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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호흡으로 방 벽을 물들이라! (왕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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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호흡으로 방 벽을 물들이라! (왕하 20:1~7)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의 도움도 중요하고, 나라의 도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믿던 못 믿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붙잡고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진실한 믿음은 틀림없이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의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내가 붙잡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소망하던 것들이 주님 안에서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모든 실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실로 사모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 생애를 살면서 수많은 실망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 남편과 아내에 대한 실망, 부모와 자녀에 대한 실망, 환경에 대한 실망, 사회에 대한 실망, 사업에 대한 실망, 이웃에 대한 실망, 자신의 운명에 대한 실망.  이런 실망들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차 오르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분노는 한탄을 낳고 한탄은 신세타령을 낳고 맙니다.  결국 두 손에 맥을 놓고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집니다.  이런 낙심과 실망이 자신을 황폐한 광야의 한 가운데로 몰아냅니다.  그리고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자신을 한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병자 아닌 병자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인격은 파괴되고 생활은 무덤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우리가 버텨야 합니다.  믿음이란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하늘의 능력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나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됩니다.  이런데 쉽게 넘어지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 속에는 실망과 분노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는 하나님의 믿음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환경이 나를 짓누르고, 실망과 염려가 나를 엄습해 올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믿음을 붙들어야 됩니다.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운 때일수록 더욱 내 영혼에 생기를 채워야 됩니다.  성령을 채워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란 모든 삶의 미완성을 수용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실망과 환경적인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나의 실패와 좌절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종교놀이와 가식을 다 벗어버리십시오.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삶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전개될 때 그 모든 것들을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그것 가지고 비판하고 판단하면 그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우리 모두는 목적지를 향해서 제 각기 다른 길로 걷고 있습니다.  모든 성급한 어리석은 비판과 판단을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사실 어떤 사람의 길은 다른 사람의 길보다 훨씬 더 험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그리고 뜨겁게 받고 있는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큰복을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누가 실망한다고 했을 때 요셉만큼 실망했겠습니까?  내 가족 앞에 실망한다, 내 형제 앞에 실망한다, 내 자식 앞에 실망한다, 내 부모 앞에 실망한다, 누가 배척을 당한다 라고 해도 요셉보다 실망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친형제가 자신을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형제 때문에 하루아침에 신세를 망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요셉보다 더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진실하게 살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자기가 충성을 다해서 섬겼던 그 집에서 감옥에 집어넣고 말았습니다.  이런 실망한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17살 청년의 나이에 팔려가서 13년간의 기나긴 세월동안 실망과 절망, 배신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실망스러운 일들만 만납니다.  바르게 살면 살수록 실망스러운 일이 다가옵니다.  정직하게 살면 살수록 낙심되는 일만 만납니다.  믿음대로 살면 살수록 인생은 더욱 꼬여만 갑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생포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그 때마다 힘입습니다.  환경이 자신을 억누를 때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버텼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시련과 험한 역경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요셉이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보디발의 가정에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신세타령만 했더라면 정신분열자가 됐든지, 아니면 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세상의 힘을 얻고자 함이 아닙니다.  세상의 잔꾀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나의 생명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교적인 장난을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오면 도덕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왔습니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의 어리석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왔습니다.  그러니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버러지 같은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기계나 더 좋은 시설이 아닙니다.  새로운 조직도 아니요, 기발한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이 땅의 교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으로 덧입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 하나님이 능력으로 무장된 사람.  이 시대는, 그리고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세계는 금융 위기로 인한 대공황으로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개인도, 국가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정책도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이대로 세계가 주저앉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세계와 민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향하던 우리 국민들이, 우리 나라가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주의 백성이 된 것은 이 때를 위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기력증에 빠진 이 땅의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려세우는 강력한 도구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기도의 용사들이 이 제단에서 불같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님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기계에 임하지 않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어떤 프로그램에 기름을 붓지 않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기름을 붓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기도하십시오.  지금은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의 골짜기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던 생기를 잃어버린 마른 뼈들처럼 지금 이 시대는 영적 메마름으로 생기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심령에는 거룩한 소망도 없어졌습니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생기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기를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그 영혼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능력을 주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방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은밀한 골방을 만드십시오.  골방은 마음의 공부방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진정한 영적 거인은 골방에서 만들어집니다.  그의 삶과 그의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은 그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에서 태어납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사람을 만듭니다.  기도는 군사를 만듭니다.  우리는 내 영혼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호흡으로 골방의 벽을 물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입김이 방 벽에 항상 서려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달콤한 은혜라도 가장 사소한 타락에 의해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이 사소한 타락에 의한 무너짐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골방의 기도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목자가 부주의하거나 목장이 파괴되면 양무리가 흩어지기가 매우 쉽습니다.  파수꾼이 잠들면 그 성은 점령당하기가 쉽습니다.  둑을 세우기는 어려워도, 그 둑이 무너지는 것은 쉽습니다.  어느 한 곳에 구멍을 내면 그 둑은 삽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 사소한 타락, 사소한 유혹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사소한 불평, 사소한 원망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지금은 분명히 은혜의 때입니다.  은혜로운 특권이 우리들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들은 더 많은 죄악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죄악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거룩한 영적 영향력을 세상에 발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세상 속에서 거룩한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데 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적인 일들에 대한 자랑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자기 육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자랑과 편안함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기도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과거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들의 삶과 사역에서 가졌었던 강력한 영적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었던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사라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기도가 큰 능력이 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가장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어느 한쪽 구석으로 밀어 던져도 될 보잘 것 없는 의무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틈틈이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 간단히 해치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가장 좋은 시간에, 우리의 황금 시간에 우리의 힘과 정성과 마음을 다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강력한 능력이 되는 기도는 대충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것처럼 심령과 삶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야고보의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처럼 마음 속에 불을 지피고 힘을 주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로 자신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사람은 모든 생각이 사람 쪽으로 가기 전에 먼저 천국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곳곳에 하늘의 냄새가 스며 있어야 하고, 진지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에 불이 붙지 않으면 엔진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결과에 관한 한 기도로 불이 붙고 증기를 내뿜기 전까지의 우리는 죽어 있는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강력한 기도의 힘이 우리의 삶에 바탕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는 데 승리하십시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기 보다는 먼저 사람을 만나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를 만났을 때 세상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그 눈길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답답함과 어려움을 말하려는 그 입술을 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데에 강한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에도 강합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환경적인 문제가 일으키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표류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 때에라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저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에게는 기도가 없지만, 우리들에게는 기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는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은 힘든 영적 일을 싫어합니다.  인간의 속성은 순풍에 잔잔한 바다 위로 항해하여 천국에 가기를 원합니다.  기도는 자기를 낮추는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 자존심을 부끄럽게 하고, 헛된 영광을 십자가에 못박고, 영적 타락을 경고해 줍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의 혈과 육이 견디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견디기보다는 기도하기를 포기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포기하는 것, 그래서 거의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는데 결코 인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사귐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혹은 바쁘게 들락날락 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은사를 주시지 않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 그분을 아는 비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을 아는 믿음의 끈질김에 굴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사에 대한 이해와 소원을 가지고 진지하고 꾸준하게 간구하는 자에게 가장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 차례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습관은 많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정된 기도의 장소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하루에 3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지만, 그러나 그들은 기도로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습관이었습니다.  물론 기도하는 시간에 따라 기도가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호흡으로 여러분의 방 벽에 거룩한 서리가 물들이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찾는 일에 게으른 것은 울어도 마땅한 죄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늦게까지 분주하게 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지런히 열심히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한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탄이 세상을 움켜쥐고 통치하면서 모든 움직임을 자기의 목적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최선을 다하여 가장 매력적이고 완전한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현대의 성도는 성령을 통하여 가장 고상한 이상과 가장 큰 가능성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측량할 수 없는 성스러움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를 헤아리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살았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완전하게 서게 하기 위하여 애써 수고하며 끈질긴 기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초대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 난쟁이를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믿은 지 오래된 영적 어린아이를 격려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는 자라야 했습니다.  나이든 이들은 연약함 대신에 열매를 맺고 재생산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놀라운 천재라도, 아무리 교양 있는 인물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영혼에 활력을 주는 경건함과 사랑으로, 더 많은 믿음과 더 많은 기도와 더 많은 열심과 더 많은 헌신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는 자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내 가정과 이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이 불붙이신 전적 헌신의 화신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지체되었습니다.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고상하고 재주가 많은 천재도, 아무리 학식이 많고 세련된 학자도, 지위도, 명성도, 자리도 하나님의 병거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의 불이 붙는 자만이 하나님의 병거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활활 붙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내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붙여 주시옵소서!"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왕은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한 마디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이제 왕의 나이가 39살입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들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고민하다가 우울증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가나 재력가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복수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마치기 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의 순간에 골방에 들어가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의 호흡이 온 방 벽을 물들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호흡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룩한 입김이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믿음은 환경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상황을 바꾸어서라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를 하나님의 전에 사흘 만에 올라가게 하시고,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시고, 아들을 낳게 하시고, 나라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아비멜렉 앞에서 살고자 미친 척하면서 지은 시편입니다.  거기 1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앞에서 심정을 토하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져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면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 주십니다.  본문 3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기도하되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눈물로 기도한 것입니다.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왕의 체면도 버리고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과 똑 같은 내용이 이사야 38장에 나옵니다.  거기 14절에 보면 히스기야의 기도하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한 마디로 이 고통에서 건져달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함의 정도가 믿음의 정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기도에는 이런 간절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타는 심정이 없습니다.  내장을 뒤틀 듯 애끓는 기도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세련될 필요가 없습니다.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토하기만 하면 됩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을 앞에 두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심장을 깨트려 통회의 눈물로 무릎을 적셨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환경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그의 기도의 입김이 벽에 서릴 정도로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일을 평범한 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기도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의 판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도는 캄캄한 인생의 판도를 밝은 빛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21세기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기도는 인생을 바꾸고, 삶을 새롭게 하고, 상황을 바꿔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가 사람을 바꾸고,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도가 문제를 바꾸고,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홀로 방황하지 말고, 사람 붙들고 하소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하시면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앞에 캄캄한 문제가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만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이제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회개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골방에 기도의 호흡으로 인한 거룩한 입김이 서리게 하셔야 합니다.

앞 뒤 좌우가 꽉 막혀 있을 때에라도 한 곳은 남아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잠이 안 오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히스기야가 경험한 그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내게 나아와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전심을 다해서 부르짖으십시오.  나를 도와 달라고 말입니다.  내 가정을 인도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이 성전을 부흥시켜 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의 그의 방 벽에 항상 기도의 입김이 서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교회의 벽에 기도의 입김이 서릴 정도로 뜨겁게,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다.  기도의 기운이 이 성전에 가득 차게 기도해 보십시다.  바닥에는 회개의 기도의 눈물이, 예배당에는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 보십시다.  그러면 반드시 내 가정과 교회는 거룩한 영적 힘에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오순절 성령의 체험이 우리들 안에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 가정을 세우고, 내 교회를 세우는 일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오직 기도의 입김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후로 이 성전 안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 기도의 호흡으로 거룩한 서리가 가득 차게 부르짖는 기도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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