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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부담감 (고전 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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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담감 (고전 9:16~23)


우리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예장 300만 성도운동”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도 통계로 우리 교단의 교인은 2,686,812명이었는데, 우리 교단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까지 300만 명으로 성장시키려는 것입니다.   322,000명만 전도하면 300만 명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평양노회는 약2만 명의 교인을 배정받았는데, 우리 교회는 136명을 전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차 목표로 2010년까지 136명을 전도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2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예장 300만 성도운동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신앙운동입니다.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면, 케리그마와 디다케와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에 있습니다.    케리그마라 함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디다케는 그 복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는 복음 안에서 성도의 교제가 일어나는 것이며, 다이코니아는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예장 300만 운동은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때에 교회는 내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고, 대사회적인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교회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체질을 전도체질로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전도가 이루어지려면 전교인의 70-80%의 교인들이 전도자로 활동해야만  전도의 열매가 열리는 법이지, 10%도 되지 않는 성도들의 적은 관심으로는 전도의 열매가 없다는 것을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 모두 다 함께 전도해야 전도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 성도들이 전도에 참여해야 합니다.  몇몇의 구역장이나 인도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전도는 각 사람의 사역인 동시에 전 교회적인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태신자 전도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것은 ‘작정이 곧 전도’라고 합니다.  데리고 온 사람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작정한 사람을 칭찬해주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전도는 불신자 전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들이 전도하면, 교회로 인도하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는데, 말 그대로 말씀의 도리, 구원의 도리를 전파하고 들려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리고 교회로 등록하는 것은 전도가 잘 되어서 열매를 맺은 것으로 그것은 인도라고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해서 100% 교회로 인도하려면,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전파하는 것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다보면,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 교회로 등록하는 역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구원받고 보니,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받는 도리를 모르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값없이 구원받았는데,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빚진 자라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빚진 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채무감을 가져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마치 집을 나간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부모의 심정으로,  길 잃어 방황하는 내 자식을 애타게 찾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찾아낼 때까지 찾아다니는 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우선 자식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동리로 나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교회에 간다고 토요일 날 집을 나갔다는데, 저녁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와서 아이를 찾습니다.  신림천 풀을 뒤지면서 찾아다닙니다.  저녁이 되었는데, 아이를 찾지 못하고 함께 아이를 부르고 다닙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긴 아이를 보지 못하였느냐고 물어봅니다.  창피한 것도 무엇입니까?  아이가 컴컴해지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긴 막대기를 가지고 교회 화장실에 혹시 빠졌을까 하여 휘젓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들과 관악산에 올라갔다가 걸어오는데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무디는 시카고에서 집회하면서 그 날 예수 믿고 싶은 사람을 초청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시카고에 대화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후로 무디는 반드시 초청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지나가면서 저 사람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오늘로 세상을 떠나면 영영 복음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아닐까 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등산이나 갈까?  가진 것은 돈이고 있는 것은 시간이니 아, 불가마사우나에 가서 쉴까, 오늘은 콜라텍에 가서 춤이나 추러 갈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교회 다니지 않는 친구나 찾아 복음을 전할까, 세탁소에 가서 옷을 맡기면서 시간을 내어 복음을 전하자.  문방구에서 볼펜이라도 하나 사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노인정에 가서 과자를 사가지고 가서 말벗이 되어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거룩한 부담감”이라는 제목을 생각했습니다.  예수 믿는데 있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한 일이요,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1.  전도는 받은 사명입니다.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바울에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가 일평생 자원하고 감사하고, 신이 나서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고 하면, 우리들이 주눅 들 터인데, 그도 억지로 하신 적이 있고, 화가 마칠 것 같아서 하신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원하는 심정으로 해야 하지만, 때로는 억지요, 부득불 하는 것이요, 어쩔 수 없어서 전도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사도 바울답지 않은 말씀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진솔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득불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부득불이란 말은 헬라어로 “아낭케”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강제, 강요, 압박이란 뜻입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전파는 자원해야 하지만, 강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부담감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어떤 날은 억지로라도 전도하러 나갔다는 말씀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만 같아서 전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해주셨기에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전도해야 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명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화가 미칠 것만 같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자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에게 포로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핍박하였으니, 그렇게 하고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포로로 잡힌 처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바울이 말씀하신 것은 강력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말씀이요, 전도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연한 사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지막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우리에게 유언으로 남겨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지금도 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요, 성령이 임하시고 능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담대히 나아가 말씀을 전파해야만 합니다.   언제 기도 많이 해서 권능 받으면 그 때에 가서 전도하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 받았기에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하는 순간에 성령이 하실 말씀을 주시기도 하고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능력도 주시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은 전도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보내신 뜻을 이루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눅15:7에서는“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대상자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손위의 동서나 손아래 동서가 있습니다.  처남들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많은 동기간에 전부 예수 믿는 가정은 많지 않습니다.  

집안의 대소가의 친척들 30-40명이 다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는 믿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물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교회 다니지 않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느냐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나보아야 합니다.   앞집에 사는 이가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물어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실 때에도 다른 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서 대화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걸어야 합니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동리에서 시장에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드린다고 하여도 결국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성도가 가장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건강한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진 것입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2.  전도는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18) 

사도바울은 전도는 자랑스러운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런 상급이 주어진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가 받을 상이 어떤 것입니까?  그러나 상 받기를 원하지 않고, 값없이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일생 복음을 전파하였어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반드시 상급이 따르고 있습니다.  

단12:3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전도요,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고후1:14에서는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그 사람은 우리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의 전도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자에게 분명한 상급이 있지만, 자신은 값없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셨습니다.   받은 마음으로 전해주면 자랑할 것도 없고, 상 받을 일도 아닙니다.  내가 준다고 하니 자랑거리요, 보상을 말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마10:8에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섬기는 마음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는 종의 심정으로 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려면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읽어만 드립니다.  20-23절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유일한 소망은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을 구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율법 없는 자처럼 산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만, 섬기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영혼구원은 최선이요, 나머지는 차선에 불과하기에 유보할 수 있고, 잠시 보류할 수도 있고, 양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안면식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길이건, 시장이건, 어디서라도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안부를 묻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약속하시고, 다시 만나자고 하시고, 그의 장점을 찾아보시고, 칭찬하시고, 그의 아픈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물어보시고, 한 영혼을 생각하시면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기피하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말을 붙인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람선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구원선의 교회입니다.  

구원선의 교회는 외부 사람들, 지역사회 사람들, 불신자들,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어디에 조난당한 사람은 없는지, 우리 구원선이 가야 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구조선을 보내자, 노인정에 조난당한 노인들이 많다더라, 구조선을 보냅니다.   초등학교에는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다더라.  우선 먹을 것을 보내주어야 된다, 빵을 보내라.  구명조끼를 보내라.  이런 교회는 구원선의 교회입니다. 가난한 이웃이 있는데, 우선 매달 생활비를 보태주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주고, 복음을 주어야지 굶어죽는데 복음을 믿으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구원선의 교회가 되면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람선의 교회는 우리끼리만 즐기면 됩니다. 우리 교회나 잘 짓자, 우리 교육관 짓자, 이제는 우리 수양관을 짓자.  우리 모여서 삼박자 하자.  친목회 하자, 놀러가자, 유람선에 오른 사람들은 즐길 것만 찾습니다. 
유람선 안에 노래방이 있대, 영화관이 있대, 볼링장도 있대, 게임도 할 수 있대, 도박장도 있대, 돈 쓰러 왔는데, 놀러왔는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유람선 교회들이 많습니다.  우리 신령한 게임하자.  노래 자랑하자. 예배당을 화려하게 칠하자. 우리는 구원선의 교회가 되어야지, 유람선 교회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회라고 조직했더니, 1년에 유일하게 하는 일이 친목야유회 다녀오는 것뿐이 없습니다.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놀러가는 데는 지지 않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다녀오세요.  그리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섬기기 위하여 조직되었는데, 하는데 까지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잘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싸매어주고,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전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픔을 파악하여 아픔을 싸매어주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오늘 전도는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인의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전파해야겠습니다.  전도는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거저 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위한 상급을 준비하시고 있습니다.  전도는 섬기는 심정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우리 평양노회가 가진 구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원하자”  
“할 수 있다 전도!  하면 된다 전도! 내가 한다 전도! 지금 한다 전도. 하자! 하자! 하자!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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