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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 (민 4:20, 마 1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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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 (민 4:20, 마 19:23~26)


예루살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베들레헴에는 예수탄생교회가 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339년에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몇 번의 파괴와 재건을 거듭한 끝에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복원 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구간 위에 기념하여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은 유대인 지역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이지만 순례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교회 입구에는 높이 120센티미터, 폭 80센티미터의 아주 작은 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문의 이름을 ‘겸손의 문’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정복자들이 말을 타고 왔지만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말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왕이나 귀족이나 누구든지 낮아져야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교회의 문을 왜 이렇게 낮추었을까요? 겸손한 자만 들어가게 하려고 문을 낮추어 작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 높아 낮출 수 없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너무 높아 숙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배불러 허리를 숙일 수 없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목이 너무 곶아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테마 공원이라는 놀이공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럴 것입니다만 미국의 ‘디즈니랜드’에 가면 하루 입장권을 사야 합니다. 이 입장권은 하루 동안 유효합니다. 아침에 들어갔다가 점심 때 잠시 나올 수 있습니다. 나올 때는 손에 도장을 찍어줍니다. 아이들은 손에 찍어주는 도장도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합니다. 입장권을 가지면 하루는 얼마든지 나와도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입장권의 효력이며 가진 자의 권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의인(義認)입니다.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며 죽을 때까지는 성화(聖化)의 삶을 삽니다. 매일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영화(榮化)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며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은 의인되면 성화의 단계에서 죄를 짓고 살지만 이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도장을 찍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인을 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을 치게 되면 사는 과정에서 죄를 짓지만 이미 들어가는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반면에 짐승의 표를 가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마에 찍은 도장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니다. 요한계시록 21:27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합니다. 22:4에는 “그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잘 살게 되어 많은 나라에 입국할 때에 비자 없이 들어갑니다. 입국 비자를 받아야 가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자 없이 가는 나라도 영원히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9에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외국인이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의 동일한 시민입니다. 빌립보서 3:20에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누구나 다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두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어떤 사람이 들어갑니까? 

첫째, 부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23에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합니다. 왜 부자는 들어가지 못합니까? 부자가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부자는 들어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좋은데 무슨 하나님의 나라이냐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쉽지 않은 사람들이 부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부자는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없는 때였습니다. 세리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세리들은 문자 그대로 탐관오리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전형적인 세리는 삭개오입니다. 
요즘 부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좋은 부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자 될 자격 있는 자가 많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헌납할 것을 약속한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를 보세요. 땅에 부요한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왜요? 누가복음 12:21에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입니다. 하늘 창고를 비어놓고 세상 창고만 채워놓는 사람이 자기에게 부요한 사람입니다.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부유한 인물인 존 록펠러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이가 록펠러의 회계 담당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고인이 얼마나 남겨두고 가셨던가요?” 회계 직원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가진 것 전부 다 두고 가셨어요”. 이것 보세요. 죽으면 다 두고 갈 것인데도 땅에 부요한 자가 이래서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강철왕이라 불리던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땅이 아니라 하늘에 부요한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재물을 하늘에 쌓으면 하나님이 부요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의 집이 부요합니다. 

19세기 벨기에의 레이날드 3세는 귀족으로 토지를 물려받은 공작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폭동을 일으켜 레이날드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동생이 형을 인적이 드문 곳에 감금하였습니다. 동생은 형을 죽이는 대신 간교한 책략을 꾸몄습니다. 거구인 형 레이날드를 문이 작은 방에 감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으면 방면하고 땅을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맛있는 음식을 끝도 없이 제공하였습니다. 레이날드는 점점 몸이 비대해져 결국 그 문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살찌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지 못합니다. 들어가지 못합니다. 승리하지 못합니다. 받지 못합니다. 자신을 살찌우는 사람은 그 일 때문에 자멸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누가복음 6:24에는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고 합니다. 부요한 자는 이미 자기의 위로를 다 받고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위로도 상급도 원하지 않습니다. 영성가 토머스 왓슨은 그의 책 ‘묵상’에서 “많은 사람이 황금의 중량 때문에 지옥 속에 가라앉았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에게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도 못가고 스스로 지옥 속에 가라앉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왜  여덟 사람 외에는 못 들어갔습니까? 못 들어간 것은 안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홍수가 난다고 할 때에 그들은 웃긴다고 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 마음이 너무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그 종류대로 방주에 다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지으신 모든 종류가 다 들어갔습니다. 굼벵이도, 거북이도, 달팽이도 다 끈기 있게 기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아주 천천히 방주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혼인잔치 비유를 보세요. 청함을 받은 자들이 잔치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꾼을 다시 보냈을 때 그들은 잔치에 오지 못하는 변명을 합니다. 그들은 밭을 사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해야 하므로 못 간다고 했습니다. 장가들었으므로 못 간다고 했습니다. 오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너무 많이 가진 자들입니다. 없는 자들은 잔치에 들어오지만 있는 자들은 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한 시간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자가 포도원에 들어왔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일이야 얼마나 했겠습니까마는 들어온 그 자체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 많은 일꾼들이 기다리다가 가버렸을 것입니다. 오늘 공쳐도 먹을 것이 있다는 부요한 마음은 포도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버리게 합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오늘 공치면 먹을 것이 없는 자입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부요한 자는 기다리지 않고 가버리고 가난한 자는 기다리다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죽음이란 인간이 가장 오래전부터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또 가장 끈기 있게 사모한 바로 그 좋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다”라고 합니다. 죽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죽음은 가장 가난해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은 가장 가난해 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셔야 들어갑니다. 

26절에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를 하나님이 선택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가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과 권한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께 합당해야 들어가게 하십니다. 
노아의 방주의 문은 하나님이 직접 닫으십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의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세기 7:16에는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하나님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고 하십니다. 다 들어왔는지, 더 들어올 것이 없는지 판단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판단하시고 마지막에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옛날 임금은 절대적 권한을 가졌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왕비로 맞았습니다. 하만이란 간신이 에스더의 삼촌인 유대인 모르드게를 죽이려고 계략을 세웠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게는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이 일을 알리라고 합니다. 이 일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며 왕에게 나아갑니다. 당시의 법으로는 왕이 부르기 전에 어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의 부르심이 없이 나아가지만 왕이 규(홀)를 내밀면 삽니다. 왕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못 들어가기도 합니다.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살고 죽는 것은 왕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로마시대의 검투사를 보세요. 검투사들은 생존을 건 싸움을 합니다. 한 사람이 쓰러지게 되면 황제의 엄지손가락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목숨 왔다갔다 합니다. 임금의 판단에 따라 한 순간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누가 들어갑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는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 받을 사람도 살리시고,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가 먼 사람도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권한입니다. 
어떤 이가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었습니다. 강도 만나 죽은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강도는 교도소에서 예수를 믿어 천당에 갔습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알 수없는 불가사의에 속합니다. 욥기 12:6에는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도저히 믿지 않을 것 같은 자가 믿고, 믿을 것 같은 자가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몇 가지 신비가 있습니다. 첫째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없어야 할 사람이 가보니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분명 부자가 아닌 자일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바리새인보다, 평생 나쁜 일만 저지른 강도가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 자일 수 있습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설렙니다. 못 쓰는 빈병, 고무신, 긴 머리카락, 아무거나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엿장수는 옛날에 서민정서였습니다. 아주 독특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엿장수가 일분에 가위질을 몇 번 하는지 아십니까? 일분에 30분일까요, 아니면 60번일까요? 엿장수 마음대로 입니다. 

고려시대에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병석에서 오늘내일 하던 어느 중환자에게 빚쟁이가 찾아와서 죽기 전에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환자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적들은 너무 화가 났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 때문에 환자가 죽었다고 유족이 고소하였습니다. 고을의 현령이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현령은 ‘병엽무풍자락’(病葉無風自落)이란 글을 써 주었습니다. 병든 나뭇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채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유족은 다시 재심청구를 했습니다. 현감은 다시 ‘후삭인지위절’(朽索引之爲絶)이란 글을 써 주었습니다. 썩은 새끼줄도 잡아끄는 사람이 있어야 끊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채업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죽어가는 자를 건드려 죽게 했다는 말입니다. 판결은 현감 마음대로 입니다. 엿장수 마음대로 라는 말은 엿장수의 판단이며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심중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지만 하나님은 기준 없이 마음대로 그 때마다 내키는 대로 하시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는 부자가 아닌 가난한 자입니다. 
구약 민수기 4:20에는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죽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가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낚시 하는 새’라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강가의 새에게 사람들이 먹으라고 빵조각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새는 그 빵을 물에 던져놓고 기다립니다. 물고기가 빵을 먹으려고 올라오자 새는 얼른 물고기를 낚아 잡아먹습니다. 누가 새대가리라고 무시했습니까? 새대가리도 고기를 잡을 줄 압니다. 우리가 어부라고 하면서 어부 맞습니까? 미끼를 던지지도 않고 고기를 잡지도 않는 어부는 어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도저히 구원받을 것 같지 않은 자도 하나님의 계획안에서는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까지입니다. 우리가 미끼를 던지고 선포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가 들어갈 수  있게 전합시다. 알립시다. 미끼를 던지면 고기가 몰려오듯 던지고, 건집시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날로 많아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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