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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걸으라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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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걸으라 (행 3:1~10)


초대교회에 불어온 성령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담대해 졌습니다. 
절망하고 숨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자기중심적이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뜨겁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떡을 떼며 서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초대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흥은 성령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부흥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부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프로그램이 좋으면 부흥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선교의 비전을 크게 외치면 부흥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프로그램도 선교도 먼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핵심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핵심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내 안에 참된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을 폭포수처럼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한국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멘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도들로 인하여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고침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두 가지 입장에서 본문 말씀에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베드로와 요한의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오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의 도구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게 하였나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고 그때 불같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받고 변화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오늘 본문에 보니까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번의 강력한 성령의 체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계속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의 체험이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기도하면 계속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통해 봅니다. 계속 기도하는 성도들은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성령을 소멸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하신다면 계속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은 나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보든 백성들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사무엘처럼 결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쉬는 것이 왜 죄가 될까요? 
분명한 것은 기도를 쉬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쉬면 마귀가 역사하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주위를 살펴보세요. 성도들을 둘러보세요.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계속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기적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멋지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될 줄 믿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당장 자기들 앞에 닥친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들의 눈을 다른 사람을 향해 뜨게 해주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나만을 바라볼 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내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만을 바라보면 진정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땅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눈을 열고 바라보면 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그것이 부흥을 위한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룰 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교회들이 전략으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순수성을 잃었고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회들이 부흥의 전략으로 행하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변화로 순수하게 행하는 것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늘 기도하였기에 기도시간 마다 성전으로 갔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늘 내 문제에 붙들려 있었기에 앉은뱅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앉은뱅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고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러니 배려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의 불쌍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눈이 열려져 다른 사람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 모두는 하나님의 기적을 만드는 도구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만 바라보지 말고 이 땅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향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발견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 복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앉은뱅이를 향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쓰임 받는 도구는 얼마나 많은 학식과 명예를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잘생기고 좋은 배경이 있느냐도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분명하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복음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피가 선명한 붉은 빛을 내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복음이 선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으면 가능해집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고민하십니까? 아직도 복음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시고 복음이 분명해지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꼭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복음이 분명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습니다. 
교회 속에 복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기적을 이루시며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그것은 계속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분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고 계속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이 분명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들로 쓰임 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앉은뱅이의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삶이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몸이 온전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의 삶을 살아왔겠습니까? 그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포기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며 살아야겠고 그래서 그가 택한 생존의 방법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구제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남자가 그의 앞에 서더니 우리를 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는 순간 갑자기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며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획기적이고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전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앉은뱅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까지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도 앉은뱅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어쩌면 오늘의 앉은뱅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걷고 뛰지 못한 채 앉은뱅이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이 앉은뱅이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앉은뱅이는 성전 문 앞에서 하루하루 구걸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오늘도 신앙의 앉은뱅이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신앙생활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구걸을 합니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항상 받아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받지 못하면 투정부리고 불평합니다. 조금 내게 주어지는 것이 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구원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상급은 받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신앙생활 할까요? 인격적으로 만나야 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여전히 여러분은 앉은뱅이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는 없게 될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날마다 성전으로 왔습니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 구걸하여 하루 사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매일 성전 앞으로 왔지만 그러나 그는 성전 안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습니다. 늘 성전 문 앞에 있다가 구걸하여 얻은 것들을 가지고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날마다 성전 앞에 나와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날마다 성전에 오는 자 이였지만 그는 한 번도 성전 안으로는 깊숙이 들어가 보지를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1년 12달 365일 성전에 왔지만 한 번도 성전에는 들어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전 문 앞에만 있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입니다.  만일 교회를 안가면 어려운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주일이면 만사를 제처 놓고 교회에 나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문제는 한 번도,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교회는 빠짐없이 나오지만  한 번도 말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가 만일 기어서라도 성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 갈 수 만 있었더라면 아마 그는 더 빨리 주님을 만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 앉은뱅이와 같이 성전 뜰만 밟고 돌아가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 
성전 안으로, 말씀 안으로, 은혜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우리의 앉은뱅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2절에 보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또 5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 갈 때에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하여 바라보거늘” 했습니다. 

앉은뱅이가 매일같이 성전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구걸하기 위하여, 무엇을 얻을까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은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엇을 얻을까 하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코 빵을 구걸하는 교인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위대하시고 거룩하시며 우리의 앉은뱅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왔으면 사람만 만나고 돌아가지 말고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어나야 합니다. 걸어야 합니다.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앉은뱅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성전 문 앞에 구걸하러 갔다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되었고, 베드로가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앉은뱅이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일어서게 되었고, 걷게도 되었고, 뛰게도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나는 일어나리라”고 고백하며 결단하며 앉은뱅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우리의 앉은뱅이 신앙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다. 예수의 이름으로 신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앉은뱅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으로, 은혜 안으로, 말씀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빵을 구하지 말고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어나 걸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앉은뱅이 신앙에서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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