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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한 사람의 나라사랑 (렘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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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나라사랑 (렘 5:1~6)
 

나라를 위해 일어났던 3.1운동의 중심에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은 한국 백성이 독립만세 운동을 한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에 항거하여 독립과 자주를 선포한 날로 벌써 90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1년 이상 전국에 걸쳐서 계속 되었습니다. 만주의 간도, 중국, 시베리아, 일본 등 한국인이 거주하는 전 지역에서 전개되었습니다. 3월 1일~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7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 했습니다. 1만 5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고 검거 된 사람만 4만 6천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해 받은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600만 명 중 1.5%도 안 되었지만 무려 20% 이상이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3.1운동 선언문에 참여하고 서명한 사람들 중 절반에 가까운 분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자주독립에 참여한 자랑스러운 선열을 가진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선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3.1운동 당시 한국을 들렀던 독일의 일간지 기자였던 겐테(Genthe)라는 사람이 한국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본성은 배타적이 아니라 항상 타협적이며 선하고 친절하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부지런한 민족이다.” “재치있는 지도자들만 있다면 빠른 시일에 현대문명국가의 수준에 오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민족이다.” “국왕 자신도 외국인의 도움과 조언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미래를 향해 개방되고 희망이 있는 백성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을 바라보던 일본 정치인들은 생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정한론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정복해야 일본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치밀한 침략에 맞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헌신했습니다. 

일본은 19세기 중엽부터 한국을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명치 시대에 일본은 한국을 정복해야 서구 열강으로부터 안전하게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한론의 내용은 한국의 내정에 서서히 간섭하면서 우리나라에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준다는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청일 전쟁 이후에는 내정개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통감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시정을 개선한다는 말이 사용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본 군대와 관료들이 주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나라의 악정을 개혁하고 개선해주기 위함이라고 선전했습니다. 한국에 선진국인 일본의 도움과 보호가 불가결하게 필요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한국인의 문제점을 여기저기서 끌어내어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민족은 중국대륙에 붙어있는 반도 국가로써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타율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한국인 한 두 사람만 모여도 싸움을 잘 하는 당파성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사회 발전이 정체되고 한국의 문화는 독창성이 없고 중국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방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퍼트린 악의적인 비난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은 드디어 1910년 한일 합방을 강행했습니다. 통감부는 이름을 조선총독부로 바꾸었고 한국이라는 국호도 조선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백성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수치와 아픔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제가 순종이었습니다. 순종황제는 나라를 빼앗긴 때부터 17년 동안 유폐생활을 하게 됩니다. 말할 자유도 없던 순종 황제는 1910년 한일합방을 당한 후 1926년에 승하했습니다. 순종 황제의 장례식이 1926년 6월 10일에 거행되었고, 그 후에 

「신한민보」(1926년 7월28일자)에 순종 황제의 유언이 다음과 같이 실렸습니다. 
“한 목숨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하여 조칙하노니 지난 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일본)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 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박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오...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과 양국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리라.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한 가운데 여러분들을 도우리라.” 
  
순종 황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한 맺힌 부르짖음을 외쳤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들에 대한 분노였고 민족을 내놓은 것에 대한 아픔의 토로였습니다. 한 나라를 상실하면 민족의 얼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상화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수많은 애국 열사들이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탄식하며 마음의 고통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열들이 힘을 합해 민족의 독립운동을 한 것은 나라 사랑과 광복의 대한 신념과 헌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온 세계를 향한 구원의 사건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으로서 민족의 자주, 민족의 독립, 민족의 평화 통일을 이야기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요? 당시 조선 교회들은 많은 목회자들이 핵심적인 메시지를 출애굽 사건에서 뽑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 되었던 노예의 땅에서 해방된 출애굽사건이 바로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민족의 자주독립 운동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가나안 복지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기를 동시에 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며 민족의 지도자였던 남강 이승훈은 하나님의 공의란 바로 개개 민족 국가의 개성 그 독립이 존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과 같이 민족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의 압제 하에 있는 것만큼 커다란 죄악은 없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억압 속에 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독립이 민족의 나가야할 길이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독립 운동하는 것이 전능한 하나님을 의지하며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그의 삶을 여기에 투신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백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어려운 위기에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1)

이제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여 있고 바벨론 제국이 공격을 하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말씀합니다. “지금이 위기다. 지금 재난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 이 백성을 내가 다시 구하려고 하니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한 자, 공의를 행하는 자, 진리를 구하는 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한 사람이라도 찾아봐라. 그러면 내가 이 백성을 용서해 주겠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 의인이 50명 있으면 이 성읍을 멸망시키겠나이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점점 내려온 의인의 숫자가 열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의인 한 명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의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을 매일 수없이 들먹이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맹세를 해도 그것은 다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공의를 기뻐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스러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고치시려고 때로는 꾸중하시고 징계하셔도 양심이 마비되어 아파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목은 뻣뻣하고 얼굴은 바윗돌처럼 차고 냉정하며 회개할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제 마지막 순간 사자와 이리와 표범을 보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바벨론 제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찢겨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무려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참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적 현실을 바라보며 반성하라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백성들이 배반할 때 예레미야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적 정신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을 바라보았습니다. 거대한 바벨론 제국이 이제 곧 예루살렘을 겁탈하려고 할 때 예레미야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마 정치적인 눈, 사회적인 눈, 세속적인 눈으로만 보면 거대한 강대국 바벨론이 제국주의적인 팽창주의와 정벌주의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고 있으니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마음속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재난과 고난으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서 위기라고 했을 때 그는 자기 죄악과 민족의 죄악을 보았습니다. 거짓과 부패, 타락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며 진리를 구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는 민족의 죄악을 보면서 고통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이 위기와 재난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며 사랑의 징계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부르짖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큰 징계를 당하면서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으로 일 할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으로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깨닫고 결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사에 베푸신 은혜가 있습니다. 특별히 19세기, 20세기, 21세기에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 은총을 우리가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경제금융의 위기, 정치사회적인 갈등, 서로 반목하는 투쟁 속에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스런 욕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걸핏하면 다른 사람의 탓을 하며 갈등하고 분쟁하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공평과 정의를 무너뜨렸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고 도덕적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위기 속에 내 죄악이 있습니다. 내 거짓과 불평과 원망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못한 우상 숭배하는 거짓된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위기는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공동체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 민족을 다시 축복해주시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일을 위해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공동체의 아픔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중보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면서 죄악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 절망과 탄식의 조롱이 아니라 다시 희망의 이야기로 우리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낙심하고 포기할 때 위기의 진원지를 알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조지 리들(George Liddell)이라는 사람이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 한 사람을 
믿음이 그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을 주소서. 
그러면 나는 모든 오류를 바로잡고, 
그리고 인류의 이름을 축복하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 한 사람을 
혀가 하늘의 불에 접촉된 사람을 주소서. 
그러면 나는 가장 어두운 마음을 밝혀 높은 결심과 깨끗한 열망을 지닌 마음들이 되게 하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 한 사람을 
주님의 능력 있는 한 선지자를 내게 주소서. 
그러면 나는 칼이 아닌 기도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 한 사람을 
그가 보는 환상에 성실한 사람을 내게 주소서. 
그러면 나는 무너진 당신의 성소를 재건하고 
그 앞에 민족들로 무릎 꿇게 하겠나이다. 

여러분, 그 ‘한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 한 사람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나입니다.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죄악, 내 불의, 내 게으름, 내 잘못을 고백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로부터, 내 가정으로부터, 내 교회로부터, 내 직장으로부터, 내가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 사랑의 역사, 풍요의 역사에 들어갈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생명과 치유의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에게 몇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3월과 4월에 사랑하는 자녀들,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순국열사들을 기념해 놓은 곳에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데려가셔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살펴보십시오. 남산에 올라가면 안중근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또한 효창운동장 옆에는 백범기념관이 있습니다. 용산에는 전쟁기념관이 있고, 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있습니다. 동작동에는 순국열사들이 안장된 국립 현충원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한번 그 자리에 가셔서 나라를 생각하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양화진에는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했던 선교사들의 무덤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했던 마음과 유언이 묘비에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고 백성을 바르게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정치인들과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들, 산업근로자들, 국군지휘관들과 장병들, 농어촌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국민들 모두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 새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이 백성이 이 지구촌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과 주님이 주신 풍요의 역사를 나눌 수 있는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 놀라운 은총을 우리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가슴으로 새기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 땅을 바로 세워나가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게 하시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또한 고통 받는 연약한 근로자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나라의 위기가 새롭게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으로 바뀔 수 있도록 먼저 깨달은 우리가 주님 원하시는 일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기도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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