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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성도의 준비 (눅 2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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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성도의 준비 (눅 21:29~36)


요즘 우리는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동안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해 오던 미국의 월가가 음모와 탐욕으로 가득찬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그것은 자업자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작금에 일어나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단순히 경제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번 위기는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성격이 강합니다. 

계시록 18장에 나오는 바벨론은 세계경제와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세계 굴지의 무역상들이 이 바벨론을 상대로 무역을 합니다. 12절 이하에 보면, 그들이 취급하는 상품의 목록이 나옵니다. “12)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근 2천년 전 시대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려면 상품 목록 속에 각종 금융상품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과 수레’는 비행기나 승용차와 같은 첨단 교통수단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품 가운데는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자행되는 온갖 인신매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견고하며 막강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바벨론이 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가 순식간에 망하는 것을 보고는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16)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오늘날 인간들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돈 벌이만 된다면 못할 짓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황금 곧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황금을 숭배합니다. 작금의 금융위기는 금송아지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셈입니다. 이번 금융 재앙을 통해서 자기들의 능력을 자랑하던 인간들의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저는 이번 금융위기가 계시록 18장의 재앙과 흡사한 것을 보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세상의 종말에 가까움을 실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종말에 대한 예언입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초목의 변화를 보면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알듯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시작이 있었듯이 마지막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없이 지속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의 끝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정하신 때가 되면 이 세상은 종말을 고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히 존재할 나라란 없습니다. 고대에 막강했던 바벨론 제국도, 로마 제국도 다 망했고, 최근에는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도 망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바벨론 제국을 세운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과 그 해석이 나옵니다. 왕이 꿈에 한 큰 신상(神像)을 보았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또한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또 왕이 보니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신상의 각 부분은 역사상 세상을 지배한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금은 바벨론을 말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은은 메대 바사를 말하고, 그 다음의 놋은 알렉산더의 헬라를, 그리고 철은 로마 제국을 말하며, 나머지 진흙과 철로 된 나라들은 로마 제국에서 파생된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공중에 뜬 돌이 우상을 부숴서 가루로 만들고,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된 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을 다 멸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세상 나라들이 멸망하는 것을 아쉽게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종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매미의 유충인 굼벵이는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유충이 자라면 어두운 땅 속을 벗어나서 나무줄기에 기어올라서 허물을 벗고 비로소 눈부신 태양 아래서 매미의 삶을 시작합니다. 만약에 유충이 다 자랐는데도 땅 속에 그냥 있다든지, 지상으로 올라왔으나 옛 허물 속에 그대로 갇혀 있다면, 그것으로 죽고 말 것입니다. 유충의 껍질을 과감히 벗어 던질 때 새로운 모습을 가진 매미로서 마음껏 창공을 날고 나무의 수액을 마시고 노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들의 미래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 되겠지만, 성도들에게는 만왕의 왕으로 강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새 삶을 시작하는 가장 기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주 강림하시는 그 날에,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년 왕국과 영원한 신천신지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움을 아는 성도들은 이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세상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성도들이 영구히 머물러 살 곳이 아니므로 이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막 생활은 안일함과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장막에서 산 이유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고 했습니다. 이 땅에는 머물러 살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성도들은 장차 도래할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것입니다(히 11: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다시금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탐심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의 병폐는 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의 강림이 심히 가까운 때에 세상 욕심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달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강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자족하는 삶을 권장합니다.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

우리가 정당하게 수고해서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지,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돈을 목적으로 삼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성도들은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재물을 이 땅에 쌓아두면 이 세상이 멸망당할 때 그 재물도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주의 강림이 가까워 옴을 알고 육신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세로부터 이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홍수 심판 이전의 조상들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에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들이 팔, 구백 세를 넘게 살았습니다. 무드셀라 같은 분은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분들도 다 죽었습니다. 

권력자도 죽습니다. 진시황제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사람입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대업을 완수한 진시황제는 그 권세와 부귀영화를 영구히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고 싶었습니다. 이 같은 진시황제의 생각을 간파한 도사 서복이 찾아와서 동해에 있다는 삼신산에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 오겠으니 큰 배에 동남동녀 삼천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러 간 후로 소식이 두절되었고, 진시황은 오십 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6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좀 오래 살기도 하고 짧게 살기도 하지만, 한 번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죽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대로, 죄가 죽음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하여 선악 간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을 행하고도 형통하고 장수할 수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인 것처럼 위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선인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는 공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후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시록 20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세상 끝 날에 있을 최후의 심판 시에 재판장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5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서 강림하시면, 농부가 들판에 익은 곡식을 거두듯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우시고 심판을 시행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도 다 살아나서 심판을 받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고 하셨고, 고린도후서 5:10에도 이르기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일이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형벌을 받기 위해서 심판 받는 것이 아니라 상급을 받기 위해 심판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심판을 받고 영생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이 땅에서 행한 것에 합당한 상벌을 받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3:10-15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다 구원을 받지만, 저마다 받는 상급이 다를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 주님을 위해 충성한 사람은 상을 받고, 자기를 위해 살고 주님의 일에 무관심했던 사람은 구원을 얻되 마치 불 가운데서 구출 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영원한 불못에 던짐 받는 불신자에 비하면 천배, 만 배 낫지만, 주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아쓰는 성도들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만 받으면 됐지, 상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심판대에 서서 받을 상급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잘 분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면, 메시야의 초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신 말씀은,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는 최초의 예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7:14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은 메시야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때로부터 말세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셨습니다.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땅에 도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세상이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가루 서 말 속에 적은 양의 누룩이 들어가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가루 전부를 부풀리듯이, 또는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싹이 나서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로 자라나듯이,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으로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성령의 강림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신이 특별하게 부름 받은 선지자나 사사에게만 임하셨으며, 그것도 잠시 동안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라고 하였는데, 이 예언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 여명의 성도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임하시니 그들이 다 방언을 말하였으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이 사건을 성령 강림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성령께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믿는 자들을 보살피러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 몸을 성전 삼아 계시되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성령 강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말세인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임하지 않았으며, 장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임할 것입니다. 그 날에 주안에서 잠자던 성도들은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되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16-17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도들은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과도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거듭난 천국 백성이면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니고 있고,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이면서도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가 얼마나 오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시고 승천하신 지가 이미 이 천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2천년이 다 되도록 주님께서 재림하지 않으시니 어떤 사람들은 재림에 대한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지가 변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지금 우리는 주의 강림이 매우 가까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함과 사람들의 타락상을 보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를 말세의 징조로 이해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보면, 말세의 징조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 열거한 악덕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에게서도 이러한 악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하는 말씀이 이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홍수 심판이 있기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 일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깝듯이, 죄악의 밤이 깊으면 그만큼 재림의 아침이 가까운 것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쥐고 앉아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시간을 고대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 주님을 믿지 않고 있는 부모, 형제, 배우자가 있거든 속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주위에 사는 불신 이웃에게도 속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주의 강림이 가까움을 볼수록 지혜 있는 자같이 세월을 아껴서 주의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주님 강림 하시는 그 날에, 심판장이신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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