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3.1절]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에 4:13~16, 에 7:1~4)

  • 잡초 잡초
  • 536
  • 0

첨부 1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에 4:13~16, 에 7:1~4)


I. 3.1운동과 에스더

"오등은 자( )에 아(我) 조선인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서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피끓는 젊은 시절 - 주먹 쥐고 읊어대던 이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3.1 독립운동이 있은지 어언 90주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후 많은 혁명과 정권교체 그리고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헌법 전문 첫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이 만큼 3.1운동은 이 나라의 건국정신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3.1운동은 세계사의 찬란한 등불이 되었습니다.

1919년 5월 4일 있었던 중국의 5.4운동
필리핀의 독립 시위운동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 등은 모두 3.1운동의 또 다른 하나의 불꽃이기도 합니다.

3.1운동이 있은지 10주년이 되던 1929년 인도 간디의 스승 타고르는 이렇게 한국을 노래했습니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불의 하나였던 조선인,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무한히 퍼져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전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조선이여 이제 깨어나소서."

3.1운동이 있은지 이틀후 기독교계는 「경고! 아, 이천만 동포」라는 제목으로 3.1운동은 곧 하나님의 운동임을 선포한 바가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 자유의 하나님은 이제야 그 큰 손을 들어 침략주의를 타파하고 세계 수평선상에 평화의 낙원을 축조하여 자유의 무대를 건설하는도다"라고.

지금부터 90년전 당시 이 나라 그리스도인은 전국민의 1.5%인 30만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독립운동을 선도하고 있었고 시대를 판단하는 분명한 통찰력과 안목을 가지고 참혹한 식민정책속에서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용기있고 박력있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알리며 살았습니다.

3.1운동은 33명의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인이 2명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세는 천도교의 10분의 1도 안되었지만 불교인의 8배, 천도교인보다 그 숫자가 많았습니다. 6개월간 계속된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중 종교인으로는 장로교인이 2,468명으로 가장 많았고 천도교인이 2,200명 감리교인이 560명 유교인이 346명 기타 개신교인이 320명 불교인이 220명 천주교인이 55명이었습니다. 이 애국운동은 곧 기독교운동이었고 장로교운동이었습니다. 

오늘 3.1운동을 기념하는 그 90주년이 되는 이 주일 아침 설교 제목을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라고 잡았습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이 말씀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위해 외쳤던 에스더의 외침이었습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이 말씀의 뜻은 "내 민족을 내가 책임지겠습니다"하는 각오요, "내 민족을 구원 해 주소서"하는 기도였습니다.

신구약 66권 중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란 말이 한 번도 안나오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보게 하는 책입니다.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서의 이야기는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주전 500년을 전후로 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에스더는 일찌기 고아가 되어 사촌 오라버니 모르드개의 집에서 자라났으나 그는 미모와 믿음과 지혜가 뛰어나 페르시아 임금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때에, 오만 불손하기 짝이 없는 하만이라는 총리대신이 있었는데 하만은 유대민족을 미워했고 특히 모르드개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아부하지 않았던 모르드개를 당장 처형하고픈 마음이 수십번씩이나 있었지만 왕후 에스더의 사촌이라는 이유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만은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안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한 치밀한 음모를 꾸몄고, 마침내 전 유다인을 학살해도 좋다는 결재를 아하수에로 왕에게 받아냈습니다. 엄청난 뇌물을 주고 왕의 결재를 받은 하만은 쾌재를 부르며 서기관들을 소집하여 대신들과 각 지방 총독과 관리들에게 보낼 조서를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방과 민족의 말로 번역하여 왕의 반지로 인을 친 다음 전국 각처에서 그 조서를 공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조서의 내용인즉,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다인을 모조리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II. 민족은 공동체

이때 에스더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는 이토록 무시무시한 음모가 진행되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에스더 왕비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다 얘기한 후 에스더에게 한 두가지 충고를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충고가 4:13에 있는 말씀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말씀은 곧 "네가 지금 왕후가 되어 왕궁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해서 만족하지 말라. 모든 유다인이 말살 당한다면 너 역시 화를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는 충고입니다.

에스더를 향한 모르드개의 이 충고는 비록 2500년 전의 절규만은 아닙니다. 바로 오늘 나와 여러분을 향한 외침입니다. 즉 우리에게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고, 하루 하루를 편히 산다해서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있는 것이고,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의 입맛이 있으며, 국민은 국민으로서의 갈길이 있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나혼자 편히 잘먹고 잘산다해서 숱한 이 민족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이는 우리 각 사람의 값어치 조차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이름하여 "공동 운명체"라고 합니다. 자식이 죽어가는데 어찌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으며 남편이 파멸되어 가는데 어찌 아내된 사람이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나 국가나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 운명체란 마치 태평양에 떠 있는 한척의 배와도 같은 것입니다. 배가 침몰하면 선장도 갑판장도 선원도 승객도 다 함께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국가가 잘되어야 개인이나 가정이 잘되고 개인이나 가정이 잘되어야 국가가 잘되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신령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의 운명이 반드시 공동체의 운명일 수는 없으나 공동체의 운명은 그래도 개인의 운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멸망하면 개인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투옥당했던 마틴 니뮬러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독일에서 그들은 반대 정당 사람들을 숙청할 때 나는 정치가가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유다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는데 나는 유다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노동조합에 가맹한 노동자들을 체포하러 왔는데 나는 내가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그들이 카톨릭교도를 잡으러 왔는데 내가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그땐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명심하고 기억해야 될 대목이 아닐런지요!

한국에서 26년동안 살아온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이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냈습니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책입니다. 그가 언젠가 방송에 나와 '나 밖에 모르는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로 서스럼 없이 한국인을 비판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영리하고 똑똑한데 자기 밖에 모른다. 일본 사람은 아무리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이익이 되어도 나라에 손해가 되면 그짓을 안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자기 개인에게 유익이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얘기입니까? 

모르드개의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에 대한 에스더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16절에 보면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이 모여 금식하며 합심하여 기도하자"는 말씀입니다. 공동체의 문제이니 만큼 모두 하나가 되어 해결하자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연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의 마음과 뜻을 흩고 기도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위인들은 위기때마다 기도했습니다. 


III. 지금은 함께 기도해야 할 때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며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는 한이 있어도 이 백성만은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 나라가 망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호통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내 일만 하고 편안히 누워 있는 것만을 즐겼더라면 우리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아, 내가 나라를 망치고 있구나!"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조금 어렵다고 민족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사업이 조금 안된다고 굶어 죽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 역사의 문을 닫으십니다. 그 날이 바로 이 민족이 망하는 날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오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목사가 없으면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교회에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오십니까? 귀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런 사람은 배울 것이 없으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오십니까? 
친구가 없으면 신앙도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러 교회에 오는 사람은 언제든지 신앙이 살아 있습니다. 
목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최후까지 교회에 남아 있을 사람입니다. 

또 회개하며 기도할 일이 있습니다. 세계 경제와 함께 수출로 먹고 살던 우리나라도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서로 위로하며 조금만 견디면 됩니다. 그런데 금방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돈이라는 우상 앞에 무릎을 꿇었기에 우리는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 모르드개의 절개를 우리는 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치가들은 오랫동안 돈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기업가는 기술과 성실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정치가에게 돈을 주고 기업을 했습니다. 법관들은 공의로 재판을 하지 않고 돈에 따라 재판을 했습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교육자나 학부모들도 돈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교회는 신앙을 가르치지 못했고 기복을 가르쳤습니다. 부모들이 모두 물주로 보이기 때문에 불효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돈을 먹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내 아이들이 살고 그들의 미래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고 일어선 에스더의 용기를 보십시오.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기에 잠시 페르시아 왕궁의 관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왕비라고 할지라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 앞에 나갈 수 없는 것이 궁중법도 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몰살 시키기로 한 12월 13일은 다가오고 왕은 에스더를 부른지 30일이나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궁중법도를 어기고 그냥 왕 앞에 나아갔다가 이 일 저 일도 그르치게 될 위기를 맞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로 그때, 에스더는 자신과 온 민족이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요청한 것입니다. 

기도하자! 민족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자! 일이 다급하고 중차대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자!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위기나 민족적인 문제 상황속에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합니다. 
기도만이 이 민족을 구원합니다.
기도만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면 나라가 살고 한국교회가 살 것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워지면 민족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지금은 함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한 교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 가정에 한밤 중 강도가 들었습니다. 총을 내밀며 "엎드려! 집안에 있는 것 모두다 내 놔" 그때에 가족을 다 안방에 눕혀놓고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머리 위로 두 손을 얹어놓고 싹싹 빌면서 그렇게 빌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시면 있는 것 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통장도 보석도 수표도 현금도 다 강도의 손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하는 말이 "앞으로 10분동안 일어나면 죽는다. 꼼짝하지 말고 고개숙이고 엎드려 있어."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는 동안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울음보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 성령의 감동이 들려왔습니다. 

「종아 목숨만 살려 주시면 모든 것 다 내어놓겠습니다. 참으로 너로부터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앙고백이구나. 목숨만 살려주시면 모든 것 다 내어놓겠습니다. 종아 몇십년만에 너에게 들어보는 신앙고백이구나. 6.25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네 앞에 거대한 포탄들이 떨어질 때 먼지 앞에 고개를 숙이고 네가 그 신앙고백했지. 하나님 목숨만 살려주시면 내 생애를 깨끗하게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 한번도 너로부터 들어보지 못한 신앙고백, 강도 앞에서 네가 하게 되었구나. 강도가 너의 하나님이더냐. 강도 앞에서 해야 될 신앙고백을 왜 내게는 하지 못했더냐. 가난 가운데 살려주시면 이 질병 가운데 살려주시면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다고 진실하게 살겠다고 주여 일제치하에서 이 민족을 살려주시면 주여 6.25의 저 괴뢰의 손아귀 속에서 민족이 두 동강이 나는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이 백성을 살려주시면 이 가난 가운데 이 민족을 살려주시면... 얼마나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한 신앙고백이더냐.」


IV. 이때를 위함이라

에스더를 향한 모르드개의 두 번째 충고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4:14절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씀은 에스더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이 충고를 듣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단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로마의 박해자들이 기독교를 이기지 못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리고 지혜를 얻은 에스더는 임금께 나아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3.1운동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 중 하나는 바로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날, 일제는 교회를 부수고 종탑을 헐어 버리고 성경과 찬송을 빼앗아 불태우고 주요 기독교 인사들을 검거하여 투옥하고 고문하였습니다.

1919년 3월 21일 독립 운동을 하다가 왜경에 잡혀 고난을 당한 한 여자 신도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나는 평양에서 3월 21일에 체포되어 경찰에 구금되었다. 그 감옥에는 여자들도 여럿이 있었고, 남자들도 많이 있었다. 경찰들의 질문 요지는 거기에 잡혀 온 사람들의 성분이 기독교인가? 아닌가를 조사함에 있었다. 거기에는 열 네 사람의 여자 기독교 신자와 1명의 천도교 신자가 있었다. 그 중에 세 사람은 전도사 부인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은 채찍으로 우리 여자들을 내려치면서 옷을 다 벗기고 벌거숭이로 여러 남자들 앞에 세워 놓았다. 경찰은 나에게 대해서는 길거리에서 만세를 불렀다는 죄목밖에 찾지 못했다. 그들은 내 몸을 돌려가면서 마구 구타해서 전신이 땀에 흠뻑 젖었다. ... 내 양손을 뒤로 제쳐 꽁꽁 묶었다. 그리고 내 알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정신을 잃으면 찬물을 끼얹곤 하였다. 또 담배불로 내 몸을 지졌다. ... 어떤 여자는 정신을 잃었고 ... 또 어떤 여자는 두 발이 꽁꽁 묶인 채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 견딜 수없는 무서운 욕과 조롱을 우리는 받았다..."(3.1운동비사 기독교사상 1966.3월호)고 기록하였습니다.

또 수원에 있는 제암리 교회당의 소실 사건은 그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일본군 중위 아리다는 군대를 동원하여 그해 4월 15일 낮 2시경 교인들을 예배당 안으로 모이게 한 후 불을 지르고 그 불꽃 속에서 뛰어 나오는 교인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결국 30명의 교인은 다 타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학살과 만행은 서천리 부근 기독교인들이 사는 열 다섯 군데에서도 똑같이 감행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가 만난 비극에 대하여 친일 활동을 하던 미국 목사 귈리크 (S.L. Gulick) 마저 미국 선교본부에 보내는 그의 3.1운동 보고서에 마지막 결론에서 "너무나도 비참하고 처참하여 우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라고 합니다.


V.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임금 앞에선 에스더의 절규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왕후 에스더가 요구하는 소청은 부귀나 영화나 관능이 아니었습니다. 진멸 위기에 처한 자기민족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부귀 영화와 관능에 빠져 시동생 헤롯과 함께 살던 왕후 헤로디아는 자신의 부정을 책망하는 세례 요한의 목을 제거해 달라고 소청했습니다. 민족을 살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소청이 아니라 의인의 목을 자르는 비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같은 왕후의 자리에서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고, 헤로디아는 의인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소청이 한 사람은 만고의 애국자로 다른 한 사람은 만고의 악녀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소청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이제 한국 교회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엎드려 이렇게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조국을 우리에게 맡겨 주십시오.
대한민국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역사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겠습니다.
이같은 책임과 불타는 사명의 기도가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오늘 우리교회를 이만큼 성장시켜 주신 이유가 이때를 위함이 아니더냐?
오늘 우리교회에 한국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젼을 보여 주신 이유도 이때를 위함이 아니더냐?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3.1절 90주년을 기념하는 이 주일아침, 민족복음화의 염원이 불타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으나 기독교인들에겐 조국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민족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일찌기 예수님의 제자들이 조국이 로마로부터 해방 되기를 바라며 승천하시기전 예수님께 "주여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정한 회복이 무엇이며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민족 회복의 궁극적인 해답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애국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애국은 궁극적으로 하늘 나라와 연결된 선교적인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동족 구원을 향한 사도 바울의 애끓는 고백을 들어 보십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거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나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조국의 멸망을 눈앞에 보면서 피맺힌 동족애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으나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향하는 피맺힌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한소망교회라 부릅니다. 한국의 소망, 복음 한국은 인류의 소망이기를 원하는 우리의 몸부림이 담겨져 있는 이름입니다. 나라 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름입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결과가 무엇입니까?

1. 유다인을 죽이려고 세워두었던 사형대에 대적 하만이 달리는 통쾌한 대역전극이 펼쳐졌습니다.
2. 에스더는 왕비로서의 그 지위가 더 높아졌고 왕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3. 모르드개는 하만이 앉았던 총리대신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서의 결론 - 마지막절 10:3을 보십시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할렐루야!

일찌기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이 백성을 버리지 마옵소서. 주의 백성들을 주의 나라들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몸부림했습니다. 이 하박국의 몸부림이 한국교회에 가득 차야 할 때입니다. 주여 수년내에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황무한 이 땅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실망하고 절망하는 저들 가운데 희망의 불을 붙여주시옵소서.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희망과 용기를 선포할 수 있는 용기를 희망을 꿈을 주시옵소서. 

우리민족은 대단히 정적인 민족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신바람이 나면 뭐든지 해 냅니다. 좀 성공했다 싶으면 금방 우쭐하다가도 금방 실패했다 싶으면 쉽게 낙심합니다. 기가 죽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바람 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주여, 한국교회에 성령과 기도의 신바람을 주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경제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고 해서 너무 기죽지 마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주께서 한국인의 기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앞에 기도하면 새로운 신바람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힘이 있어서 일제치하에서 다시 살아났습니까? 우리가 무기가 있어서 6.26 한 가운데서 이 민족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전능한 힘으로 역사의 주인되신 주의 힘으로 이 나라가 오늘까지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주여,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주여, 한국교회에 제2의 부흥을 주소서.
주여, 한국교회 새롭게 일어나 그날의 만세 소리만큼 크게 외쳐 기도하게 하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