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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침묵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진 사람 (요 4: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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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진 사람 (요 4:27~42)


내 친구가 중매로 결혼을 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청혼을 하였단다. 자매가 청혼을 받아주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뻤단다. 너무너무 기뻐서 자랑을 했다. 정말 침묵할 수 없는 기쁨이었던 것이다. 
결혼 후에 한 달이 되었을 무렵에 그 집에 놀러갔다. 혼자 있었다. 어제 저녁에 아내와 싸우고 아내는 친정에 갔단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이 한 달도 못간 거다. 물론 지금 잘 살고 있지만. 

1.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기쁨이 있는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다. 고대하던 메시야를 만났다. 26절 “내가 그라!” 
예수님과 만나면서 인생의 갈증에 목말라 하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여섯 번째 남자와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영혼의 갈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영혼의 갈증은 사람이 채워주지 못한다. 영혼의 갈증은 돈으로도 쾌락으로도 채울 수 없다. 
영혼의 갈증은 예수님을 만나야 해갈이 된다. 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을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영혼의 생수를 마신 것이다. 인생의 갈증, 영혼의 갈증을 해갈한 것이다. 이 사람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외적으로는 변한 게 없다. 환경이 변한 것이 없다. 남편이 달라진 것 없다. 경제문제 변한 것 없다. 여전히 그대로다. 
그런데 영혼이 변했다.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내면세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수님이 받아 주시니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내가 자랑스럽다. 예수님이 받아주시는 내가 소중하다. 너무 좋다. 
이제는 기쁘다. 너무 감격스럽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세상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전에는 부러운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불쌍하게 보여 부끄러웠다. 이제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인다. 
여러분에게 이 감격이 있는가? 이 은혜의 감격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침묵할 수 없는 기쁨의 사람인가? 

예수님을 만난 이 분이 갑작스레 행동이 변한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황급히 동네로 되돌아갔다. 물을 뜨러 왔다. 여인이 우물에 온 목적이다. 이제는 물을 떠가는 것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관심이 바뀌었다. 목적이 바뀌었다. 그래서 동네 가운데로 급히 뛰어간 것이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관심이 바뀐다. 목적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물동이를 내려놓는다. 
당신은 예수님을 만났는가? 관심이 바뀌었는가? 당신의 물동이를 내려놓았는가? 

예수 만난 여인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동네로 뛰어간 이유는 사람을 만나려는 것이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다. 머뭇거리지 않고 급하게 달려간다. 
전에는 사람 만나기가 싫어서 피하여 다녔다. 이제는 스스로 사람을 찾아 간다. 
전에는 자기만 목마른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도 목마른 인생으로 보인다. 
전에는 자기만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더 불쌍하게 보인다. 
전에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꽁꽁 숨겼는데... 이제는 부끄러움을 드러내면서 간증을 한다. 
나를 무시했던 사람, 나를 거부했던 사람, 그 사람에게로 찾아가서 전도를 한다. 

자기를 과거를 사람들에게 간증한다. 예수님이 내 모습 이대로 용납해주셨으므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나의 모든 아픔, 모든 슬픔, 모든 절망을 아시는 예수님이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시니 더 이상 수치스러울 게 없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예수님께 치료 받았다. 사람 앞에서 열등감이 예수님 앞에서 회복되었다. 
나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신 주님. 나의 모든 아픔을 십자가로 옮겨주신 예수님... 
너무 감사하다. 부끄러울 게 없다. 너무 기쁘다. 감격스럽다. 침묵할 수 없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간증을 한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그들이 불쌍하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의 갈증을 해결했다고. 그러니 당신도 내가 만난 그 예수님을 꼭 만나보라고 전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목마른 사람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는가? 

동네 사람들이 여인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께로 나왔다. 왜 그들도 예수님께 왔을까? 
실제로는 그들도 인생의 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평안해 보여도... 속으로는 마찬가지다. 다만 숨기고 그런 척 하고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도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여인이 자기를 오픈하자 그들도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로 나온 것이다. 
여인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께로 나온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도 생수를 마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간증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이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세상에 오신 구주로 믿게 되었다. 예수님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이틀간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머물게 요청하였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사람들이 고백한다.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정말 은혜이다. 수많은 바리새인들은 지식은 있으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니고데모처럼 진리에 목말라서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도 예수님은 만난 감격은 없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단 번에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변화되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침묵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간증했다. 그 사마리아 사람들도 한 번에 예수님을 깊이 만났던 것이다. 자기 동네 사람들을 제자로 삼은 것이다. 
그들도 침묵할 수 없는 기쁨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이다. 그들도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삼은 것이다. 마침내 사마리아 수가 동네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된 것이다. 우리 시화에, 연성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마리아 수가동네 사람들처럼 우리 곁에도 인생의 갈증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다. 
마음속으로 한 발짝 들어가면 영혼의 목마름으로 텅 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도 간증하자. 간증거리가 없다는 분들이 많다. 
그 여인이 상황이 변한 것은 없다. 남편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행복이 있다.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 인생의 목적이 생겼다. 
마음이 변했다. 관심이 변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간증하라. 
셀에서 이런 간증을 나누라. 그것을 가족에게 나누라. 직장에서 간증을 나누라. 이웃에게 이 간증을 나누라. 이 간증이 필요한 우리 곁에도 꼭 사람들이 있다. 예비 된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그 간증을 들을 때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3. 우리도 침묵하지 말고 전하자!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가 중간에 나온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여인이 대화하는 걸 보고 놀란다. 당시에는 랍비들은 자기 아내와 딸 외에는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생이신 예수님은 이런 관습들을 무너뜨리신다. 
예수님이 만나시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가 안 통한다. 제자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예수님께 드렸다. 
예수님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나의 양식이 따로 있다고 하신다. 제자들은 누가 음식을 갔다 드렸지 궁금해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하는 음식과 다른 음식을 말하고 있으시다.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을 말한다.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을 말씀한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서로 관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양식은 무엇인가?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음식보다 사명이 우선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참된 양식은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행하시는 것이다.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행하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비전을 성취해 드리는 것이다. 요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사람들은 먹고사는 양식에만 관심을 갖고 산다.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본질적인 양식을 주러 오셨다.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도시 사람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주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44번이나 보냄받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사명받은 자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음식보다 사명을 훨씬 더 중요한 양식으로 여기시며 십자가까지 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보냄 받는 자라는 인식이 있는가? 그렇다면 사명에 관심이 있는가? 
비전에 얼만큼 관심을 쏟고 있는가? 예수님의 비전이 나의 양식인가? 

이 말씀 끝에 예수님은 추수 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아직 추수 때가 아니다.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된다고 말했다. 곡식의 추수를 말씀드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영혼의 추수 때는 이미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로 나오는 수가 동네 사람들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미 영혼의 곡식들이 다 익어있다. 지금이 바로 추수할 때이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알곡을 잃어버리게 된다. 

거두러 나가는 추수꾼에게는 삯을 주신다. 상급을 주신다. 
영원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축복을 주신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는가? 감격이 있는가?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혼을 추수하는 일에 참여하자!!! 
시간과 물질과 은사의 남은 부스러기를 드리지 말자. 먼저 가운데 토막을 주님을 위하여 드리자. 잠시 있다가 썩어질 열매를 위하여 투자하지 말자! 영혼에 투자하자! 영원한 열매를 거두는 귀한 사역에 투자하자! 

가족, 이웃, 직장 동료들이 우리가 추수할 영혼들이다. 이 분들을 알파22기에 초대하자. 셀별로 반드시 알파 한 조를 만들어보자. 금년에는 모든 셀에서 번식을 해 보자. 
이 귀한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하는 일을 세끼 음식 먹는 것처럼 해 보자. 
우리에게 주신 생수의 강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하자. 강은 고이지 말고 흘러가야 한다. 생수의 강은 계속 흘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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