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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박해 아래 확산되는 복음 (행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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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아래 확산되는 복음 (행 8:1~8)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이 급증하는 가운데 구제 문제를 둘러싸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불만과 원망이 일어났습니다(행6:1). 열두 사도는 이 돈 문제를 다루느라고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가 없었습니다(행6:2). 그래서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일들을 맡을 사람 일곱을 택하여 세웠습니다(행6:3-6). 그 일곱 사람 중 하나가 스데반이었습니다.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행6:5)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행6:8)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을 뿐 아니라(행6:8) 논쟁에서 그를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지혜가 있었습니다(행6:9-10). 

이렇게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결과를 행6:7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렇게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고 있을 때 스데반이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설교에 마음이 찔린 이들이 이를 갈며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 스데반의 순교는 기독교에 대한 본격적 박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붙잡혀 투옥되기도 하고 공회에 불려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를 받으며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나는 일들은 이미 있었지만 이렇게 무참하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그날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만 남고 예수 믿던 사람들은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본문 1절). 기독교가 탄생하자마자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한 때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후로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약 300년간 박해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국가로 돌아선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회교권 국가를 비롯한 일부 타 종교 국가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에서의 기독교 박해는 계속되어왔고 불행하게도 그 가장 심한 기독교 박해가 바로 우리의 북한 땅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박해를 받기 시작한 초기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박해는 분명 교회의 위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박해는 언제나 성장의 기회였음을 교회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예를 바로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는 사도들만 남기고 교인들을 유대와 사마리아 땅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붕괴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람들은 무서워서 숨어 산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본문 4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사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거기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한 일입니다(본문 5절). 열두 사도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볼 때 이 빌립은 예수님의 직제자 빌립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만 전념하게 하기 위해 세운 일곱 사람의 명단에 스데반 다음으로 그 이름이 오른 빌립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빌립 또한 스데반처럼 말도 잘하고 표적 행하는 권능도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서 그들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게 했고 많은 중풍병자와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낫게 했습니다(본문 7절).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또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믿었으며 세례를 받고 따르게 되었습니다(본문 6절, 행8:12).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찾아왔습니다(본문 8절).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는 이렇게 복음이 예루살렘 밖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주님께서 예고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행8:14). 두 사도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곳의 새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했으며(행8:15, 17)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동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8:25). 그곳 신자들에게도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행8:17). 성령께서는 빌립을 또 다른 이방전도에 사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인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한 빌립을 이번에는 남쪽으로 보내셔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보내신 것입니다(행8:26). 거기서 빌립으로 하여금 한 에디오피아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였는데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행8:27-28). 빌립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그에게 접근해서 그가 일고 있던 이사야서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행8:27-35). 그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는 자원하여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행8:36-39). 빌립은 계속해서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행8:40). 성경상의 기록은 없지만 빌립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을 전해 듣고 세례를 받아 귀국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는 자기 나라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을 것이고 복음은 또 거기서도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박해 받는 복음을 더 널리 퍼뜨리시고 박해 아래 있는 교회를 더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게 이루어져 갔습니다. 열두 사도 못지않게 훌륭한 일꾼 스데반이 너무나 일찍 순교한 사실은 교회의 큰 손실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는 결코 헛될 수 없는 일입니다. 스데반 대신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가장 큰 타격과 손실을 입히던 열혈파 박해자를 기독교 최대의 선교사요 신학자로 만드셔서 교회를 더욱 크고 견고하게 세워나가시는 훨씬 더 큰 이득을 취하셨습니다. 사울을 바울로 만드신 일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교회를 박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크고 통쾌한 복수였습니다.

사울은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그들이 벗어 놓은 옷을 지키고 있었습니다(행7:58). 그는 스데반이 죽은 것을 마땅한 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본문 1절). 그가 기독교 박해의 선두주자로 나선 것입니다. 그는 집집마다 뒤져 남아있던 그리스도인들을 남녀 할 것 없이 다 잡아 옥에 가두도록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본문 3절). 그는 그러고도 여전히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행9:1). 그는 예루살렘의 신자들을 잡아 가두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했습니다(행9:1-2). 

그것은 그가 그곳에서도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을 보게 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올 권한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행9:2). 사울은 그가 원한 공문을 받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 바람에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거기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놀라 반문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때 그가 들은 것이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9:3-6)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두 눈을 뜨고 분명히 보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 앞에 엎드려졌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면, 사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고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는 그릇이 되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었습니다(행9:15-16). 사울은 여기서 영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고 육신의 눈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행9:18).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고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행9:18, 20). 이렇게 돌변한 사울 앞에서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은 의심했고 유대인들은 당혹해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을 내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습니다(행9:21-22). 예루살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믿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일과 주님께서 그를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신 사실과 그가 다메섹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한 사실을 전해들은 후 그를 받아들였습니다(행9:26-28).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행9:29).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유대인의 선두주자에서 단번에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는 첫 번째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었습니다(행9:23, 29). 사울을 자기편으로 얻은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든든히 서 갔고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는 가운데 수적 성장을 더해갔습니다(행9:31).

한편 베드로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 또한 사방으로 다니며 침상 위에 누운 지 팔년 된 중풍병자를 고쳐주기도 하고 병들어 죽어 다락에 누어있던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 말해 살리기도 하는 등의 놀라운 이적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행9:35, 42).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출발부터 박해를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러나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는 결코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교회가 위축되고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흩어놓으면 그만큼 더 많은 교회가 생기게 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주의 몸 된 교회를 진멸할 수는 없습니다.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박해를 받은 북한의 교회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땅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셋째, 교회는 순교의 피를 흘리면 더 성장하고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이들에게 놀라운 권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병 고치고 죽은 사람까지 살아나게 하는 권능은 본래 제자들에게 있었던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의 전도를 도우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가장 해로운 것조차도 가장 이로운 것으로 돌려놓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에 가장 해롭고 위험한 존재였던 사울을 교회의 가장 유익하고 위대한 인물 바울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역사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지킬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는 전도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여건이 안 좋다고 전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의 사역의 도구가 되는 것뿐임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다면 우리에게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놀라운 능력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총회의 뜻을 따라 예장 300만 성도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 운동을 [새문안 새생명 운동]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미 신년도 예산이 다 편성된 후에 하는 일이라 예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그 어떤 사역보다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문안 새생명 운동]의 연차적 목표를 정하고 “전진0960”, “도약1070”, “비상1188”이라는 구호를 내겁니다. “전진0960”이란 금년 2009년 안에 출석교인 6000명대로 확실히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도약1070”이란 내년 2010년에는 출석교인 7000명대로 올라서자는 것입니다. “비상1188”이란 2011년에 가서는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맘껏 하며 팔팔 날 수 있도록 출석교인 8800명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계획과 실천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전도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거나 또는 무관심하거나 또는 냉소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과 주님의 명령과 성령의 역사에 대해 반대하고 무관심하고 냉소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새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 성전 건축이 이 운동에 소극적이어야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운동은 새 성전 건축에 힘을 더하는 일이 되고 새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 더 절실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온 교우들이 이 [새문안 새생명 운동]에 적극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온 교우가 중지를 모으고 관심과 기도의 손을 모아 [새문안 새생명 운동]에 힘쓴다면 역사적인 새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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