만 5천명의 앗수르 대군이 다 천사들의 공격을 받고 다 죽어있습니다.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신실한 왕이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구스의 왕이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공격해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100만 대군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어떤 인생의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시련과, 이런 위기와, 이런 풍랑 가운데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전에 하루에 10분씩 기도하는 분들은 20분씩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번 예배드렸던 분들은 2번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30분 봉사하셨던 분들은 1시간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포기합니다. ‘세상이 뭐 이렇게 어려워, 살다가 죽는 거지 뭐.'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보니까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앙망해야 할까요?

여러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뭔가 우리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세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하나님은 열심히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입니다.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가 있으십니까? 지치고 피곤한 인생입니까? 육신의 질병이 있습니까?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료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성도님이 질병을 가지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놀라운 말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뜨겁게 다가오는지, ‘예수그리스 그분이 군병들에게 십자가에서 채찍을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다. 나는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그분이 내 모든 질병을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나는 건강해야 해.’ 그리고 그는 건강을 자신을 떠올리며 기도하며 질병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할 때 그는 건강을 회복하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인생의 짐들, 우리 질병의 짐까지도 다 대신 지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한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평강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안이 있습니까? 염려가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아오셔서 여러분이 기도의 무릎을 꿇으실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늘의 평강을 부어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고민과 고통과 불안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 제 모든 짐, 주님께서 맡아주십시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서 애를 쓰는데 하루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잠을 못자다가는 안 되겠다. “하나님! 나는 몰라요. 하나님이 다 책임지세요. 나는 잘래요.” 그리고 그냥 잤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하나님께 그냥 맡겨버리십시오. 하나님께 맡겨버리시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들을 돌보시고 책임지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모든 것을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래야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을 앙망할까요?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을 앙망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로이라는 말은 목자 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여러분! 목자가 큰 지팡이를 들고 그 양떼들을 돌보기 때문에, 사자로부터 그 양태를 보호하기 때문에 양떼들은 목자가 있는 한 평화롭게 풀을 뜯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에 노래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목자가 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할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과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지치고 피곤합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되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도우신다는 꿈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젊은 의사가 나치에 의해서 유태인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게 되었습니다. 들어가니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룻밤 자고나면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서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비누재료로 그 몸들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마민 라고 유월절 때 부르는 노래인데, 이런 가사입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조금 늦게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고 이 절망 앞에 부딪힙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은 그 노래가사를 바꿨습니다.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약속하신대로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늦게 오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조급해할 따름입니다.” 그는 가사를 이렇게 바꿔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루하루를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노역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아주 날카로운 유리조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이 되면 피가 날 정도로 자기 얼굴을 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치병사가 아침마다 이 포로들을 세워놓고 병든 포로, 맥이 없는 포로, 비틀거리는 포로를 다 가스실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이 외과의사는 아침마다 자기 수염을 면도를 하고 서 있으니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오래 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마지막에 살아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이 빨리 돕지 않느냐고, 왜 나를 구원하지 않느냐고 우리는 너무 빨리 절망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의 장벽이 막혀 있을 때, 사람들은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가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우리를 도우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소망을 간직하셔야 합니다. 꿈을 가지셔야 합니다.

프랑스가 어려움을 당할 때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번은 모였을 때 한 젊은이가 이렇게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끝장입니다. 우리의 모의가 다 탄로 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끝장입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끝나다니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릴 때 그 때가 우리의 마지막입니다. 우리에게 한 줌의 꿈이 있다면 아직도 이 싸움은 희망이 있고,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꿈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조각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바라보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 그분께 소망을 두십시오. 그러면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힘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가지고 독수리같이 날아오르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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