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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창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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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창 17:1~8)


1. 세상에 네 종류의 리더가 있다고 합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형입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똑부는 무엇을 맡겨도 믿음이 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일의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아랫 사람에게 위임하지 못하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다보니 아랫 사람이 크지 못합니다.  
“똑게”는 “똑부”와는 달리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없나를 항시 고민하며 주위사람들과 일을 나누어 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추진력이 부족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사람을 키워내고 결국에는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기에 요즘의 사회나 교회에서는 “똑게”형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멍부”는 항상 열심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엉뚱한 방향 제시로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과도 없는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서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됩니다. 
또 “멍게”는 일에 대한 의욕이 없을뿐더러 능력까지 없어서 이러한 유형의 사람이 조직의 리더로 있다면 그 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참으로 편하지만 결국 맡은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도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똑게’형이셨습니다. 스스로 혼자서 모든 일을 잘 하실 수 있지만, 혼자 하지 않고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좀 부족하지만,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시키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속합니까? 저는 요즘 제 자신을 자주 들여다 봅니다. 저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해왔습니다. 게으른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내가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고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지켜볼 필요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혼자 열심히 일하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보자는 생각 말입니다. 

이렇게 저는 요즘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하던 일손을 멈추고 가만히 하나님을 지켜볼 때도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부터 오늘 말씀인 17장까지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면서 읽어보면 재미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복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13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손의 복, 땅의 복을 약속받습니다. 땅의 티끌같이 자손이 많을 것이고, 동서남북으로 밟는 그 땅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양보할 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1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보호해주시고 상 주시는 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양보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보호해주시고 상 주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이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비례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 네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10년이 지나갔지만, 자식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자기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기다림에 지쳤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의 믿음이 약간 흔들린 셈이지요. 아브라함은 86세 때 첩에게서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후 13년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이제는 안 되겠다, 본부인을 통하여 자식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 히브리어로는 ‘엘 삿다이’ 입니다. ‘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삿다이는 전능한 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그 의미를 좀 더 연구해봅시다. 
‘샤’는 형용사로 “충분한” 이란 뜻입니다. 엘 삿다이-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킬만큼 충분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동사형 ‘샤다’ 는 물을 “붓다”는 뜻입니다. 엘 삿다이- 축복을 부으시는 하나님, 그것도 풍부하게, 넘치도록, 계속 부으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명사형 “샤드” 는 “젖가슴”이란 뜻입니다. 남자에게는 젖가슴이 힘의 상징이요, 여자에게 젖가슴은 따뜻하게 자녀를 품어주는 위로와 양육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 속에서 어떤 태풍이나 눈보라 속에서도 평안을 누립니다.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아기는 행복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엘 삿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행복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즘같이 불안한 사회 속에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엘 삿다이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적으로 엘 삿다이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능력과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은혜와 축복을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하나님, 넘치도록 계속적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엡3;20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뉴욕에서 한 걸인이 팻말을 들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장님입니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제발...”
하지만, 깡통은 비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팻말 뒷면에 다른 문장을 써주었습니다. 그러자 빈 깡통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잘’ 말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라고 다 같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셔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너의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이제부터 아브라함이라 하라. 아브람은 높으신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많은 민족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올 것이고 왕들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셋째, 너와 네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 
8절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엘 삿다이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6:14)

5. 이렇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완전하라는 것은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완벽하게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75세 때,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24년이 지난 지금 아직 본부인에게서 한 명의 자녀도 얻지 못하였으니, 실망하고 포기할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말씀은 아무리 더디더라도 인내하며 끝까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으니, 아마 아들 이삭과 손자들 에서와 야곱을 보았을 터이고, 증손자, 증손녀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온 것이나 왕들이 나온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이스마엘, 애돔, 미디안 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요즘은 예수님보다 아브라함이 더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기독교인만 믿지만, 아브라함은 우리 기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도, 이슬람 교도들도 믿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 사후 약 500여년이 지난 후 이뤄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좀 더딜 수 있습니다. 내 당대에 다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자녀손들 대에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은 24년간 아브람에게 침묵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잊어버리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렇게 답답해할 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하지 말라. 아브라함이라 하라. 너 혼자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많은 사람을 존귀케 하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로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아브라함이 만난 엘 삿다이의 하나님을 오늘 우리도 만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넘쳐서 이웃에게로 흘러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은 침묵하시더라도, 여전히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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